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한봉팔의 집은 수육파티를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마무리 하던 중이었다. 자살을 하겠단 이유로 퇴사서를 낸 직장 동료를 떠나보내며 치룬 잔치였다. 국가에서 자살을 장려하는 사회가 된지 수십년이 되었다. 인구 과잉으로 인한 과부하 대책으로 발표된 첫날만 해도 산발적인 폭동이 일어날만큼 저항이 거셌지만 '선구자 성민호'가 '모범'을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나서서 죽겠다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 잔치를 벌이는 현실이 너무나 씁쓸해 봉팔이는 설거지를 하다 혀를 찼다.
'봉팔이... 이 아비는 지금 떠나지만... 넌 살아서 지옥을 살거다... 그래도...'
"언젠간 죽어서 만나겠지."
한봉팔의 머릿 속에 봉팔이 아버지의 유언이 스쳐지나갔고, 봉팔이는 그에 응해 답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자살을 지향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하고 가야지"
설거지를 마친 봉팔이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읊주렸고,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파티가 끝났음에도 거실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고 전부 봉팔이의 친구나 친척, 그리고 이웃들이었다. 봉팔이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둠의 자식 마냥 반사적으로 환한 조명을 끄더니,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두운 조명 하나만 켜둔 채 똥폼을 잡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신사숙녀'들은 그 모습에 다 아는 사인데 지랄 하지 말라며 상냥한 야유를 보내며 미소를 띄웠고, 개 중에 봉팔의 불알친구는 빈 맥주캔을 가볍게 던졌다.
"아유, 그래도 체면은 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봉팔이는 멈추지 않고 옷걸이에 걸어둔 중절모를 머리에 푹 눌러쓰며 다시 한번 야유와 함께 폼을 잡더니 의자에 앉아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식탁에 기댄 체 양손을 깍지 끼운 체 코 언저리에 두더니 '진지한 비밀결사' 같은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약 85년 전에, 제 아버지는 죽음론자였습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요. 마치... '종말이 온다' 피켓을 흔들며 목에 핏대 세우며 말하는 광인 취급하듯이요. 비슷하긴 했어요."
"아버지는 불로장생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특정 계층에게만 노화 역행 시술이 제공된 것도 아니었고요. 무한한 사회의 가능성이 있다고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니 정부의 정책은, 그리고 죽음을 거부하는 세계의 흐름은 결국 파멸에 이르리라 여겼죠. 뭐... 지금 세상이 개똥밭에 굴러서 사는 정도니 아직 파멸은 안한 거 같아요."
"어쨌던 아버지는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아서 무슨 수를 써서든 시술을 거부했고 그 길로 자연ㅅ..."
"봉팔이 이 시발 거, 혀가 왜 이렇게 길어? 여기 모인 사람들 이 지랄까지 봤으면 네 말 정돈 다 들어줘. 본론만 얼른 말해!"
"언성 좀 낮춰, 정부가 듣는다"
"진짜 그랬으면 진작에 닌자가 나타나서 우릴 몰살하고 남았겠지!"
"이모... 아니 그러니까... 다들 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의 가설 중에 그니까... 음..."
혀가 길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나. '죽음론자' 아버지에 대한 서사와 자신에 대한 견해를 서론을 시작해서 날이 샐때까지 얘기할 작정인 봉팔이는 자기 식구들에게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그 질책은 아예, 처음부터 이들이 자기 편이라는 것을 알고 감동했고 눈을 감은 체 심호흡을 한 뒤 상쾌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에게 못 다한 효도를 하려고 하는데요"
거실엔 2초 정도 정적이 돌더니 한바탕 대폭소가 펼쳐졌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뭐? 엌ㅋㅋㅋㅋㅋ 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잇 싯발 진짜. 아버지 가설 중에 있다고요! 국가가 국민에게 자살을 요구해도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보존해서... 아무튼 그걸 증명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봉팔이 때문에 저녁 개콘이 종영했지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네 말대로 따라볼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숨 넘어가듯이 웃어대는 성대, 떨리는 횡경막, 멱 따인 돼지 마냥 비명 지르듯이 주체할 수 없는 웃음.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봉팔이는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이 정도 비웃음을 살만큼 관심을 받았던 적도 없었고, 반대로 자신은 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며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야. 야. 봉팔이 자냐? 잔다 이 새끼 ㅋㅋㅋ"
불알 친구의 무전에 봉팔이는 운전석에서 천천히 눈꺼풀을 뜬다. 친척, 친구, 가족을 "음지"에 끌여들인 10년 째. 봉팔이는 불법 개인 택시를 운영하며 뜬 소문이라도 잡으려고 하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어 지쳐가던 참이었다.
