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구독자 27명 | 파블로프의자명종

[릴레이소설] 엎드리지 않는 자

깊고 어두운 공간에 수 십대의 모니터들이 빛을 뿜어냈다. 모니터가 발하는 빛 사이로 연구 가운을 입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즐비한 채 모니터만을 바라볼 뿐이다. 개중에 세간에 '우서아 박사'라고 알려진 강민준 국가특별관리자원, 현 심인 대표 3인 중 하나가 의자에 구부정하게 기대어 책상에 다리를 걸친 채 모든 화면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열심히 눈알을 굴린다


[치익] [우서아 박사님. 목표입니다. 김미미와 오연희입니다.]
[치익] "모든 CCTV, 모든 감시 시설은 세 목표를 집중 감시하세요. 지하 정글 지대로 이동하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말고."

강민준, 정도윤, 심유나가 신원 불명의 높으신 분들 12인 앞으로 끌려간 직후 1주 동안 핵융합발전소에 일으킨 사실상 테러 행위 그리고 다수의 사상자와 재산피해에 대한 처벌논의와 그에 대한 변호로 갑론을박과 설전을 벌이고, 2주 동안 정글 우림에 수 천대의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나서야 그들이 드디어 나타났다.

'씨발, 그 덩치 큰 새끼. 존나 쪼아대기는'

12개의 붉은 조명 사이로 막말과 폭언, 고성 사이로 또라이 트리오를 진정으로 위협했던 건 중저음의 미성을 가진 커다란 실루엣.

{당신들이 일으킨 '테러 행위'로 우리는 당신과 동급인 인재들 여럿을 포기해야했고 그들 보다 더 훌륭한 인재를 희생시켜야만 했습니다.}

또라이 트리오는 그 순간 그 훌륭한 인재는 틀림 없이 '성민호의 재림' 한태성이라 확신했다.

{변론 해보시지요. 그저 "제 발로 돌아왔다"라는 말로 부족할 겁니다.}

정도윤은 그 질문에 얼어붙어 옴짝달싹도 못했고, 심유나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강민준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별에 별 일이 있어도 어떻게 따라와줬던 둘이 거기서 무너지던 것을 떠올리자 똥씹은 표정을 지으며 누룽지 사탕을 하나 뜯아 입에 쑤셔 넣는다. 결국 누군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했었고, 그 누군가는 머리 속에서 정리를 마치지 못한 자기자신이 되었다.

{하... 하하}

{아깝잖아. 아깝잖아! 국가특별관리자원을 죽였다? 그것도 우리 셋보다 더 나은 놈을 죽이셨다고요? 그것도 우리 때문에?}

{아직까지 안 죽이고 뭐하는 겁니까? 한태성을 어떻게 죽였는데요? 뭐, 원자로에 집어넣었어요? 숨이 멎을 때까지 바닷물에 담궜어요? 수백만 볼트로 가슴팍을 지졌어? 그것도 아니면 수백킬로 폭탄을 꽁꽁 싸고 터트리셨나? 설마 그걸 준비하느라 아직 우리가 살아있기라도 한건가요?}

{아니지, 아니야 아예 이 참에 모든 국가특별관리자원을 국가 전복 위험으로 규정하고 죄다 죽여버리는 건요? 성민호 김민철? 전국토에 폭격이라도 때리다 보면 죽기라도 하겠죠? 정 아니면 핵폭탄이라도 터치시던지!}

{안그랬잖아! 안그랬으니까! 우리가 아직 살아있잖아! 이 지경이 되서라도 아까운거라고요 당신들은!}

광기, 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목표를 두고 죽고싶지 않다는 절박함에 가까운 논리 없는 헛소리.

"빛이 있으라."

강민준의 회상은 밝은 조명과 명대사와 함께 막이 내린다. 강민준은 덤덤하게 '그 새끼구만' 하며 넘겼고 모니터링실에 있던 인원들도 잠깐 고개를 돌려 바라볼 뿐 큰 반응 없이 넘긴다.

"이런 걸 기대하진 않았는데."

정장을 차려 입은 요원. 처음엔 강민준과 대립하다 폭탄을 얻어맞아 몸의 2/3 씩이나 날라간 적이 있었으나, 강민준, 정도윤, 심유나를 리무진에 태워다가 높으신 분들에게 데려가던 중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소원과 함께 또라이 트리오와 작당한 인물.

"설마 어둠의 자식들아 이런 걸 바란건가? 우리 요원님도 참 대단하셔. 그건 내가 '어렸을 적'에나 있었던 일인데. 요즘 애들은 모르겠어."

"제 이름은 안 불러주시나봐요?"

요원은 명찰목걸이를 장난스럽게 들이대며 자기 이름을 과시하는데, 윤광철이라는 이름은 마커로 대충 찍찍 긋고 그 옆에 깨알 같이 이쁜 글씨로 임지안이라 적은 것이 눈에 띈다.

"아이고 윤광철 요원님 고생이 많습니다요."

