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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소설]죽지 못하는 사람


"내 대답은..."


복수라는 두 글자가 길고 긴 세월을 버텨낸 이성을 잠시나마 옭아맸지만, 당장 섣불리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일단 5분만이라도 같이 김민철과 이야기를 더 해보는 것이 맞다고 모든 정황이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온 것과 그 기회를 어떻게 쓰느냐는 늘 별개의 일이다.


"5분. 딱 5분동안만 나랑 이야기를 해 보자고. 그럼 그 때 결정하겠어."


"유감이군. 성민호."


김민철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목에 들이댄 칼을 아무런 지체도 없이 그대로 휘돌렀고 눈 앞의 칼은 살을 푸욱 파고들어갈 듯 휘익 하는 소리를 냈다. 내가 예상했듯이 칼은 단 1센티미터도 내 살갗을 뚫지 못했다. 모세혈관을 건드려서 피는 날 정도로 살점이 베어져나갔지만 그 뿐이었다.


"유감이군. 김민철."


"......"


"다행인지 불행인진 모르겠지만, 넌 아직까지 그 몸으로 살면서 죽고 싶단 생각을 안 해본 모양이군."


"...전력으로 칼을 찔렀어도 칼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가지지 않는군."

"지금의 나는 칼에 찔려도 죽을 수 없는 몸이야. 네 몸이 어린 여자아이가 아닌 특수부대 남성의 몸이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럼 내 몸도 지금 저런 꼴이란 말인가?"


"내 생각으로는."


"개같구만."


김민철은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자. 어서 안에 들라고. 커피 한 잔정도는 타 주지."


"싫다면?"


"지금 아쉬운 사람은 너일텐데?"


"그래 그래. 알았다고."


김민철은 그렇게 말하고 순순히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자마자 김민철은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 집은 금연이야."


"왜. 금연 열심히 해서 쌩쌩한 폐 달고 더 오래오래 살고 싶기라도 한가?"


"나는 그냥 담배 연기가 싫어."


"미안하게 되었구만. 그래도 피던 것만 마저 다 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김민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집에 커피믹스가 있긴 했지만, 김민철이 계속 담배를 피우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난 찬물 두 컵을 가져왔다.


"부탁하러 온 사람 치고는 하는 짓이 아까부터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커피 타준다는 말은 취소야."


"쩨쩨하긴."


"내 목에 칼을 들이민 시점에서 당장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난 최대한의 선의를 베풀었다만."


"쳇."


김민철은 남은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툭 던져버리고는 물컵을 받아채서 단시간에 비웠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보면 몰라? 나도 당한게 많아."


"그래서 할 거냐고 아니면 말 거냐고."


"한다고."


열 살짜리 소녀의 입에서 풍길 법한 냄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찌든내가 김민철의 입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저런 찌든내는 아무리 양치질을 하고 가글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이제부터 저 찌든내와 쭉 함께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 김민철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 하다니?"


"지금 내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 다른 특별관리자원을 찾아본다. 두 번째, 특별관리자원을 둘러싼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본다."


"첫 번째가 좋겠군."


"왜?"


"내가 먹물은 안 먹었어도 한신이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쓴 건 알거든."


"다다익선이라. 한신은 자신에게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군사들을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했지. 그쪽도 마찬가지야.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들을 더 잘 다룰 수 있을걸."







잘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넘기기는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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