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엘든링 하면서 이 책을 읽느라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결과물로 서평 하나 써 봅니다.
도서명: 공정하다는 착각(Tyranny of merit)
저자: 마이클 샌델
출판사: 와이즈베리
정가: 18,000원
제가 철학 전공이다 보니 아는 분한테 가끔 철학 서적일 때 독서토론회에 와 달라는 요청이 옵니다. 얼마 전에도 참여 요청이 와서 어떤 책인가 보니 ‘공정하다는 착각’, 한국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저작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철학자니 저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싶었죠. 예전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제법 인상깊게 읽었기에 평소에 책도 잘 안 사는데 이번 기회에 책 좀 읽자 싶어서 한 번 펴 보았는데, 앞으로는 남이 추천하는 책도 좀 읽고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전 저서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경제학이 도덕을 대체하려는 시도에 대해 강렬하게 깠던 샌델은 이번에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대로 된 도덕관을 우선순위에 다시 올려놓고자 합니다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들
책은 2019년 미국 연방 검찰의 아이비리그 입시부정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로 시작합니다. 대학교 입학처 담당자나 입시자격 관련자(특별활동, 봉사활동, 표창 등) 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입학성적을 조작한 사건입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명문대가 사회의 판단기준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 사건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굳이 성적을 증명하기 위해’ 입시부정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미국은 기여입학이나 동문입학제도가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건 ‘능력’이 주는 정당성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이제는 인정을 넘어 ‘능력만큼 번다’는 말처럼 윤리적 정당성도 부여되고 있죠.
하지만 샌델은 이러한 능력주의가 윤리적 가치관에 대입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능력주의가 사회 전반에 퍼졌고 이로 인해 불평등과 증오가 퍼졌는데 이게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윤리적 가치인 것이냐는 말이죠. 브렉시트와 트럼프 선출을 능력주의의 결과물로 제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능력주의가 도덕이 되면 일어나는 일
샌델은 서구 사회 상당수가 겪는 정치적 위기를 엘리트의 능력주의의 보급과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와 그 중심에 있는 ‘능력만큼 가져가는’ 능력주의가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비기득권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박탈함에 이르렀습니다. 부는 유능함의 산물이자 신의 은총이요, 가난은 게으름과 나태의 결과물이라고 하면서요. 중간계층 이하 시민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들, 특히나 자기들을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진보성향 정당조차 능력주의를 신봉하며 자신들의 설 자리를 없애버리자 그들은 좌절하였고, 그로 인한 그들의 분노와 불신은 극우의 발호와 브렉시트, 트럼프의 선출 같은 파괴적 성향의 결과물로 도출되었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의 주장이 적용되는 국가를 보면 그의 논리가 현실의 톱니바퀴와 꽤나 촘촘하게 맞아들아갑니다. 레이건 이래 미국 정치인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능력주의를 강조했고 브렉시트가 일어난 영국은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조차 능력주의 신봉자였으며, 극우 르펜이 대선후보 1위를 찍고 있는 프랑스의 현 대통령 마크롱은 전형적인 능력주의자입니다. 독일은 동독 지역에서 극우정당이 꽤나 위세를 발휘하고 있고요. 모두 ‘도덕적으로도 버림받은’ 중간 이하 계층이 지분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능력이 도덕이 된 이유: 성공이 곧 은총인가?
샌델이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합해서 설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 논리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능력주의가 어째서 기득권을 옹호하고 중간 이하 계층의 도덕적 정당성을 박탈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샌델은 부는 신이 내린 은총이라는 청교도 윤리의 연장을 제시합니다. 그는 칼뱅의 예정설로 시작된 직업관, 신의 소명으로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은 경제질서를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게 만들며, 능력은 이러한 섭리를 실현하는 은총이므로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세속적 성공과 ‘연결’되면, 아니 세속적 성공과 은총이라는 두 탁월함을 혼동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능력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보게 되는 거죠. 세속적 성공이 능력의 증거고, 그게 곧 신의 은총이니까요.
