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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소설](짧음) 엎드리지 않는 자


"봉팔이... 이 아비는 지금 떠나지만... 넌 살아서 지옥을 살거다... 그래도..."

"언젠가 만나서 죽겠지. 요?"

"언젠가 만나서 죽겠지..."

봉팔이, 봉팔이가 걸터 앉은 조악한 의자, 링겔을 맞으며 누워 있는 봉팔의 아버지, 새하얀 침대. 그것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사방이 새까맣다. 봉팔은 봉팔의 아버지가 숨을 거두던 그 순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아버지가 말을 다하기도 전에 답한다.

"봉팔이... 이 아비는 지금 떠나지만..."

"꿈이란 건 제법 개같다니깐. 거진 백년을 살면서 이 장면을 몇번이나 되새김질 했는데도 이렇게 생생하고"

"넌 살아서 지옥을 살거다..."

"아버지가 고장난 것처럼 유언을 반복하는 건 좀 보기 그렇네. 예예, 그래도 언젠가 만나서 죽겠지요?"

"넌 살아서..."

"...?"

"지옥을 살거다..."

"넌 살아서 지옥을 살거다.." "넌 살아서 지옥을살거다." "넌 살아서지옥을 살거다" "넌 살아서지옥을살거다" "넌살아서지옥을살거다"

봉팔의 아버지는 서서히 상체를 일으키고 유언의 일부분만 점점 빠르게 반복함과 동시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냈고, 그가 꽂고 있던 링겔은 피가 역류해 점점 붉게 물들어 간다. 봉팔이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 동안 피가 봉팔의 턱까지 차오른다.

"넌살서줘글살거다"

봉팔의 아버지가 전하는 말이 너무 빠른 나머지 더 이상 인간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봉팔은 그대로 피웅덩이에 완전히 잠긴다





스산한 빗소리와 함께 개구리들이 구애의 노래를 떼창을 하는 사이, 봉팔은 핸드폰 알람 문자에 꿈에서 깼다.

"아이씨 개꿈 진짜, 새벽 1시에 왠..."

봉팔은 방금 꿨던 악몽을 그냥 개꿈 취급하며 실눈으로 책상 위를 호버링하듯이 진동음 짖어대던 핸드폰을 딱정벌레 잡듯이 잡아챘고, 화면을 두번 두들겨 문자를 확인한다

[안녕하십니까. 한○팔님. 국가자원관리청에서 핵심인적자원 시험 일시와 장소를 알려드립니다. 시험 일자는 금일 오후 1시, G 식물원에서 수속을 마친 뒤 시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정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시면 자동 불합격 처리되오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신청서에 같이 접수된 김○미님, 오○희님과 동행하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또한 해당 시험장에 총기류, 도검류, 호신도구, 기타 무기류 및 의약품은 반입이 불가하오니..]

"오늘? G 식물원? 좀 머네."

봉팔은 가슴팍을 벅벅 긁다가 기지개를 피고 고개를 몇번 휘휘 젔더니, 곁에 있던 주전자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방문을 나선다.

"연희씨, 민철씨! 일어나봐요 12시간 뒤에 시험이랍니다, G 식물원이요!"

"씨발 진짜"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외치는 봉팔의 목소리에 민호와 민철은 그대로 잠에서 깼고, 봉팔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자 민철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붕권아 한번만 더 그딴식으로 깨우기만 해봐"

"이젠 적어도 그럴듯한 범위 내에서 불러지시면 안될까요?"

"G 식물원이면 지하에서 하겠네."

봉팔이 민철에게 대꾸를 하는 사이 민호가 바로 결론을 내놓는다.

"거기가 국내에서 가장 큰 식물원인 건 알겠는데, 지하라니요?"

"특별한 건 없고 대중들한테 공개 안한거야. 내가 아직 성민호라고 불렸었던 시절에도 가본 적 있지. 그래도 광역도시만한 정글이 펼쳐져 있으니 장관이랄까"

"그게 특별하지 않다고요?..."

"나도 거기서 정글 모의 훈련 한 적이 있었지. 씨발 부하들한테 벌레 츄라이 당한 게 기억나네"

봉팔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갸웃대며 질문하자 민호는 그렇게 대단할 게 없다며 답했고, 민철은 한술 더 떠서 그곳에 있던 나쁜 기억을 떠올린 나머지 표정이 찌부러진다.

"잠깐 잠깐만요. 심인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채용하는데 시험 장소가 일반 대중들이 모르는 곳이라고요? 너무 불길한데요?"

"열 봉칠이도 천재 시다바리 행세 하더니 머리가 좀 찼나봐?"

봉팔은 민호의 말을 듣다가 불현듯 불길한 느낌이 들어 민호에게 따졌다.

"시험을 신청한 인원 중에 국가관리자원 대상자나 그에 준하는 작자들만 받아줬거나, 아니면 일반인 수험자들은 거기서 전부 죽이고 입막음 할 정도의 함정을 펼친 거겠지."

"정황상 전자야. 얘네가 앞으로는 공개적으로 채용하는 체 했지만 일반인을 끌어들여봐야 이득 볼게 전혀 없어. 근데 진짜 문제는 넌데."

"그... 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 가면 죽는덴다, 등팔아"

"애초에 국가관리자원 기준의 시험을 치룰 거면 평범한 사람은 절대 못 버텨."

봉팔은 그 말을 듣고 입을 굳게 닫은 채 눈동자를 굴리며 민철과 민호를 번갈아 보다 입을 뗀다.

"... 상관 없어요. 얼른 준비하세요, 바로 모시죠."

"햐 시발 운전석에서 미친 냄새를 내뿜던 그 놈이 어디가진 않네. 니 반동분자 친구들은 안봐도 되겠냐?"

"제 친척과 이웃, 친구들은 절 비웃기도 했지만 제가 무모한 목표를 내걸대도 무조건적을 따라줬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허송 세월을 보내다가 갑자기 두 분이 제 눈 앞에 나타났죠. 그저 재수가 좋아서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겁니다, 민철씨가 제 목에 칼을 들이 댈 때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설령 제가 거기서 죽더라도 그 꼬라지를 보며 웃어주기라도 하겠죠. 그게 제가 죽기 전에 할 일이란 거에요."

봉팔은 반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똥폼을 잡으며 방문턱을 나선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합니다. 그전 까지 잠을 자든 준비를 하던 알아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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