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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모기



새벽 두 시 깊은 밤, 피로에 절여진 눈꺼풀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부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나의 체취로 오염된 오래된 이불을 목까지 덮고, 그날 빨랫대에서 거둔 회색 티셔츠를 안대 삼아 눈에 덮은 채 잠에 들기만 기다렸다.


나의 시선이 눈꺼풀을 벗어나 콧등을 등반하기 시작하자 콧등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각이 한 20 cm 떠올랐고 나의 희미해진 정신이 그 정체불명의 감각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꿈으로 향하는 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짝의 새하얗고 푸른 빛을 내뿜는 문이 다 그려질 무렵 모기의 힘찬 날갯짓에 꿈으로 향하는 괴상하고, 몽환적이며, 편안한 의식이 무너져내렸다.


다시 피곤하고 괴로운 현실 세계로 돌아왔지만 놈을 죽이려 들지 않고 나의 피부와 귀로 모기를 관찰했다.


위잉 우우ㅜ우우이잉 하고 날갯짓이 몹시 힘찼지만,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지 어딘가 결핍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놈은 내 얼굴 주위를 돌며 성가시는 소음과 모기 정도의 바람을 일으켰지만 결코 내 피부 위에 착지 하지 않으려 했다.


놈은 피를 빨 줄 모르는 것인가? 하지만 다시 감각을 집중해보니 발등의 어딘가가 두 번 물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를 물어 피를 탐한 이상 놈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해가 뜨기 전에 잠에 들지 못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꼈다.


놈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비가 한번 쏟아지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놈은 어짜피 죽을 신세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꿈 속으로 향하는 문을 그리려고 했다. 나의 시선은 눈꺼풀을 벗어나 콧등을 타고..


우웅~ 위이이이이잉~ ㅇ에에ㅔ엥 위이이잉


놈은 피부에 앉는 걸 신중히 여기는구나.


나의 시선은 눈꺼풀을 벗어나 콧등을 타고 콧등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각이...


에에엥... 에~엥... 에에ㅔㅔㅔㅔ엥...


설마 일부러 꿈으로 향하는 의식을 방해하는 건 아니겠지.


나의 시선은 눈꺼풀을 벗어나 콧등을 타고 콧등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각이 떠올라 나의 희미해진 정신이 그 정체불명의 감각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나의 옅은 정신은 감각을 구심점으로 휘몰아쳐 꿈으로 향하는 문을 그리기...


에!~엥 우우우!... 웅! 위이이이... ~잉!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놈은 나를 재우지 않을 작정이야.


사실 놈이 나의 피를 신중하게 빨려고 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괴롭히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의 적에 대한 적개심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못했다.


안대 삼아 눈 위를 덮어뒀던 회색 티셔츠를 휙 던져버리고 번쩍 일어나 불을 켰다. 백열등을 흉내낸 LED 등이 주홍빛으로 방구석을 환하게 밝혔다.


스프레이 형식의 모기약은 내 취향이 아니라 집에 구비해두는 편은 아니고, 늦가을이라 놈이 약해졌지만 나의 동체시력으로 따라잡기엔 무척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너무나 피곤하고 괴로웠다.


하지만 그 모기가 나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놈은 내 방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놈을 확실히 사로잡는 법이 있지.


나는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보낸 방문을 걷어차 도망치듯이 마루로 나간 다음, 마루 한 구석에 자리잡은 뚱뚱한 양철통을 하나 열었다.


나선 모기향. 한때 푸르른 산림처럼 짙은 녹색의 나선 모기향이 지배적이었으나, 아마 녹색 색소가 발암물질이였던가 지금은 갈색의 나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양철통에 함께 동봉된 라이터로 모기향에 불을 붙여, 방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버렸다.


모기향은 모기에 특히 해롭지만, 사람에게도 건강한 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밀폐된 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지만 나를 괴롭힌 그 놈에겐 효과가 탁월할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점은, 모기에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그 모기의 생사를 바로 앗아가지 않는다는 점


나는 엉터리 가부좌를 튼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양 손의 중지와 양지를 이마 끝에서 차례대로 미간, 콧등, 인중, 턱을 쓸어내리며 놈이 고통 받기를 바라며 방이 연기로 가득 메워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놈이 실없는 날갯짓을 했다.


애애애...앵.. 애애앵... 애앵...


놈은 내 이부자리의 머리맡, 왼쪽 변두리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놈은 내 집게 손가락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둔해졌다. 나는 놈을 끝장내지 않은 채 집게손가락을 들어올려 나의 눈높이에 맞췄다.


놈과 나의 시선이 서로 맞았다. 나는 놈을 똑바로 바라본 채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길 바라며 손가락에 조금의 힘을 주고 엄지와 검지를 비벼 놈을 뭉갰다.


모기의 육신 부스러기가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은 채 촉촉하고 둥글게 말려버렸고, 그 시신과 함께 나의 일부였던 혈액이 나의 두 손가락 끝을 붉게 물들였다.


집게 손가락을 코에 갖다대 원래 나의 것이었던 체액을 맡는다. 쇠를 갈아내 물로 개어낸 뒤 인중에 바른 듯한 향취가 나의 코를 타고 올라온다. 향기로워.


아, 좋은 영감이야. 꿈으로 향하는 문을 그릴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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