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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중심지가 되어 버린 세븐 스퀘어의 입구.
“우리가 너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야.”
단발머리 세이비어 요원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세호를 바라보고 있었고, 세호는 그녀가 준 페트병의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방금 네가 은발 머리 이형력자랑 있는 걸 봤는데, 무슨 관계야?
“빨리 말해, 그래야 집에 가지.”
옆에서 불량한 분위기의 소년이 그녀를 거들었다. 세호는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혹시 은발 소녀가 사라진 이유가 세이비어 요원들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세이비어들을 보고 도망친 것일까?
“오늘 처음 만났어, 그리고 오해 마. 걔는 방금 몬스터들한테서 날 지켜줬어.”
세호는 떠올렸다. 검은색으로 물든 괴인 무리를 칼 한 자루로 처치하던 은발 소녀의 모습을.
“구해줬다고? 뭐 수상한 낌새 없었어?”
세호를 신용하지 못하는 듯, 그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사실이야. 나랑 같이 만나서 대피방송을 듣고 대피하던 도중에 같이 휘말렸었어.”
“그렇단다. 그만 보내고 돌아가자.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성게 머리 소년이 여전히 세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소녀를 불렀다. 그녀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호를 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느낀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갑자기 붙잡아둬서 미안해.”
“그 전에, 왜 그 애를 쫓는 건데?”
이번엔 세호가 두 요원에게 물었다. 단발 소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네가 만난 그 애는 며칠 전에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이형력자야..”
“그게 사실이야?”
소녀의 대답을 들은 세호는 오늘 아침에 친구가 말한 귀신 얘기를 다시 떠올렸다. 단발 소녀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지금껏 범죄자와 함께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 다른 세이비어들이 도착했을 땐 다른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 이형력자가 그 현장에 무기를 든 채 서 있었어.”
그녀의 눈빛엔 한 치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소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그 능력자를 잡아야만 해. 방금 지하 1층에서 엄청난 양의 이형에너지 반응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 능력자의 짓일지도 모르니까.”
민지의 말을 들은 세호의 머릿속에서 자신과 은발 소녀를 공격하던 철갑 거인이 허망하게 쓰러지는 모습과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이형력자로서의 세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건 나도 잘...”
“세호야!”
오늘 있었던 사실을 숨기려는 세호의 등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그의 누나 수민이 세호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누나?”
“너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수민은 세호를 만나자마자 황급히 그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멀쩡해.”
세호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누나를 진정시키려고 하자, 그제야 수민은 정신을 차렸다.
“그래....... 다행이다. 그런데 같이 있는 사람들은.......”
“응, 세이비어 요원들.”
수민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녀와 소년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세호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세이비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내 정중한 태도로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혔다.
“우리 동생을 구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아, 아니에요. 뭘... 동생분의 상태도 저희가 다 확인했고 별다른 이상도 없으니까 데려가셔도 괜찮습니다.”
수민은 재차 허리를 숙이고는 세호와 함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민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안하다. 시장 본 거 다 거기서 잃어버렸어.”
돌아가던 중에 세호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넌 죽다 살아난 주제에 그런 거 걱정을 하냐? 신경 쓰지 마. 마트가 거기 하나 뿐인가. 그리고 오늘은 배달 시켜 먹으면 되지.”
수민은 오히려 대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세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는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 그게 사실은.......”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왼손으로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수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형력 썼다고?”
“응. 바로 맞췄네.”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수민은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태연스럽게 말했다.
“무슨 남자애가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나는 세호 네가 이형력자든 뭐든 신경 안 쓴다고.”
세호는 가만히 수민을 바라보았다. 수민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세호 네가 그랬다는 건 꼭 필요했다는 거잖아. 그래, 안 그래?”
“그,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살았잖아. 그럼 된 거고.”
수민은 오히려 세호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세호도 수민을 따라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랬었지. 잠깐 깜박했었네.”
“어서 가자. 누나 배고프니까.”
