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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월 중순을 맞은 성신고등학교.
“그래서... 이 지문을 다시 훑어보면......”
학교에서 가장 지루하기로 유명한 영어 교사의 수업하는 목소리만이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2학년 4반 교실. 학생들은 영원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졸음과 싸우고 있다.
얼마 전 몬스터의 침공을 받아 부서졌던 학교 별관도 어느덧 다시 만들어졌고, 한동안 어수선했던 학교 분위기도 어느새 제 모습을 되찾은 지 오래.
“하암......”
교실의 뒷자리에서 조용히 하품을 삼키는 세호. 이전까지 우수한 모범생은 못 되어도 나름 성실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였지만 최근에는 그런 이미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오전 시간 내내 피로한 상태로 지금 같은 4교시 때마다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까딱. 까딱. 세호의 고개가 앞뒤로 흔들리면서 점점 눈이 감겨온다.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텨온 세호였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의 고개가 점점 책상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자, 자. 여기 좀 보자.”
“헉...”
교실에 나지막하게 울리는 늙은 교사의 목소리에 졸음이 확 달아난 것인지 세호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교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어 교사의 눈이 반 전체를 향해 있는 걸 확인하자 그는 안도했다.
“아직 점심시간도 안 지났는데 집중 못 하고 헤롱거리면 어떡하냐, 이 선생님 땐 학교에서......”
수업보다 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영어 선생 특유의 잔소리가 시작되려는 그때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까지 빼앗아서 잔소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영어 교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반장의 인사를 받고 교실에서 나갔고, 뒤를 이어 세호를 비롯한 학생들도 급식소로 가기 위해 교실을 나섰다.
“더럽게 피곤하다......”
점심 식사를 받아 자리에 앉은 세호가 중얼거리자 맞은 편에 앉은 그의 친구 성훈이 낄낄거린다.
“야, 너 오늘 그 소리만 네 번째다?”
“몰라, 임마.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랑 훈련까지 같이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세이비어가 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세호. 그가 처음 세이비어가 되던 날, 리틀 나이츠 팀의 관리 요원 경혜가 말하길, 세호가 학생과 세이비어를 병행하고 있는 건 관리국과 학교에서 내린 결정으로, 미성년자를 세이비어로 영입했을 땐 그 사람이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세호는 평상시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되, 다른 학생들보다 1시간 더 일찍 하교해서 리틀 나이츠 팀과 합류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덕분에 세호의 일과는 아주 바빠진 셈이다. 그가 세이비어라는 것이 학교 내에 알려진 건 덤.
세호가 세이비어가 되었다는 게 알려졌을 때 이름이 알려져 그를 보기 위해 교실로 몰려오는 학생들의 인파 때문에 잠깐이나마 곤혹스러웠었다. 사람들한테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세호에게는 더더욱.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세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 다만 세호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학생들의 눈빛은 여전하다는 것.
“하긴, 세호 너도 여러모로 피곤하긴 하겠다. 안 그러냐, 현모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성훈이 옆에 있는 현모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
“야, 장현모. 여보세요?”
다시 한번 현모를 부르는 성훈. 그러나 여전히 묵묵부답.
두 번이나 무시당한 것에 약이 오른 성훈. 그걸 눈치 못 챌 세호가 아니었다. 그는 넋이 나간 현모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악, 깜짝이야!”
현모의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진다.
“아...... 박세호, 왜?”
“왜긴. 뭘 보길래 우리 말도 다 씹냐?”
“아... 그, 그게......”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현모. 성훈이 다그쳤다.
“뭔데, 뭐야?”
아무 말 없이 현모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세호와 성훈의 시야에 잡힌 것은 한 여학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 민지의 모습이었다.
세호를 팀에 영입했음에도 민지는 몬스터 침공 시, 아직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세호를 인솔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여전히 학생의 신분으로 세호와 같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미 관리국에서 설립한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녀에게 있어 학교 수업은 이미 배운 것들 뿐이었지만 그녀의 성격 때문인지 학교 수업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방금 영어 시간에도 세호가 졸음과 싸우던 반면 민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맞다, 너 민지 좋아했었지. 직접 얘기를 해봐.”
세호의 팩트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현모, 현모가 민지한테 연심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외모도 출중하고 성격도 성실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타일이니까.
“아, 아니.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오, 이 답답한 새끼. 그러다 너 기회 놓친다?”
“됐어, 얘가 알아서 하겠지. 오늘 갈치 조림도 더럽게 맛없네.”
투덜거리는 성훈을 제지하며 세호가 일어나자 성훈과 현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점이나 가자.”
갈치로 가득한 잔반통에 남은 밥을 버리고 곧바로 매점으로 향하는 세호와 친구들. 매점에 도착했을 때 세호가 반사적으로 입을 연다.
“와, 극혐이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매점은 이미 많은 학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하긴, 다른 때에도 매점엔 사람이 많은 편인데다가 오늘처럼 점심이 맛없는 날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리.
“어쩔래, 그냥 외출증 끊고 편의점 갈까?”
“아니. 아까 나오면서 봤는데 편의점 지금 여기보다 사람 더 몰리더라. 그냥 매점 기다리는 게 나아.”
성훈은 교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모의 말대로 학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도 어느새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 지금 편의점으로 간다고 해도 매점보다 더 붐비면 붐볐지, 덜 붐비진 않을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 차라리 기다리고 말지.”
고민 끝에 매점을 선택한 세호 삼총사는 6분 남짓의 기다림 끝에 매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다음 수업에 늦지 않게 빵이나 음료수를 사서 나올 수 있었다.
“봐, 내 말 맞지?”
“하여튼 먹는 걸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
소시지 빵을 뜯어 먹으며 교문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는 현모. 편의점엔 여전히 매점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성훈이 낄낄거렸다.
세호와 성훈, 현모가 교실에 들어서려 할 때, 교실 앞문에서 불량한 외모의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세호나 성훈, 현모하고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세호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제발 상관 좀 하지 마.”
어떤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세호의 시선은 곧바로 교실 뒤편으로 향했다.
한 여학생과 민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여학생이 민지를 노려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 아니. 다친 곳은 없나 해서.......”
“손대지 마, 이형력자 주제에.”
여학생이 민지의 손을 거칠게 내치며 나가버리자 민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야, 무슨 일이야?”
“아, 박세호......”
세호가 민지에게 다가오자 민지는 말없이 교실 뒷문에 시선을 옮겼고 세호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오랜 귀차니즘과 싸우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소설 자체를 전대물 처럼 주연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에피소드를 주려고 써봤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부분에 여학생이 왜 민지에게 적대적으로 대했는지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풀 예정입니다.
뭔가 부족한 부분이나 추가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