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으응ㅇ
1.
눈보라가 치던 한밤 중
장검을 든 병사와 커다란 도끼를 든 야만인이 대치한다. 병사는 폼새를 잡고, 야만인도 폼새를 잡아보지만 지쳤는지 크게 헐떡인다.
야만인이 고함을 지르며 병사에게 달려들자, 두 세 합을 주고 받더니 야만인이 쓰러진다. 뒤에 있던 포데기를 끌어 않은 여자 야만인이
이어서 공격 해보지만 여자 야만인도 쓰러진다. 그렇게 두 인간이 눈밭을 피웅덩이로 만든체 쓰러져, 입가와 코에서 김이 더 이상 새지 않았다
병사는 칼 끝을 땅에 두고 작전 중에 희생된 두 생명을 위해 잠시 기도한 뒤, 자리를 뜨려했으나 여자 야만인의 품 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포데기에서 나는 옹알이, 병사가 포데기를 살펴보니 그것은 흰 천이 아닌 하얀 털을 가진 짐승을 벗겨 만든 귀한 물건이었다
한꺼풀 벗겨 보니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병사를 반겨주었고, 병사는 전투 와중에도 한번도 울지 않은 갓난 아기에 감탄한다
병사가 망설이며 아기에게 검지 손가락을 내미는데, 야만인의 아기는 그 뽀송뽀송하고 작은 손으로 병사의 검지를 살포시 잡아주었다
이에 병사는 오늘 자신이 죽인 두 인간에 대한 죄책감이 자기 어깨에 커다란 성을 쌓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2.
병참장교는 버럭 소릴 질렀다. 알고지내던 병사에게 전리품을 자랑해보라며 들이대니 어색하게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추궁을 했더니
그가 품 속에 안은 포데기가 한꺼풀 흘러내리더니 야만인의 아기가 있던 것이다
병참장교는 적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게 아니냐며 큰 소리를 질렀지만 병사는 적반하장으로 검지를 입가에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눈빛으로는 닥치라는 메세지를 보낸다. 병참장교는 기가 차 장군에게 가려 했더니 병사는 간이 부었는지 가는 길을 막아서더니
여태껏 100여명 분의 식량을 빼돌려 먹은 비리에 대한 일을 알고 있다며, 또한 자기가 가져온 아기에 대한 책임을 병참장교에게 있다고 항의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병참장교는 얼굴이 터질듯이 새빨게져서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계형 비리이며, 너는 명령을 어겼으니 그 죄가 다르다고 코웃음을 쳤다
병사는 전시상황에 100명 씩이나 되는 식량을 반년이 넘게 빼돌린 죄라면 틀림없이 사형일 것이라며 마지막 경고를 한다
병참장교가 망설이자 병사는 자신이 취한 모든 전리품을 병참장교에게 쥐어주며 앞으로 잘부탁한다며 병사의 집으로 돌아간다
병참장교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씩씩대며 100번이 넘는 전투에서 살아돌아온 병사의 뒷통수만 째려볼 뿐이다
3.
병사는 포데기를 끌어 안은 채 나무로 된 문을 조심스레 연다. 안사람이 병사가 온 것을 알고 그를 반겨주며, 오늘 저녁도 보리를 묽게 만든 것이라며
손목을 잡은 체 식탁으로 갈 것을 강요한다. 그러더니 아들은 일찍 재웠으며 잡상인에게 특별한 묘약을 샀다느니 타령을 하는데 병사는 꿈쩍도 안하지만
그의 정신은 비명 지르고 있었다. 그러다 병사는 마음을 굳게 먹고 포데기에 감춰진 아기를 아내에게 보여준다
아내는 순식간에 정색을 띄웠으나, 가면을 쓴 듯이 환한 미소를 띄우며 저번에게 아기 고양이를 주워오더니 이번에는 야만인의 아기를 주워왔느냐며 묻는다
병사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아내는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혹시 자신과 몰래 전장에서
야만인 암캐와 떡을 친 게 아닌지 노골적으로 캐묻는다. 병사는 이번에도 역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내는 두 눈을 질끔 감은 채 믿겠다고 대답하고, 꺼내려던 묘약을 집어넣으며 이젠 없어도 되겠다고 말한다
4.