비단 직업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급격히 사용량이 늘어난 ‘역사의 옳은 편’이란 정치적 수사를 통해서도 이러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NAFTA의 체결, 세계화뿐만 아니라 오바마케어, 성소수자 차별금지 등 정치인이 하는 오만가지 말에 ‘역사의 옳은 편’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게 이를 입증한다고 샌델은 이야기합니다.
빈자 기만하기: 능력주의의 포장
능력주의는 이렇게 능력, 그에 등치되는 부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도덕의 층계를 구성하고, 도덕적 열위에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미끼로 노력하면 누구든지 상위 계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기회의 평등’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아이비리그에서 상위 1%출신 학생이 하위 50%출신보다 더 많다는 현실은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계단같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올라가기 위한 계단으로 간주되는 대학도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영국의 가장 유능한 노동당 내각 중 하나였던 애틀리 내각은 그 이후 어떤 내각보다 대학 출신이 적었고,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결단력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명문대를 나왔다는 트럼프는 더 설명이 필요없겠죠.
기득권이 자기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인 대학은 올라가는 층계의 기능도 아닐뿐더러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샌델이 지적하는 점입니다.
너의 성공이 능력과 도덕하고 무슨 상관일까?
샌델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오만을 지적하면서, 능력 – 성공 – 도덕으로 연결된, 개념의 혼란으로 만들어진 능력주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합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세속적 성공을 도덕적 우위에 두어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금전적 가치를 세속적 성공의 근원으로 상정하고 가치와 능력, 도덕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위해 경제학자를 두 명 인용하는데, 놀랍게도 둘 다 케인지언 쪽이 아닌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입니다.
샌델은 우선 하이에크로 능력과 성공의 고리를 끊어냅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적 성공과 등치되는)부를 창출하는 가치가 능력과 무관하다 주장했는데, 재화의 가치는 오직 시장의 지불의사에 따를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면허만 있으면 되는 배달업이 숙련된 기술과 자격을 요하는 공장 노동보다 돈을 더 벌고 많은 인력, 기술력을 요하는 콘솔게임보다 뽑기 모바일게임이 훨씬 많은 수익을 내는 걸 생각하면 이 주장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이트의 이론을 인용하여 성공과 도덕의 고리도 끊어버립니다. 프랭크 나이트는 ‘시장 가치와 사회적 기여도, 즉 도덕은 등치될 수 없다’ 이야기합니다. 시장이 많이 요구한다고 도덕적일 수 없다는 주장은 마약과 코인이 엄청난 값에 거래되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겁니다(중간중간 롤스의 말도 인용하지만, 그의 윤리관과 고전주의 경제학자의 공통점을 논하는 선이라 주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능력과 직접적 인과관계라 여거지던 것들이 별 연관이 없음을 보임으로써 능력주의가, 성공한 사람이 존경받을 만하고 실패한 사람이 멸시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근원부터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사는 인생은 없다
이건 어떤 의미로 보면 운명론적일지도 모르겠는데, 샌델은 우연도 굉장히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가 인용한 막스 베버의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며, 자신이 그럴 권리가 있다고 납득하고 싶어한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비쳐지죠. 이 책에서 그가 자신과 거의 같은 주장을 한 롤스를 비판한 이유도 롤스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상정하지 않은 것이 컸습니다(사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다른 이유로 비판했죠. 여기서 우연이 강조된 것일 뿐). 하지만 깊이 보면 그건 운명론은 아닙니다.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다 서로 마주친 결과물이 그저 우연으로 보이는 것일 뿐인 거죠.
