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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와 라플라스의 악마, 그리고 인연

A버전


대악마 라플라스는 우주의 모든 변수를 파악하였고, 이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는 초월적 존재였다. 그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꿰면서 세상만물을 지배하였고, 그의 예지능력에 세상만물이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움직인 손가락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조차 다 아는 존재에게 어찌 대항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그가 지배하는 우주에 그가 몰랐던 나비가 하나 들어왔다. 나비는 작은 날갯짓을 하고 사라졌다.


그 날갯짓은 작았지만, 라플라스가 알지 못한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날갯짓은 작은 종을 울렸다. 라플라스의 지식을 받아먹던 존재들은 라플라스가 알려주지 않은 종소리에 매우 크게 당황하였다. 라플라스 역시 당황했지만,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면 자신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노릇이었다.


"너희들은 듣거라. 내가 알려준 예언에 빠진 곳이 있었구나. 저 종 역시 울리게 되어 있던 것이었느니라."


대부분은 그 말에 납득하며 평소의 피지배자로 돌아갔다. 그러나 일부는 달랐다.


"모든 것을 알아서 미리 내다본 사람이 빼먹고 얘기한다고?"


평소의 라플라스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플라스가 모르는 게 있다면 우리가 일어설 여지도 있다는 거다"


그렇게 라플라스에 대한 반란 모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알지 못했다. 평소의 그가 지배하는 세계라면, 그가 아는 모든 것에 기반한다면 그런 반란모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모든 변수를 알고 있다 생각하니 당연히 대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라플라스는 반란에 의해 권좌에서 질질 끌려 내려오게 되었다.


반란의 주동자는 말했다.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한 저 오만한 자의 최후를 보아라. 날갯짓이 불러온 반란모의도 생각하지 못한 주제에 우리 위에 군림하려 했구나! 하나라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참으로 쓸모없고 허약한 자일 뿐이거늘."


주동자의 이름은 인연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세상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세상이 멈춰있건, 새로운 것이 들어오건, 무언가가 사라지건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존재의 작은 변화에도, 작은 의지의 발현에도 세상은 이어져 있기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이를 기억하고 이어져 있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거라! 설사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들 그건 너의 의지가 실현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세상은 너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어져 있는 세상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라플라스랑 뭐가 다르냐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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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버전



라플라스의 악마, 우주의 모든 변수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초월적 존재라고 한다.


얼핏 보면 분명 있을 법하지만, 과연 초월적 존재라고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나비효과, 어디선가 분명 들어 본 이름일 거다. 브라질의 나비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설같은 얘기.


인연. 아주 친숙한 단어일 거다. 보통 사람간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불교에서는 세상 모든 게 직간접적인 인과로 연결되었음을 얘기하는 말이다.


날갯짓이 인연을 거치고 또 거쳐 텍사스에 닿았을 때, 그 미풍은 대서양의 기류를 타고 토네이도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기류가 없어서 타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결정하는 기류는 기후에 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달라지고, 기후는 태양풍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프레온 가스와 이산화탄소 땔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바닷물이 뜨뜻해져서건, 공기가 데워져서건 그렇게 날갯짓을 향한 인연은 세상 온갖 것의 영향을 받으며 결정된다.


하나의 일에도 세상만사가 이어져서 개입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일은 또다시 세상만사가 되어 다른 하나의 일에 또 개입하게 된다. 하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조차 세상만사를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하나를 알고 또 하나를 알고 그렇게 모든 걸 알게 되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x무한대


시간을 초월해서 알고 싶으면 일단 모든 걸 초월해서 알아야 한다는 거다. 신 외의 어떤 존재가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저 모든 게 이어져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모르는 게 와도 당황하지 않고 인연을 찾는 것 정도가 물질계의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리라.







"모든 변수를 알면 세상 원리를 지배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른 글을 써봤습니다. 학문적으로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불확정성의 원리와 나비효과에 의해 부정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철학 전공자의 관점에서 각색하다보니 약간 의미가 뒤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론 세상 모든 게 약하게든 강하게든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기에, 인간의 몸으로 라플라스의 악마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어짐을 알고 그때그때 대처하는 사람이 그래도 좀 더 정확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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