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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한 음모론 같은 이야기



"...! ...! ...!"

새하얀 우주복에 卍 자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완장을 찬 그들은 달의 지표면에서 오와 열을 칼 같이 맞춘 채 오른팔을 높게 뻗었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을 월면으로 깎아낸 동상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 꼬라지 우습기 그지 없다. 심지어 그들은 무전을 키지도 않은 채 "헤일 히틀러" 빽빽 소리를 지르는 중이기 때문에 그 우렁차고 지도자에게 바치는 충성을 자기 자신 밖에 듣지 못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잦아들 때 즈음 반쯤 고장난 지게차 같은 것이 털털 대며 단상 하나를 옮기는 데, 단상을 내려놓자마자 시커먼 매연을 뿜더니 뻗어버렸다. 그러자 군중 사이로 독수리 훈장을 달고 있는 누군가가 무전을 켜고 신경질적으로 운전자를 구박하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머리통을 쏴버리고 단상에 올라섰다.

"제군들, 나는 우버 커맨다 발터 포머다."

스스로 우버 커맨다라 칭한 자가 단상에 올라 바디랭귀지를 보이자 나치 우주인들이 하나 둘 무전기를 켜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우리는 수십년 전에 추방당한 설욕을 되갚을 것이다! 위대하고 순수한 혈통만이 승리할 것이다! 미개한 야만족들을 몰아내고 우리 고향을 찾을 것이다!"

"헤일 히틀러! 헤일 히틀러! 헤일 히틀러!"

군중이 우버 커맨더의 연설에 열광할 때 즈음 그들 뒷편으로 수백 수 천 대의 프로펠러 달린 전투기와 수송기가 저주 받은 달을 떠나 푸른 별로 향한다.





한편...

여왕이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창 밖으로 비처럼 내리는 이슬과 그 이슬 방울을 비추는 휘황찬란 햇빛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 대지 아래에 펼쳐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군."

"여왕 폐하, 오늘 간식은 아침에 백성들이 바친 공물로 만들었습니다."

귀족적인 복장을 입은 롤링머리 노인이 군주에게 예를 다하자

"보살나뭇잎을 뜯어 돼지잡이통풀의 소화액으로 우려낸 차라."

"입 맛에는 맞으신지요."

"너무 시큼해서 끔찍하군요. 몇번이나 말씀 드렸잖습니까. 요리는 주방장에게 맡기라고."

나이 든 신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려 하자 여왕은 그를 불러세운다.

"그건 그렇고, 원정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우선 천공을 향해 탐험대를 보냈습니다. 우리 왕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문명이었지만 아무래도 수천 년이 지났으니까요. 그동안 교류도 없었습니다."

여왕은 잔을 들어올려 시큼한 찻물을 들이 마신다.

"수천 년 동안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태평성대를 보냈지만."

"수천 년 씩이나 도태되어 있던거였겠지요. 이 풍족한 감옥에서..."

롤링머리 신하는 고개를 숙여 간언한다.

"선왕께서도 이 세계 아가르타에서 벗어나 바깥 세상으로 다시 돌이켜보려 하셨으나,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완전히 포기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이 늙은이는 여왕 폐하를 따르겠나이다."

"아가르타 왕국에 영광을." "아가르타 왕국에 평안을."






한편...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울려퍼진다.

"너무 조용해. 누군가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게 분명해."

"이제 적당히 해, 이 피해망상 음모론자야."

과장된 몸짓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남자와 그의 친구가 서로 틱틱대기 시작하자 눈 밟는 소리 뿐이었던 남극 한복판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우리는 세상의 경계에 있는 거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끝'에! 넌 여기까지 날 따라왔어. 모든 여정에서 함께 해왔다고! 그러고도 모르겠어? 왜 아직까지 날 피해망상 환자 취급할 거면 왜 따라 온건데?"

"아르헨티나 해안 경비대의 추적을 따돌리고 해적에게 쫓기던 순간까지? 난 아니었어. 이건 여정이 아니라고! 내가 널 따라온 이유는 제수 씨하고 갓난 딸까지 냅두고 여기까지 온 네 정신머리가 걱정되서였다! 이걸 몇번이나 얘기했는데, 넌 네 말만 했지."

"뭐?"

"제수 씨한테 연락은 했어? 네 애 옹알이 마지막으로 들어본 적이 언제냐고!"

"그.. 그 얘긴 하지마. 그것보다는... "

"도대체 뭐가 그리 중요한!... "

남자가 진짜 소중한 것들을 별걸 아니라는 듯이 얼버무릴 하자 친구가 역린을 얻어맞은 것 마냥 버럭 화를 내려던 순간, 남자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왔잖아! 제발!... 제발 한번만 확인하면 된다고..."

"... "

"그냥 남극점 너머에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 있는지만 봐야해. 이 광대하고 넓은 평평한 땅에 그 악마숭배자들이 영역을 정해놓고 '지구'라면서 우릴 가두고 있다고!"

"부탁하는데 그런 타령이라니... 자세가 되어 있지 않잖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발견이고 탐험이자 놈들에 대한 저항이야! 모르겠어?! 모르겠냐고!"

"그래. 다녀와. 난 돌아갈테니까."

친구가 남자의 추한 태도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함을 느끼고 돌아서자,

탕 탕

그의 가랑이 사이로 두 발의 총성이 지나가 대기를 찢는다.

"이 개새끼가, 뭐하는 짓이야! 그만! 쏘지마!"

친구는 양팔을 들어올려 항복 제스쳐를 취하며 비명 지르듯 외쳤다.

"엠병할, 그 총은 어디서 꽁쳐뒀데?!"

"가지마. 넌 나와 함께 증인이 되어야 해."

"증인? 무슨 증인?"

"악마숭배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너머에 신천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증인."

"이... 씨이발."







한편...

"뿔 달린 자에게 고합니다, 당신이 내려준 사명에 복종하는 양치기가 그대를 위해 양을 길러주니, "

[삐빅- 남극점 경계선에서 민간인 둘 포착됨. 하나는 극성 음모론자. 사살 요망.]

"... 허가함, 으음. 부디 그 양식을 드셔주시옵소서."

"위대한 염소에게 바칩니다, 가장 충직한 하인이 그대를 위한, "

[북극점 너머 쥘 베른 천공에서 미확인 인간 무리 발견됨. 지시 대기 중.]

"... 대기, 흠흠. 절대 권력을 쥐어줄테니."

"그대의 다섯 별이 온 우주를 집어 삼킬 때 양치기가 육신마저 바칠테니, 온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 "

[현재 비상 상태에 임박함! 궤도에서 미확인 비행대 다수 확인! '프로펠러'로 우주를 비행 중!]

"그만."

붉은 빛 조명이 꺼진 뒤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주변을 훤히 비추자, 붉은 오망성이 새겨진 성경을 가슴 팍에 품은 중년의 남성이 싫증을 부리며 대답했다.

"저 쉬는 시간입니다. 기도문 정도는 외우게 해주세요."

"빌어먹을, 새파랗게 젊은 양반이 연차를 내더니 이렇게 바빠지기는. 쯧"


중년의 남성은 잠시 혀를 차며 신세를 한탄하다 삼각형 눈알이 새겨진 손목 시계를 쳐다보더니,


"아예 쉬지도 못했군. 그래도 일은 해야지."


새하얀 형광등이 꺼지자 도로 붉은 빛으로 방을 물들였고 중년의 남성은 넥타이를 고쳐멨다.


"알파 'UFO' 대대, 출격하십시오. 격추 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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