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원리에도 단계가 있는 법이다. 하나의 원리라 해도 조합방식이 달라지만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근육을 발달시키는 원리는 찢어서 복구시키는 것 하나이지만 각 부위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원리는 관절의 위치와 근육량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각 부위를 발달시키려면 각 부위를 연습해야 한다. 같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흑연과 다이아몬드와 그래핀은 보여주는 성질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 똑같은 근육이고 탄소일 뿐이다. 그들을 관통하는 공통점만 보지, 직접 다루지 않으면 다르게 바라볼 필요성이 안 느껴질 테니까.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원리는 공상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원리에 단계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들기 마련인데, 나는 오늘에서야 그걸 제대로 체감했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 생각했다. 수많은 키배, 철학수업, 수필 등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정말 많이 익혔고 글의 구조에서 지적을 받는 경우도 적었다. 하지만 글쓰기에도 기본 원리는 근본 단계일 뿐, 목적에 따른 원리는 다르게 생각해야 함은 잊고 있었다. 내가 썼던 글들의 목적은 논증이 거의 절대적이었던 걸 잊고 글쓰기 전체로 생각해 버린 것이다. 마치 우연과 필연이 결합해 성공한 기업가가 자신은 세상의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 안다고 생각한 꼴인 거다.
소설 방식의 글쓰기를 하며 정말 머리에 쥐가 나게 표현을 생각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썼지만, 결과물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별 고민없이 써도 논증글은 술술 나오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당연한 거다. 연마를 안 했는데 고품질 글이 뚝딱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직접 쓰기 전에는 뭘 근거로 그렇게 자신한 거였을까?
무식하면 용감해서 그런 거였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오만은 무식에서 온다... 말하기 전에 되새기면서 항상 떠올려야 할 말이리라.
이것만큼은 까먹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