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구독자 27명 | 파블로프의자명종

선혈



깊은 밤,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폰을 보는데 가느다랗고 신경질적인 소음이 귀를 때린다.


폰을 이리저리 휘둘러 그 근원을 찾아내고, 화면을 벽 삼아 빠르게 엄지로 찍어내린다.


소리의 근원은 단말마를 지르지도 못할 미물이지만, 찍하는 듯한 그리고 연약하고 사악한 육신이 뭉개지는 기분 좋은 진동이 엄지 끝에서 팔 전체로 퍼져나간다.


엄지를 들춰 그것의 다리, 그리고 몸통들이 너저분하게 짓뭉게지고 새빨간 피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물들인다. 


또 다른 하지만 똑같은 소음이 칠판에 손톱을 긁듯이 귀를 스치자 바로 손살같이 뒤를 돌아 벽을 때리는데, 새로 도배한 벽에 선혈과 그것의 뭉개진 사체가 얼룩진다.


이미 새하얀 벽지는 피와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다.


그것을 멀리서 감상하는동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아무 의미도 이유도 없는 일임을 알고도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생물의 사체에 다가가 속삭인다.


너희 동족의 육신으로 아름다운 꽃을 그리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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