"거 딱딱하게 구시네. 오 저 수험자 뭐야 완전 꼬마 아녜요? ㅎㅎㅎㅎㅎㅎㅎ"

윤광철, 아니 임지안 요원이 또라이 트리오가 심인 대표 3인으로 지정된 이후에 그들의 전담 요원이 되었다.

"왜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이에요? 저하고 여러분들은 좀 더 '깊게' 얘기해도 되잖아요?"

"... "

성민호와 김민철의 탈주 이후 정부의 관할 아래의 특별관리자원들은 전부 도청기가 심겨진 상태지만, 높으신 분들이 허용한 "성민호-김민철 끌어들이기 계획"이든 또라이 트리오와 순애보 요원이 작당한 "성민호는 죽이고 국가도 뒤집고, 김민철과는 데이트 계획"이든 임지안의 태도는 강민준을 살살 약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개- 후우..."

"말씀드렸잖습니까, 윤광철 요원님. 계획대로 진행되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민준은 이를 꽉물고 임지안의 도발을 무시한다.

"특별관리자원을 떨어뜨릴 계획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타겟이 시험에 떨어질 일 역시 없다고요. 목숨에도 지장이 없을 거라고요."

"그러니 요원님께서 수험생을 모니터링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임지안은 그 말을 듣고서야 만족하는 미소를 짓고 자리를 떠난다. 그렇다. 강민준은 높으신 12인의 계획대로, 그리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성민호와 김민철을 거의 그대로 프리패스 해줄 것이다.

'의도한대로 잘 걸렸고, 물론 성민호라면 이게 불나방 신세인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나머지 민간인 하나는...'

한봉팔. 불법택시업 따위로 위장한 잡범으로 강민준의 추적 결과 그 실체는 수도권과 몇몇 지방에 군사 거점까지 가지고 있는데다 백 여 명의 병력을 가용할 수 있는 군벌 우두머리 그 자체.

'놈이 그들에게 협력하는 동기를 알 수 없어. 도저히 모르겠어.'

'그래도 저정도 규모치곤 여태 조용히 지내다 여기까지 온건데, 재수없게 불법택시업하다 김민철이랑 성민호를 만나서 이 지경이 된건가? 혹시 이쪽으로 꼬실 수 있으려나? 내 진짜 계획에도 도움이 될지도'

'아니, 성민호의 지능이라면 속여먹거나 어르고 달래서 헛된 권력욕을 불어넣었을지도 몰라. 뭐가되든 지금은 미지수야. 어차피 민간인은 쟤 하나야'

강민준이 입안에 든 누룽지 사탕을 까득까득 씹으며 한봉팔에 대한 정보를 검토하다 포섭을 고민한다

[치익] [우서아 박사님 현재 수험생 소지품 검사 후 브리핑 중입니다.]
[치익] "확인, 알겠습니다."

"제어 팀, 로봇 가동하세요."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보고에 고심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담담하게 명령을 내린다.

"뭐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여기서 살아남고나서 말이지. 특별관리자원이라면 당연히 통과할 것이고, 아닌 사람이 통과한다면 심인 대접을 해줘야지."

"하.. 하핫 크하하하하하 으하 하하핫!"

"홍아린 박사, 자기 취향 로봇이 정글에서 살을 베고 다닌다고 들뜨지 마세요. ㅎ"

민준은 홍아린, 즉 정도윤의 오버 액션을 나무라지만 자기도 기대에 들뜬다. 정글 아래의 상황을 비추는 화면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뛰어다니는 로봇들이 가득하다. 스프링 같은 팔다리로 유연하게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직육면체 몸통, 가슴 중앙에 메인 카메라, 머리가 있을 자리에 톱날이 달린 기계팔. 누가봐도 그냥 쓰레기 같은 개인 취향이 가미된 모습이다.

"그 둘은 누가 만들었는지 다 알걸? 차라리 건○처럼 만들기라도 하지 진짜 쓰레기장에서 발전한 게 전혀 없어."

박승주 박사, 즉 심유나는 비명 지르듯이 좋아하는 정도윤과 어깨를 들썩이며 애써 입틀막 한채로 환호를 참는 강민준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 ㅆ, 어차피 통과 시킬 거 막 총 들고 방패 들고 그래요? 가성비라고요 가성비!"

"지랄한다 정도윤 그때 시간과 예산 타령한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 이 새ㄲ"

"박승주 박사님, 홍아린 박사님한테 말이 그게 뭐에요 이름도 똑바로 부르셔야지 ㅎ"

멀리서 벽에 기댄 채 이 촌극을 지켜보던 임지안 요원은 내심 이들과 작당한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해졌다.



 


 

성민호 ↔ 오연희

김민철 ↔ 김미미


강민준 → 우서아

정도윤 → 홍아린

심유나 → 박승주

임지안 → 윤광철

 

로그인하고 댓글 작성하기
루리웹 오른쪽
루리웹 유머
루리웹 뉴스 베스트
PC/온라인
비디오/콘솔
모바일

루리웹 유저정보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