“누나, 나 학교 간다.”
다음 날 아침. 세호는 평소처럼 학교로 가기 위해 현관으로 나서고 있었고, 수민이 걱정스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어제 사고도 있었잖아.”
수민이 걱정스럽게 세호에게 물었다. 물론 세호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큰 상처는커녕 찰과상만 입었으니 다행이었지만 몸이 아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건 아닐까, 누나로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세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수민의 눈썹은 여전히 팔(八)자를 그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야. 그래도 힘들면 참지 말고 학교에 얘기하고 조퇴해. 알았지?”
“네, 네. 그럼 갔다 올게.”
세호는 현관을 나섰다. 한산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마치 어제 겪은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지금껏 TV나 학교 재난 예방 교육에서만 봤었던 몬스터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그의 몸이 저절로 떨려왔지만 무엇보다도 그 괴물을 쓰러뜨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세호 자신의 이형력이라는 게 더욱 그를 떨게 만들었다.
세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이형력자라는 사실은 세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더더욱 숨기고 싶어 했다.
「이 애가 그녀의 아들이라고?」
「그래, 선천적으로 이형력을 가지고 태어났대.」
세호의 머릿속을 스쳐지가나가는 목소리. 그는 머릿속 목소리를 떨치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덕분에 목숨은 건졌잖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세호가 이형력을 사용한 덕분에 목숨도 건질 수 있었고 더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학교나 가야지.’
세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
은영이 교실로 들어오자 서로 잡담을 나누던 학생들은 자기네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조용해졌네. 오늘 전학생이 왔거든. 들어와!”
은영의 부름과 함께 한 학생들의 시선은 곧바로 교실 앞문으로 향했고 세호 역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성신 고등학교의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여학생이 들어왔다. 윤기 있는 단발머리의 그녀의 눈매는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지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전학 오게 된 김민지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소녀는 톡톡 튀면서도 고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자 교실에서는 몇몇 남학생들의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현모야.”
성훈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현모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 씹, 말 씹지 말고...”
성훈이 현모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넋이 나간 것인지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성훈이 현모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의 시선은 다름 아닌 전학생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야, 세호야. 저 새끼 좀 봐라.”
성훈이 세호를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어제 만났을, 세이비어 요원인 그녀가 어째서 자신의 교실에 있는 것일까?
“야, 박세호.”
“어? 왜 그래?”
성훈이 재차 세호를 부르자 세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성훈에게 눈길을 돌렸고 그가 현모를 가리키자 세호는 민지에게 첫눈에 반해 세상 행복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현모를 바라보고 다시 성훈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니야.”
“아, 그러셔?”
전학생의 소개가 끝나자 은영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민지에게 말했다.
“마침 세호 뒷자리가 비었네. 민지야, 저기 빈자리 보이지? 저기가 니 자리다.”
민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빈자리로 찾아갔다. 무슨 우연이었는지 그녀의 자리는 바로 세호의 뒷자리였다.
민지가 자리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세호와 눈이 마주치자 세호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민지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은영은 다시 얘기를 꺼냈다.
“그래. 자리에 앉았지? 어제 샛별 상가에서 사고 났던 거 다들 알고 있어?”
웅성거리는 학생들 속에서 세호는 어제의 악몽을 떠올렸다. 은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보니까 사람들이 대피하는 와중에 몬스터들이 난입했다고 해. 그러니까 이따가 5교시나 6교시쯤에 대피 훈련 및 교육이 있을 예정이니까 다들 알아둬. 알겠지?”
““네에.””
학생들의 대답을 들은 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고는 교실로 나갔다.
자습 시간이 되자 전학생인 민지에게 흥미를 느낀 몇몇 학생들이 민지에게 다가갔다. 전학생이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충분히 미소녀였던 민지에게 작업을 걸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너는 어느 학교에서 왔어?”
“취미 같은 건 뭐야?”
“동아리 같은 거 좋아해?”
민지는 반 친구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는 세호에게 가 있었다..
‘역시 이 곳이 맞구나, 박세호.’
민지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세호를 응시했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
잠으로 오전수업을 때우는 학생도 눈뜨게 하는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세호는 성훈과 현모와 함께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던 중 먼저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박세호, 여기 있었구나.”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 세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또 만나네?”
민지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잠깐이면 되는데, 시간 좀 내줄래?”
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민지의 뒤를 따라 비교적 인적이 드문 옥상 쪽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 도착하자 그녀는 숨을 한 번 가다듬고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소개할게. 나는 국제 이형 관리국 한국지부에 소속된 세이비어 팀, 리틀 나이츠의 리더인 김민지라고 해.”
민지의 자기소개에 말 대신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세호.
“어제는 상황이 급해서 설명을 못 했었는데, 우리 리틀 나이츠 팀을 창단했을 때 도와주신 국장님께서 어떤 이형력자를 추천해 주셨어. 그게 바로.......”
“싫어.”
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호가 단호하게 말을 가로챘다.
“세이비어 하라는 얘기지? 관심 없어.”
“저기, 우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청소년으로 구성된 세이비어 팀이야. 그만큼 멤버 한 명 한 명이 충분한 실력과 잠재력을 갖춘 팀이라는 거지. 즉, 너 역시 그만큼 뛰어난 인재라는 의미야.”
“그런 거라면 딴 데 가서 알아봐.”
“아니, 어째서?”
너무나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세호의 모습에 당황한 민지였다.
