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후 식물원이 개방됩니다. 참가자들은 입구에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입구에 서니 시원하게 뻗은 다리와 함께 끝에 반대쪽 입구가 보였다. 저기에 닿기만 하면 통과다.
“앞의 직선다리를 쭈욱 가면서 방어태세 갖추면 되려나요?” 봉팔이 뻔한 질문을 던져본다.
“대가를 지불하면야 아마 직선다리는 방어 안 해도 될 거야. 그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민철의 대답은 차가우면서도 걱정이 섞여 있었다. “그건 거래대상이 아니니까.”
“방어하면서 간다 하더라도 저기에 뭔 짓을 했을지는 알 길이 없으니까. 어디든 저놈들 손이 닿아 있겠지만, 땅을 디뎌야 그래도 덜 위험할 거야.” 민호 역시 봉팔을 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유리 차단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제한 시간은 4시간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어우 습하네” 식물원은 열대와 온대 우림이 뒤섞여 꽤나 습한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옆에 아마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지.” 민호가 오른쪽을 보니 과연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서두르자”
“아직도 위에요~~?” “굼벵아 뭐하냐?” 보니까 이미 봉팔과 민철은 아래로 내려간 뒤였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건 본인이었던 듯하다.
“적어도 봉팔이가 혼자 머뭇거리다 죽진 않겠네.” 적당히 웃어넘기며 말하는 중, 갑자기 풀숲이 들썩거렸다. ‘준비도 갖추기 전에 속도전으로 처리하려는 건가?‘ 민호가 긴장하며 서두르는 사이, 들썩거리던 곳에서 무언가가 점프하며 봉팔을 향해 팔을 뻗었다.
“시작하자마자 기습질이나 해 대고, 견적 나오는 놈들이네.”
민철이 칼을 빼들고 허공을 갈랐다. = 샤사삭 치잉 =
= 투두두두두둑 =
봉팔을 향하던 괴물체는 민철이 갈라버린 허공과 똑같이 네 조각이 나서 바닥에 흩뜨려졌다. 유인원형 로봇이었다.
“이런 고철덩이로 우릴 막겠다고?” 과연 속도나 민첩성으로나 뭘로 봐도 정말 어지간한 숫자가 아니면 이런 걸로 민철을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쟤들은 자기가 누굴 상대하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네.” 뒤늦게 온 민호가 분석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이 녀석들 신체가…” = 파바밧 = 말하는 사이 또 하나가 봉팔을 향해 달려왔다. 아무래도 이런 건 각오했던 건지 봉팔은 침착하게 화염방사기 스위치를 눌렀다.
= 화르르르르 =
다행히 로봇은 더 전진하지 못하고 연기를 내며 흙바닥에 쓰러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민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려! 전속력으로! 최대한 떨어져야 돼!!!!” 영문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저렇게 얘기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다 싶어 봉팔과 민철도 민호와 같이 전력질주로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아앙!=
로봇이 있던 곳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사람 몇 명은 너끈히 날릴 수준이었다.
“뭐… 뭐에요 저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처음부터 강한 공격에 당황한 봉팔이었다.
“미친놈들이 폭탄까지 심었구만, 우린 안 죽는다 그거냐?!” 민철이 흥분하며 한 마디 했다.
“일단 아까 하던 말부터 계속 하지. 저기 있는 로봇들 몸이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이야. 이 중에서도 연결부위는 마그네슘이라 화염방사기에 녹게 설계가 되어 있네. 일부러 이렇게 만든 모양이야.”
“마그네슘이 저렇게 터지는 물건은 아니잖아. 기껏해야 섬광으로 눈뽕하는 정도니 눈만 돌리면 되는데, 저건 안에 시한폭탄을 심은 수준인데?”
“네가 갈랐을 때 안 터진 거 보면 시한폭탄은 아니고 폭약을 심은 걸 거야. 마그네슘하고 연결되어 있어가지고 저렇게 불 맞으면 연쇄 반응으로 터져버리는 거지.”
