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나의 무리와 함께 파도 타며 거닐던 시절이 떠오른다. 수압이란 것을 느끼지 못할 얕은 바다에서 햇살이란 것을 피부로 느끼며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헤엄을 친다는 것은 기쁜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추억은 어머니께서 야단을 치며 저 아래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자며 재촉하시는 것으로 끝났다. 어머니께서는 그들이 우리를 듣는다고 했다. 우릴 찾아 잡아먹는다고 하셨다. 나와 또래들은 분위기가 깨져서 한참 어색해졌고, 마지못해 어른들과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 소음을 낸다고 어머니께서 구박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래를 향해 천천히 헤엄치며 내려가면 점점 어두워지고,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도 그것으로 모잘라 더욱 더 아래로, 완전한 어둠이라 자처해도 될만한 곳보더 더 내려가고 나서야 우린 그제서야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각적인 앞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리와 촉각, 물결과 물살만으로 오징어 같은 것을 부리로 채가는 게 우리의 평범한 삶이었다. 그것이 나쁘다고, 불행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의문이 들어 어머니께 질문을 하면 겁에 질린 것 마냥 대답을 피하고, 오히려 이곳조차 심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고, 그곳이야말로 진정으로 안전한 곳이며 너는 반드시 그곳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말만 남기셨다.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숨을 쉬러 위로 올라가는 것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내가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위로 올라갈 땐 조용히 해야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어기고 중구난방으로 소리를 지르며 또래와 수다를 떨었다. 어머니는 질책하려던 눈치였지만 웃어른들은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며 말렸고, 난 그 바람에 너무 신이나 더 떠들어댔다
그것이 실수였다. 그들이 듣는다. 그들은 우릴 듣는다는 어머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햇살이 관통해 바다가 푸르스름한 빛깔을 띌 때 즈음 검은 무늬와 흰무늬가 교차한 이빨고래들이 우릴 습격했다. 그렇다. 그들은 정말로 내 소리를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 포식자들은 우리 어른 보다는 작았지만 몹시 저돌적이고 조직적으로 하나하나 잡아먹었다. 나보다 어린 아이를 수면에 다가가지 못하게 체중으로 눌러 익사시켰다. 어머니의 배를 물어뜯어 삼켰다...
큰어르신은 한 분 밖에 살아남지 못했고, 나머지는 다 내 또래다. 무리는 궤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르신께 왜 날 말리지 않으셨냐고 물어봤지만, 어르신은 자신들도 그동안 너무도 은밀히 살아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말했고, 또한 어짜피 우리는 수면 위로 올라갈 때 가장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고래들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 때문이다. 여태껏, 한 세대가 적습이란 것을 겪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해왔던 전통을 깬 내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어머니조차도
난 그렇게 스스로를 원망하며 무리에서 떠났다. 모두가 날 설득하려 했지만 난 듣지 않았다. 이대로 숨도 쉬지 않고 익사해 죽을 참이었지만 어머니가 말했던 '심연' 이란 것이 문득 궁금해졌다. 기왕 죽기로 결정했다면 심연이란 게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괴로운 마음을 봉돌 삼아
깊이 더 깊이
어둠보다 어둡게
그날 향유고래는 평범하게 대왕 오징어를 물어 뜯으며 식사를 즐기던 참이었다
스스로 크라켄이라 자칭한 그 식사거리는 최후의 저항으로 그 흉측한 빨판으로 향유고래의 이마를 긁고 할퀴었지만
결국 그 흉터는 향유고래의 영광과 생존의 상처에 불과할 것이다
식사를 마무리하던 참에 향유고래는 물살에서 무언가가 내려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 크기, 이 느낌... 틀림없이 향유고래 자신보다 더 작고 나약하지만, 천부적인 잠수재능을 가진 이들
하지만 이 아래로는 그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
그곳은 틀림 없이 심연일 것이다. 차라리 죽으러 가는 게 말이 된다
하지만 부리고래의 목숨은 자신과 상관 없는 일. 향유고래는 어리석은 자를 뒤로 하고 수면으로 향한다
...
깊이 더 깊이
어두운 것으론 부족해
앞이 보이지 않는 것으론 부족해
이정도 수압으론 아무렇지 않아
완전한 어둠으로 부족해
심연이란 게 이렇지 않을거야
어머니가 부를 만한 심연이라는 것은
훨씬 깊이
...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바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너머로는 내가 죽는 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수압이 당장이라도 날 해삼 크기로 쥐어짜버릴 기세라는 게 느껴졌다. 이 너머에 내려간다면 모든 게 끝나겠지. 하지만 어머니가 말했던 심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난 심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하나? 애초에 어머니가 말한 심연은 있기나 할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찰해봤다. 이렇게 깊이 내려왔는데도 뭔가가 남아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곳을 내맘대로 심연으로 정하고 죽자.
물살이 느껴졌다. 무언가 헤엄치는. 그것은 장어였다. 장어? 여기에? 하지만 틀림없이 장어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는 것을 인지했다. 너무나 허탈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였다. 장어 떼가 아니라, 이곳조차 심연이 아니란 것에. 어머니는 도대체 심연이란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 직접 보기라도 하셨을까?
최종적으로 이대로 심연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순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난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하며 그래도 언젠가 심연을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랐다
해양포유류 최강의 잠수력을 가진 부리고래 이야기였습니다. "공식적인" 최고 잠수기록은 2,992m로 잠수를 잘한다고 알려진 향유고래의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는 이들이죠
이들이 이런 재능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범고래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450m를 넘게 잠수하고, 그보다 더 깊이 750m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내는 소리 역시 범고래가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 잠수할 때도 아주 조용히 내려간다네요.
게다가 이런 은밀한 생활사 때문에 이들의 두개골이 해안에 떠밀려 오고나서야 인류가 그들의 존재를 인지했을 정도입니다
3천미터에 달하는 잠수기록과 이들의 생활사를 합쳐 한번 제맘대로 글을 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