병사는 아내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러나 그냥 믿고 넘어가 줄 줄은 알았다- 데리고 온 야만인 아기의 젖먹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했다
아들은 다섯 살이고, 당연히 아내는 젖이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을 아내에게 묻자 아내는 품 속에서 다시 묘약을 꺼내더니 그렇다면 한번 더 임신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이번에야 말로 병사는 짧고 강하게 단말마를 지르며 손사래를 치며 묘약을 아내 품 속에 도로 넣는다.
그러고 나서야 병사는 헛기침을 하더니 그렇게 되면 아무리 수 많은 전장에서 살아돌아온 자기 봉급으로 지탱할 수 없다며 설득한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그렇다면 자기 시댁 쪽 사람, 두 골목 건너 처녀인 친척이 있는데 그녀를 설득해 임신 시키는 게 어떻느냐고 묻자
병사는 버럭 화를 내며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고 할 뻔했다. 병사는 긴 말 없이 그것도 안된다고 단답한다.
병사와 아내 둘 다 머리를 맞대며 끙끙대다 옆을 돌아보니 다섯 살 난 아들이 병사의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다
"아빠 오늘도 고생 많이 해써?"
"이건 뭐야?"
5.
병사는 태연한 척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허벅지에 앉힌다. 무엇 때문에 깊은 밤에서 깼느냐 묻자 아들은 쉬가 마려워 이불에 싸고 싶지 않아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병사는 아들을 들어올리며 이번에 쉬야를 가렸다며 온 동네 방네 자랑하겠다며 들떠 하다, 그대로 아내에게 등짝을 쎄게 얻어 맞는다. 아내는 아들을 변소로 데리고 간다
얼얼한 등짝을 뒤로 하고 병사는 식탁에 턱을 괴며 고민한다. 아들을 어떻게 설득해야할지... 아니 어떻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할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아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식탁으로 달려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병사는 아내와 눈을 맞추며 눈치를 찾고자 했고, 자기가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이건 물건이 아니라 아기야, 아빠가 설산 쪽으로 일하러 갔다가 나무하던 커다란 아저씨를 만났는데, 자기 사정이 안좋다면서 아빠한테 맡겼단 말이지"
"이 세상에는 나무꾼 거인 같은 건 없어"
"아, 당신도 참. 아빠가 잘못 알고 있고, 무지개 빛깔 곰이 이 아이를 물어다 준거란다. 얘는 네 동생이야"
"엥? 그럼 걍 야만인 아니야?"
6.
아내와 병사는 식은 땀을 주륵주륵 흘린다. 아이는 보육원에서 자기 집에 야만인이 들었다고 말하는 게 아닐런지, 아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 호기심과 천진함이란...
나라에서 점차 야만인에 대한 교화 정책을 하나 둘 내세우고 있지만 -아내가 구매한 묘약의 출처가 야만인 출신 잡상인이다- 보편적으로 절대적인 적대 정책이다.
하물며 이 아기는 병사가 병참장교를 "설득"하고 "약간의 성의"를 보여준 덕에 겨우 들여왔는데... 준 전시상황인 지금 이 사실이 퍼진다면...
"그럼 일단 내 동생이야?"
병사와 아내는 대답 없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와~ 그럼 애들한테 비밀로 해서 보육원 데려올 때 깜짝 놀래켜야지~"
하곤 호다닥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남은 어른 둘은 한숨을 내쉬며 놀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때 까지는 시간이 있다. 아들이 그 "서프라이즈"를 지키고자 한다면
하지만 아직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야만인 아기의 젖을 어떻게 해결하느냔 것이었다. 병사는 자리를 나선다. 이에 아내는 어딜 가냐고 묻자
병사는 병참장교가 승진에서 완전히 나가리 된 다가 횡령이나 하는 썩은 사람이지만, 상당히 박식한 사람이니 뭔가 도움을 구해보러 간다고 대답한다.
"이 시간에? 그 인간 오늘 당직이야? 나 원. 이 시간에 물어보러 갔다가 도와주려던 것도 못 도와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