“그러면 이 화염방사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잖아요?!”
“왜 걔네들이 무기를 셋만 줬겠어?” 민호가 뻔하다는 듯이 말했다. “절삭가공 칼은 본체 잘 자르라고 준 거지. 플라즈마 라이플도 저런 로봇들 원샷으로 조지기에는 딱이고. 민철이하고 나는 살아야 하니까.”
“그럼 화염방사기는요?”
“일단 로봇을 무력화할 수는 있으니, 공개장면에서는 너를 지킬 충분한 무기는 줬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겠지. 그리고 안에 있는 폭약을 작동시킬 기폭제로도 훌륭하고 말이야.”
“참 치밀하게 계산해 둔 판이네요. 연희씨 없었으면 그냥 꼼짝없이 폭사했겠는데요.”
“그래서 공구를 든 거지.” 민호가 말을 이었다. “얘들이 무른 금속을 쓸 것까진 예상했어. 그리고 절삭용 칼이 있다면 적당히 가공도 할 수 있겠지. 거기에 지금 로봇들 안에 폭약도 있고.”
“민호, 뭐 재밌는 거 생각하나 본데?” 호기심이 발동한 민철이 물어보았다.
“생각은 네가 한 건데 뭐.”
“뭘?”
“박격포”
“뭐라고?”
“간단해. 화염방사기로 금속들 적당히 무르게 해 줘서 박격포로 가공한 다음에 널 넣어서 저 입구에 쏴버리는 거지. 보니까 화약도 충분하고 말야.”
“새끼…꿈을 현실로 만드는 놈이었구만!” 민철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그런데 연희씨. 만들 줄은 아세요?” 당연한 봉팔의 질문이었다. 뭘 알아야 하니까.
“여기.” 그가 건넨 건 박물관에나 있는 M2박격포의 설계도였다. 200년도 더 된 2차대전 병기지만, 1.8킬로미터의 사거리는 식물원 입구에 닿기에는 충분하고 남을 만큼의 능력이었다.
“이건 또 언제 외우신 거래요?”
“너희들 무기 고를 동안 열심히 통신망 뒤져봤지”
“정말이지 딴 세상 사는 사람 같다니까요.”
이제 목표는 정해졌다. 충분한 금속을 모아 박격포를 만들고 민철을 쏘아 목표를 달성하면 될 일이었다. 남은 문제는 재료를 모으는 것뿐.
“그런데 박격포 만들려면 금속이 제법 필요할 듯한데, 로봇들은 어디서 데리고 오죠.”
“데리고 올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민철이 긴장한 듯 말했다.
“여기에 자석이라도 있는지 재료들이 알아서 오는군.” 그 말과 동시에 엄청난 수의 로봇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화염방사기 줘봐! 어차피 지금 네 상태로는 못 써!”민호가 말했다.
“여기요!”
“오케이, 재료들 모으고 있어! 민철, 봉팔이한테 오는 애들 잘 처리해봐! 난 뒤에서 막는다!”
“좀 많긴 한데, 그래도 하는 시늉은 보여야 VIP죽어도 변명거리가 있겠지?” 민철의 말과 함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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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욱=
=파아앙!=
=쿠궁=
민호는 아예 처음부터 최대화력으로 쏟아부어서 봉팔에게 닿기 전에 처리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상처투성이었겠지만 국가에서 해 준 조치 덕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후… 이런 거에 감사하긴 싫은데 요건 다행이네.”
=샥= 스르릉 =
민철도 쌍단도를 이용해 자기 실력을 십분 발휘해서 접근하는 로봇들을 갈라 버리고 있었다.
