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인지 아니면 외계인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최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병사가 고속도로를 전력질주한다.
저것이 아마 나 자신일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하늘은 몹시 흐려 우중충 했고 나는 차량 한점 없는 어둑칙칙한 도로를 공포에 질린 채 냅다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겁을 먹어 무언가로 도망가는 게 아니었다. 뭔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한참을 달리는데 난데 없이 귀부인이 뭔가를 품고 내 반대편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심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려움이 성애처럼 끼어 있었다
호기심이 가기는 했지만 나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내가 결정할 수도 없었고 마치 이미 일어난 일이라 바꿀 수 없는 것 처럼
마침 국도로 빠지는 언덕도로로 내려가는 차에 저 지평선 너머로 버섯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완전히 겁에 질려버려서 달리는 것도 잊고 논둑 아래로 내려가 쭈그려 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노르스름하면서도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과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뜨거운 열기, 폭풍, 끝.
온 주위에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돌고, 찬찬히 눈을 뜨니 마치 성당 건물 같은 분위기의 계단 복도에서
두터운 꽃 무늬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을 인지했다.
방금 전의 꿈은 꿈이 맞지만 틀림없이 나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다시 살아돌아왔고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을 만나 떠돌이 생활 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기억을 곱씹거나, 내가 죽기 직전의 생을 떠올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착잡한 분위기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어이 김씨, 이것 좀 받으쇼"
윗층에서 동료가 스위트 콘을 던지며 건내는 말에 간신히 그 분위기를 떨쳐냈다
"저기요. 여긴 어딘가요."
캔을 따려던 그 순간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 귀부인. 꿈 속에서... 아니 내 기억에 있던 그 여자
혹시 내가 환각을 보는 게 아닌지 윗층에서 내게 스위트 콘을 던져준 동료에게 눈길로 눈치를 줘봤더니, 그 역시도 놀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안전한 곳인가요?... 여긴... 제가 어떻게"
귀부인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자마자 얼굴에서 손까지 검붉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잠깐만요. 당신은 어디서, 그니까 당신의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이 어디에요? 그 어둑칙칙한 고속도로, 그러니까-"
"네. 거기에요. 절 본 적 있나요?"
"예. 그런데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너무 아파요. 내 아기를 좀 맡아줘요."
그녀는 내게 반강제로 포데기를 안겨주더니 귀부인의 온몸에 균열이 트여 마치 당장이라도 조각조각날 거 같았다.
"아이의 이름으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귀부인은 산산조각이 나 재와 먼지가 되었고, 갑자기 바람이 일어 그 흔적 조차 사라졌다
너무나도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아기라며 안겨준 포데기는 도저히 온기가 없었다. 그것은 갓난 아기라기에 너무나도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이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집게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포데기를 한꺼풀 벗겨보니 포데기가 감싼 것은 유골과 시커먼 석탄 덩어리였다
난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