"A 연구단지 숙소동 쪽에 호출이야. 왠 대학원생이 불법 택시 타고 야반도주라도 할 모양-"
"아 알았다고. 야... 근데 너..."
"왜?"
"10년 전에 내가 거실에서... 그 때 이후로 맘 바꾸거나 그러진 않았어?"
"뭐?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난 널 볼 때마다 웃겨서 못 그만두겠다고! 알아들었으면 손님 기다리게 하지말고 빨리 가봐 ㅋ"
한숨과 함께 차 키를 돌려 시동을 키고 클러치를 밟고 수동변속기를 조작한다. 이 방식은 봉팔이가 살아온 인생보다 더 오래되고 훨씬 구시대적인 방식이다. 어쩌면 봉팔이의 아버지보다 더. 왼손으로 핸들을 조종하고, 액셀을 밟았다 떼고, 클러치를 밟고 오른손으로 수동변속기를 조작하다보니 손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그 옆에 열댓살 정도되는 여자 아이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365일 24시간, 네비게이터도 GPS도 없이도 따따블만 쳐주시면 동서남북 어디든지 데려다주는 길동 택시입니다. 호출하신 분 맞나요?"
"네. 이 꼬마 아가씨가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아서요. 이 주소로 가시면 되요."
'꼬마만?... 이 불법 택시로?'
봉팔이는 왜 그냥 평범한 모범택시를 부르지 않고 불법택시를 불렀는지 의아해하며 여성에게서 쪽지-햄버거 가게 냅킨에 적은-를 받는다.
"... 핵융합발전소? 정말 여기가 아이의 부모댁이에요?..."
"4배. 현금으로 바로 드리죠."
"... 알겠습니다. 꼬마 아가씨. 뒷자리에 타면 되요."
네~ 하고 명랑한 대답과 함께 아이는 뒷자리에 으쌰 추임새를 넣으면 올라탔고, 봉팔이는 돈다발을 건네받고 돌돌이를 힘껏 돌리며 창문을 닫고 수동기어변속 과정을 다거치고 나서야 액셀을 밟는다. 봉팔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지만 그의 얼굴엔 승리의 미소가 성애처럼 껴있었다. 이건 뭔가 있다. 그래. 여지껏 이런 손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법적이거나 야반도주하려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운반책으로 쓰려던 작자들은 있었지만 이 정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은 처음이다. 손님의 속내를 알려드는 품성은 결코 택시기사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봉팔이는 그 따위것을 위해 친인척 친구 이웃을 음지에 끌여들인 게 아니다. 이에 봉팔이는 흥분한 나머지 논리에 맞지 않은 억측을 한다 :
'연구단지, 꼬마아이, 핵융압발전소, 연구단지, 꼬마아이, 핵융합발전소. 입막음 하는 셈으로 현금에 네 배를 줬어.'
'혹시 이들이 아버지가 내세운 가설의 인물 아닐까? 아무 근거도 없는데? 하지만 이 정황도 알지못하는 미친 상황은 틀림없이 죽음론자 광인이 내뱉는 근거 없는 헛소리에 필적하지'
동공이 커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심장이 맥동하고 등받이에 댄 등에서 셔츠너머로 식은 땀이 젖어든다.
'뭐가 되던 이런 사례는 처음이니, 지금 사무실에 있는 친구한테 원격 스캔을 부탁해서 신분 파악을...'
무전에 손을 데려던 순간 봉팔이의 목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닿았고 뒷자리에 있던 꼬마 아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뭔 헛짓거리야. 목적지까지 운전해."
"... 그게 아니면 소아성도착증이라도 있냐? 흥분하고 자빠졌어"
봉팔이의 뇌는 도파민으로 젖어들었다. 뉴런이 짜릿짜릿한 쾌락을 온 몸에 전달한다. 이제 더 이상 스캔 할 필요 없다. 의심도 필요 없다. 아무런 진척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봉팔이에게 하늘이 갑자기 증명이라는 보상을 내려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봉팔이는 환성에 취한 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 꼬마가 맞나요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