수민과 함께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서 세호의 마음 속 근심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
“작전 결과를 브리핑하겠습니다. 2022년 4월 6일 17시 27분경. 차원 이상 현상에 의해서 12구역, 세븐 스퀘어에서 균열이 생성되었습니다. 심연을 통해서 나타난 몬스터, B등급 ‘오우거 치프(Ogre Chief)’ 1마리와 C등급 ‘오우거’(Ogre)와 D등급 ‘미니언(Minion)’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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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무실 같은 분위기의 방. 민지가 한창 지도를 비추고 있는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오늘 있었던 몬스터 침공의 결과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고 그녀의 일행이 탁자에 앉은 채 경청하고 있었다.
“계속하렴.”
검은 제복 차림의 일행들과 달리 유일하게 청색 자켓을 입은 여성이 부드러운 태도로 민지를 재촉하자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경혜 언니. 균열에서 몬스터가 소환되자 저희 리틀 나이츠 팀이 해당 구역으로 투입해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엄청난 양의 이형 에너지가 사건 지점에 감지되었고 그 시점에서 오우거는 이미 퇴치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구역에 남아있던 민간인들은 부상자는 총 15명이고 전원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래. 보고 잘 들었고, 이형 에너지의 발생 원인은 확인했니?”
경혜는 차분한 자세로 민지의 브리핑을 듣고 입을 열었다.
“네. 확인한 결과로 봐서 이형력자의 반응이 틀림없었어요. 그리고.......”
민지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장에서 서가인 요원의 아들, 박세호를 만났어요.”
“서가인 요원의 아들을?”
민지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서가인, 그녀는 과거 인트루더의 1차 침공 당시 각성했던 이형력자 중 한 명이었으며 전쟁이 한창이던 중에 수많은 인트루더를 퇴치하면서 이름을 날린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는데 일반인인 딸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이형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박세호였다.
“네. 그땐 상황이 상황이라 팀에 들어와달라고 말은 못 했어요.”
리틀 나이츠는 다시 시작된 몬스터의 공격에 대비해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사회, 또는 관리국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안에서 뛰어난 이형력을 가진 청소년을 선별하고 육성해 실전에 투입 시키자는 계획에서 설립된 신생 팀이다. 그런 리틀 나이츠 계획의 책임자가 관리 요원인 경혜에게 한 소년을 추천했었는데 그 소년이 박세호였다.
“그렇구나... 마침 너희가 나간 사이에 이게 왔는데 볼래?”
경혜는 방 구석에 있던 골판지 상자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민지가 곧바로 상자의 포장을 뜯어 안의 내용물을 꺼내자마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상자 안에는 여학생 교복 한 벌이 들어 있었다. 민지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교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그러면 내일 박세호를 우리 팀에 영입시키면 되는 건가요?”
“그 애가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상부에선 꼭 스카웃 하라고 하니까........”
기대감에 차 있는 민지와 대조적으로 경혜의 얼굴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미성년자들을 세이비어로 육성시킨다는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경 청년 역시 경혜와 마찬가지.
경혜는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저번 주에더 들었겠지만 민지는 성신 고등학교로 편입되었으니까 내일부터는 거기로 가면 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학교라...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네. 암튼, 괜히 긴장하지 마라.”
“맞아, 어차피 가면 다 친구들이야.”
성게머리 소년과 함께 포니테일 여자가 빙긋 웃으면서 민지에게 당부했다.
“에이, 왜들 그래? 저도 내일을 대비해서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는 팁도 다 정리해뒀어요. 봐요!”
민지가 가슴을 펴고 의기양양하게 수첩을 꺼내 들며 자랑하자 포니테일 여성이 조용히 청색 자켓 여자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우리 민지 너무 귀엽죠, 경혜 언니?”
“얘가, 애 놀리지 마. 그치만 인정.”
“역시 부정 못 하네, 경혜 씨.”
“셋이서 아주 애완동물 보고 앉으셨네...”
세 사람이 훈훈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민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오직 성게머리 소년만이 이 상황을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참, 나 잠깐 병원 좀 갔다 올게.”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포니테일 여자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뭔데요? 아저씨 혹시 숨겨둔 병이......”
“만나 볼 사람이 있어서. 먼저 간다.”
청년은 팀원들을 뒤로한 채 먼저 대기실을 나서며 홀로 되뇌었다.
“누님의 아들이라니, 사람을 잘못 뽑은 거 아닌가.”
이번에 다시 글을 쓰면서 필요없거나 반복적인 부분은 좀 쳐내봤습니다만
이번 글도 혹시 검토해주실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