“어차피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관리국에서 일해야 하잖아.”
세호의 말 그대로 모든 이형력자들은 관리국에 등록된 이상 만 19세의 나이가 되면 누구든 세이비어가 되라는 관리국의 통보를 받고 관리국에 소속되어 몬스터와 싸우게 된다. 만약 거절한다면? 관리국의 요원들이 이형력자의 집에 직접 찾아가 관리국으로 데려올 것이다.
세호의 거절을 들은 민지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고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했다. 좀 더 격앙된 목소리로.
“그렇지만 우리 이형력자들에겐 인류를 수호해야 할 사명이 있잖아. 지금 그건 자신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생각이야. 왜 그렇게까지 세이비어를 싫어하는데?”
민지의 질문에 세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을 이었다.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너야말로 뭣 때문에 지금 세이비어를 하고 있는 거야?”
세호의 냉담한 대답에 안 그래도 조용한 옥상 계단의 분위기는 점점 싸늘해졌다. 민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신조를 떠올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며 이형력자는 세이비어가 되어 그 힘을 사람들을 지키는 데 쓰는 것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형력 관리국에서 설립한 세이비어 양성 아카데미의 신조였다. 민지는 오직 그것만을 좌우명으로 삼아 세이비어의 길을 걸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형력자들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런 민지의 바람과 정반대였고 민지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세호를 쏘아보았다.
“좋아, 나도 더 이상 부탁 안 해.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니, 영웅의 아들이라는 게 믿기질 않아.”
「왜 저런 애가 영웅의 아들인건지.......」
순간 세호의 머릿속에서 한 남자의 무감정한 목소리와 함께 한 풍경이 주마등처럼 어지럽게 스쳐지나갔다. 회색 철벽으로 이루어진 실험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들.......
“닥쳐.”
마침내 입을 연 세호의 목소리가 노기를 띠자 민지도 흠칫했다.
“영웅의 아들? 사명? 지랄하지 마. 난 이딴 힘 달라고 한 적 없어!”
세호의 목소리가 노기를 띠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민지는 당황한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했다.
“알았으면 꺼져.”
세호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호의 어머니 서가인. 그녀는 인트루더의 침공에 맞서 싸운 전설적인 세이비어로 알려진 여자였다. 어렸을 때 세호는 자신의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이 가인을 칭송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엄마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어렴풋이 느꼈고 그런 멋진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인이 임무 때문에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어느 날, 세호의 소문을 들은 관리국에 소속된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데려갔다. 갓 7살이 된 세호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관리국의 연구실에 가게 되었다.
「이 애가 서가인 요원의 아들이라고?」
「그래, 최근에 이형 능력에 눈떴대. 굉장하지?」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머지않아 훌륭한 세이비어로 될 거야.」
잔뜩 기대에 찬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세호의 의사 따윈 묻지 않고 세호가 무엇이 될지 멋대로 정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세호의 엄마, 가인이 없을 땐 세호를 연구실로 데려와 그에게 더욱더 자신의 이형 능력을 끌어내라고 시키고 등급을 매겼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가기 시작한 세호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었고 그럴 때마다 점수를 매기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기계적인 시선과 마주해야 했었다.
「정말 이상하군. 힘이 이것 밖에 안되는 건가?」
「뭐, 아직 어리니까요. 게다가 그 잠재된 힘만큼은 또래 능력자들하곤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하긴, 잘 키우면 세 사람, 아니 다섯 사람 몫까지 할 수 있는 세이비어가 되겠지.」
물론 세호도 처음엔 오기가 생겨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형력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으나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론 연구원들이 자신에 대해서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아무리 어리다지만 능력 수치가 왜 저 모양인 거야?」
「정말이지, 자기 엄마하곤 완전 딴판이네. 왜 저런 애가 영웅의 아들인건지.......」
그렇다면 그들의 기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지 못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딱 한 번 최고 성적을 냈을 때였다. 그리고 연구원들의 대답 역시.
「S 등급을 따내다니 잘할 줄 알았어.」
「역시, 이소연 씨의 아들이니 이 정도는 껌이지.」
자신의 노력이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 일이 있고 일주일 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가인이 연구소에 쳐들어와 항의한 덕분에 세호는 더 이상 연구소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이형력에 각성한 이상, 어린 이형력자들이 함부로 사고를 치지 못하게 관리국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에 자신이 이형력자라는 것을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세호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런 그에게 닥친 것은 두려움에 찬 반 아이들의 시선과 따돌림이었다.
「쟤 엄마가 그렇게 무섭다며?」
「게다가 쟤도 능력자래. 잘못 건들면 큰일 날 거야.」
벌써부터 자신과 선을 그으려는 아이들의 말은 어린 세호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그 결과 세호는 자신이 가진 괴물 같은 힘 이형력과 자신을 능력만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관리국을 원망했고 때로는 그 원망의 화살이 엄마 가인에게 향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원망할 수 없었다. 세호가 이형력자로 태어난 게 가인의 잘못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가 가인은 관리국의 요청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러 갔고 그 이후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때부터 세호는 스스로 약속했다. 다신 이형력을 쓰지 않기로, 엄마를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척하면서 그녀를 끝까지 부려먹다가 저버린 관리국의 인간들하고는 두 번 다시 엮이지 않기로.
그 때 5교시를 알리는 예비 종이 울리자 세호는 부랴부랴 교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