“헉 헉….와 이새끼들. 하아…도대체 여기에 얼마나 공을 쳐들인거야? 한 20개는 썰었는데도…헉…헉…”
“미미씨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너 죽는데? 걱정 마라. 니 디지기 전까진 괜찮을 예정이니까. 재료나 모으고 있어”
한 1시간쯤 방어했을 즈음일까, 로봇들의 공격이 뜸해졌다. 어느 정도의 방어에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민호는 화염방사기를 가지고 봉팔에게 갔다. 봉팔도 그 동안 헛일한 건 아니라는 듯 폭약과 금속들을 분리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좋아, 적당히 부드럽게 해 주자고. 불 켠다” 민호가 스위치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연희씨. 쟤들이 이런 잘 녹는 거 말고 철이나 텅스텐으로 준비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한 숨 돌린 봉팔이 궁금증에 물어봤다. 제 아무리 세계구급 천재라도 세상 모든 걸 알 리는 없으니까.
“만약 그런 걸로 준비했다면 셋 다 영원히 못 뜨거나, 셋 다 통과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안 됐을 걸?” 민호가 말했다. “공개적인 상황에 목적도 너무 구체적이니 수단도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거고, 난 그걸 파고든 거지. 비공개였으면 아마 나도 몰래 준비를 많이 해야 했을 거야.”
“여 여, 불조절 잘못해서 증발시키지 말고 집중하라고.” 역시나 쓸데없는 말은 별 관심없는 민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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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격포는 금방 완성되었다. 봉팔의 손재주는 둘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저장할 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저장만 되면 말한 대로 실행할 능력은 있었던 거다.
“오 엄청 빠르네?” 민철이 봉팔에게 감탄한 게 얼마만일까. 아니 처음이려나? 여하간 꽤나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어. 시험발사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워낙 약한 재질이라 한 번 쓰면 망가질 거야. 바로 쏴서 닿는 걸 목표로 하자.” 민호가 완성된 박격포와 시계를 동시에 보며 말했다.
“그리고 실패하면 민호 네가 봉팔이를 지켜야 되는데… 가능하겠어?”
“뭐 일단 지금 로봇들이 오고 있진 않으니까.”
“연희씨, 빨리 해야겠는데요. 로봇들이 오고 있는데 이건 미미씨가 있어도 불가능할 거 같아요!” 봉팔이 다급하게 외쳤다.
“뭔데 그래?” 하고 바라보는 순간 민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민철! 빨리 화약 장전하고 박격포에 들어가!! 시간이 문제가 아니겠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건 세렝게티 초원의 물을 찾아 행렬하는 누 떼처럼 몰려오는 로봇들이었다. 이 정도 숫자면 제아무리 최강의 전투요원이라 해도 지키면서 전투하는 건 불가능하다.
“도망치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민철도 상황을 파악하고 물었다.
“이 상태면 20초가 고작이야.”
“제길. 여하간 최대한 버텨! 발사만 성공하면 정확히 안 닿아도 되니까!”
“좋아 발사한다. 봉팔씨! 박격포 잡아줘! 화약 밀어넣었지”
“진작에 넣었어요”
“민철이! 너도 보호판 깔았지?”
“그래, 몸 성히 날아가게 깔았다.”
“좋아 발사한다! 우리의 운명을 향해!”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큰 굉음과 함께 민철이 문을 향해 날아갔다. 다행히 특별자원의 몸뚱이는 이 정도 충격까지 견디게 설계된 듯했다.
“근데 우린 어떻게 버티죠? 포위된 거 같은데…” 봉팔의 말에는 희망과 절망이 반반씩 뒤섞여 있었다.
“만들고 남은 재료들 중에 긴 거 들어. 민철이 닿기 전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모든 걸 계산하고준비한 민호도 그건 마찬가지었던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한 걸까, 로봇들은 하나씩 오지 않았다. 360도 포위한 상태에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육중한 손을 뻗는 순간.
[삐이이이이익!]
[한봉팔 외 2인, 시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로봇들은 모든 행동을 정지하였다. 언제 그렇게 흉폭하게 움직였냐는 듯이.
“닿았나 보네.”
“후… 살아서 나가네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 당신들 덕분이에요.”
“휴유…”
심인 시험의 첫 번째가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