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깨달음이나 경지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어휘를 하나 꼽으라면 난 ‘균형’을 꼽을 거다. 판타지의 드루이드나 동양 민간신앙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상을 줄 때 반드시 나오는 그 단어 말이다.
경지에 이르렀을 때 관용구로 균형을 쓰는 것,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중간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어디든 다가갈 수 있는 왕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중간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양상에 대해서는 보통 생각과는 다르다.
‘균형’에서 사람들이 어떤 걸 떠올리나 생각해 보면 상당수는 ‘고요’, ‘평화’, ‘조화’를 떠올린다. 자연 속에서 참선을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먼저떠올리고, 균형을 찾기 위해 산으로, 자연으로들 떠나곤 한다. 서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우러진 상태를 보통 ‘균형’으로 생각한다. 만약‘이상적인’ 균형이라면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과 가장 어울릴 것이다. 서로 움직이지 않아도 어우러질 수 있다면 이만큼 편하고 좋은 게 없을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균형이 ‘돌아가는 모습’이라면 난 다르게 생각한다. 균형은 끊임없는 충돌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성사되는 것이기에.
지구가 태양을 공전할 수 있는 건 지구와 태양이 서로 인력이 같은 지점에서 서로를 당기기 때문이고
사람이 몸을 유지하는 건 몸 안과 바깥의 기압이 같기 때문이고
저울이 평형을 유지하는 건 좌우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서로 끊임없이 똑같은 힘을 주고받기에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뉴턴역학은 이런 균형의 발생을 제3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역학의 핵심.
그리고 균형이 무너지면서 움직임과 변화가 이루어지고 세상이 작동하게 되었다. 수소와 수소가 충돌하여 꺾인 에너지는 지구를 데우는 핵의 힘이 되었고 열의 흐름을 공기를 흐르게 하여 기후를 만들어냈다.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서로 같은 힘을 주고받으며 균형이 유지되고 힘이 기울어졌을 때 발생한 역사는 사람 역시 세상의 원리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몽골의 힘이 강대해졌을 때 유라시아 대륙은 피로 물들었고
유럽의 금권이 강해지자 제국주의가 횡행했으며
북한은 힘이 강해지자 38선을 넘어 침입을 시작하였다.
일상사라고 다를 건 없다. 서로의 힘, 또는 의지라 부르는 것들의 충돌의 연속이니까.
부자는 돈으로 사람을 조정하고 빈자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 저항한다.
공무원과 민원인은 일의 처리가능성을 두고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
아이는 장난감을 사달라 떼를 쓰고 엄마는 안 된다 다그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세상사 돌아가는 원리가 하나로 보이긴 한다. 그렇다면 이걸 표현하는 적절한 표현에는 뭐가 있을까?
그 질문에 내가 생각한 답은 ‘지랄‘이다.
국가가 지랄한다.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에 민중의 지랄이 시작된다. 자신들이 짓밟히지 않기 위해.
기업이 지랄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이에 고객들도 지랄한다. 내 돈을 지키기 위해.
지랄하지 않으면 내가 희생되기에 지랄을 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 지랄질을 함으로써 균형이 지켜진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세상 모습도 결국 끝없는 지랄들의 균형을 통해 일정한 모습을 형성한 것을 멀리서 바라본 모습일 거다.
지랄하지 못 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요, 지랄하지 못 하는 사람은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리라.
그러니 우리는 필요할 때 지랄할 수 있어야 할 거다.
그렇다고 시도때도 없이 지랄하지는 말아야겠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지랄하는 건 균형의 붕괴와 같은 것. 지금은 조용해도 다른 맞지랄을 필연적으로 부르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