적절한 예시일지 모르겠으나 각자의 산업을 발전시키던 영국과 송나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둘 다 화석 연료(석탄)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었으며 산업 혁명급의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차이라면 주변 변수들이었죠. 영국은 주변에 자신을 파괴할 만한 세력이 없었지만, 송나라는 강력한 이민족을 적으로 두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산업 혁명을 이루었고 송은 몽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능력주의는 이와 같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한 평가를 누락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적절한 평가 잣대가 될 수 없다고 샌델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너 자신 주변도 알라
능력주의에 대한 모든 설명을 끝마치고 샌델은 자기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의 해결책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우연‘과 ‘공동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장으로 하면 공동선을 목표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성취에 관여하는 우연의 존재를 기억하자는 얘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 우연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명확히 설명되었지만, ‘공동선’은 말만 들으면 애매할 거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동선은 그의 이전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에 자세히 나와 있거든요. 한 철학자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학자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서 나옵니다.
혹여나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이전 저서에서 공동선의 주요 키워드를 발췌하면 시민의식, 희생, 봉사, 시장의 도덕적 한계(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연대, 시민의 미덕,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가 되겠습니다. 아마 키워드만으로 그가 지향하는 방향이 어떤 건지 대략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그래서 이 서평의 일부 추천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 정치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실마리를 마련해 보도록 디딤돌을 마련할 뿐이다’라 했는데 그건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결론일 뿐이라 정확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 책까지 다 읽거나 기억할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죠.
제목낚시를 용서할 수 있는 근원적 분석
사실 한역 제목은 책 내용을 적절하게 반영하지는 못했습니다. 책은 영문 원제인 ‘Tyranny of merit’, 능력의 폭정이라는 말처럼 능력주의의 폐해와 도덕의 복원을 다룰 뿐, 사람들이 인식하는 공정함은 중심 주제가 아니거든요. 어떤 면으로 보면 제목낚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한역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게, 한역 제목이 책의 목적은 잘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드래곤볼의 전투력 측정기마냥 공정의 기준점으로 쓰이는 능력을 다루면서 강조한 ‘능력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건 분명 핵심 주제니까요.
책 자체는 대단히 분석적이고 치밀하며, 그의 이전 서적을 읽지 못했어도 결론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도 서양 사람인지라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해석하여 아다리(?)가 떨어지는 부분이 생기는 건 옥의 티일지도 모르겠군요. 이미 중국에서 더한 방식으로 능력주의가 퍼짐을 설명하면서(가난한 사람이 장기를 부자한테 파는 건 당연한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사고가 이미 중국에서 증명된 것을 제시) 능력주의적 사고의 원인을 청교도 윤리로 보는 건 그리 바른 분석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그의 분석이 의미있는 이유는 근원적인 답이 책 안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샌델은 탁월함에 대한 혼동도 꽤나 설명을 할애했는데, 전 이 부분이 본질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 잘생기거나 능력있거나 하면 인성도 좋을 거라는 편견을 가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보이는 경향이기도 하고요. 한 가지의 탁월함이 다른 부분을 판단할 눈을 가려버리는 경우가 많죠. 능력주의도 그런 부분으로 봅니다. 능력 하나 좋다고 다른 능력도 좋은 게 아닌데, 그걸 본질로 판단해 버리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는 아니죠.
샌델은 한국을 어떻게 볼까?
개인적으로 한국은 그의 공동선이 그래도 가장 잘 구현된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시의 추첨과 뽑기, 다양화 등 샌델이 시험하자 제안한 건 2008학년도 수능, 수시 및 다양한 입시제도로 이미 구현되었고 시민의식은 욕 먹긴 해도 길거리 물건 안 훔쳐가는 거 보면 상위권이죠(자전거 빼고요). 민영화 하면 가장 난리나는 등 시장의 한계에 대한 인식도 꽤 퍼져 있고, 많이 약해졌지만 시민들이 정치인을 보는 우선순위에서 도덕이 하위권인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샌델의 공동선이 만약 실현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우리나라일 거라 생각하고, 그렇기에 이 책이 한국에서 가지는 의미도 더 클 거라 봅니다.
두서없는 책 소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