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도 안개를 뜻하는 한자를 붙일 정도로 안개가 가장 큰 특징이자 명산물이라는 무진은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가상의 지역일거라 생각하는데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에 나오는 도시다.조그마한 항구를 끼고 있어 날이 지면 가라앉고 해가 떠 바닷바람이 불어와야 물러나는 안개는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서늘하게 감싸와 편안함과 신비함을 주는 풍경화의 안개나,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감추는 전설이나 위험을 숨기는 안개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무진의 안개는 우리가 익숙한 몽환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주인공은 주변인들과 대화를 하고 만나지만 언제나 자기의 모습을 투영하거나 과거만을 생각하면서 행동한다. 마치 안개속에서 얼핏 사람의 형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 같이. 주인공은 후배인 '박'의 모습에서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회피하려 하고 성공한 동기의 사무실에서는 자신의 서울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초라하고 가엾게 여긴다. 이쪽에서도 잘 보이지 않으면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지듯 주인공도 진심을 말하지 않고 안개 속에서 몸을 숨기듯 말하고 행동한다. '조'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화법이 신경쓰이거나 '조'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혐오한다. 무진에서 만나게 된 음악교사인 하인숙은 클래식으로 표현되는 순수함과 유행가로 나타나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행가를 부른다고 분노하는 '박'보다는 속물적이지만 하인숙을 결혼대상은 커녕 급이 떨어진다 여기는 '조'보다는 순수한 인물인데 그에게는 사랑을 말하려 하지만 드러내지는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갈등하면서 솔직하게 편지를 쓰지만 찢어버리고 상경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196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언제 읽어도 오래된 글 같지는 않았다. 무진이 안개로 가득한 지역이라는 장소가 신비함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마치 지금 사회에서 안개 속에서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가식적으로 말하거나 타인을 볼 때도 안개 속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처럼 내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