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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따개비

파도는 거칠게 바위와 방파제를 때린다. 하지만 파도가 원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의지를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영혼이라 할 것이 마음이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 높은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고 파도를 법정에 세워 처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도는 사나운 물결을 일으켜 쓸어버리고, 후려치고, 집어삼킨다.

따개비는 바위나 방파제, 선박의 하단, 바닷결이 닿는 모든 물체 심지어는 바다거북의 등딱지에, 고래의 이마에 다닥다닥 붙어 산다. 본래 게나 새우의 어린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나 티끌보다 작은 자아조차 파도에 던져버리고 스스로를 석회로 감싼 채 징그럽고 경이로운 군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자신을 냅다 후려 갈기는 물결을 이겨내고 그 파도가 가져오는 바닷 속의 온갖 영양분을 빨아먹겠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목적이 없다. 본능이 있지만 선택 아닌 선택만을 내릴 수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이란 제한된 자원과 시간 안에서 양식을 먹고 번식하여 더 많고 다양한 자손을 남기는 것 밖에 없다.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조상 따개비는 견뎠다. 개중에 어떤 따개비는 견뎌내지 못했다. 어떤 따개비는 제때 양식을 섭취하지 못했고, 어떤 따개비는 기회가 없어서 자손을 낳지 못했다. 그렇게 운과 더 나은 특성을 가진 조상 따개비가 자손을 남겨 지금의 따개비가 남은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아 따개비를 남겼다. 다른 말로는 자연이 조상 따개비를 선택했다.

하지만 자연이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것은 자아가 있는가? 의지가 있는가? 대자연이라는 명확한 개념도 실체도 있지만 추상적이기도 하며, 그것이 의지를 실현하여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이상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는 그저 수준 이하의 말장난을 서술한 것으로, 그 누구도 자연이 의지를 가지고 돌연변이를 선택했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들 살아남았다고들 하지. 자연은 목적도, 의지도 없다. 난 그것이 더 소름 돋는다.


생명은 선택 아닌 선택만을 내릴 수 있고, 환경은 목적도 의지도 없이 공격을 퍼부으며, 자연이라 불리는 것은 실체가 있으나 자아가 없다.


번복되는 이야기다. 파도가 몰아쳐 바위를 집어삼킨 뒤, 견뎌낸 따개비는 자손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따개비는 사라진다. 이 모든 광경이 그 누가 의지를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게 누군가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게 아니란 것이 무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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