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오도라 콤니니 + 예루살렘 국왕 보두앵 3세
https://en.wikipedia.org/wiki/Theodora_Komnene,_Queen_of_Jerusalem
(요안니스 2세의 손녀)
(왕비 재위 기간 : 1158-1162)
1158년 동로마 제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보두앵 3세는 동로마 제국에서 왕비를 구했다. 테오도라 콤니니가 왕비로 선택되었으나 5년간의 결혼생활 중에 후사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왕위는 보두앵 3세의 동생이었던 아모리가 승계했다. 이후 그녀는 그 안드로니코스 1세의 애인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1남 1녀를 보았다.
2. 마리아 콤니니 + 예루살렘 국왕 아모리
https://en.wikipedia.org/wiki/Maria_Komnene,_Queen_of_Jerusalem
(요안니스 2세의 증손녀)
(왕비 재위 기간 : 1167-1174)
(소생 : 요절한 장녀(1171년생), 예루살렘 여왕 이사벨 1세(1172년생))
동로마 제국과의 동맹을 위해 동로마 제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마리아 콤니니가 선발되어 왕비가 되었다. 다만 그녀가 시집왔을 때, 테오도라와는 달리 (테오도라나 보두앵 3세나 둘 다 초혼) 아모리에게는 이미 결혼이 무효화된 첫 아내 아녜스 드 쿠르트네와의 소생들이 있었다. (시빌라, 보두앵 4세) 왕비와 그녀의 의붓아들 보두앵 4세 사이의 관계에는 애정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분명히 야심을 드러냈고, 아마도 후계자 계통에서 자신의 자손보다 보두앵이 우선한 것에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두앵이 한센병에 걸렸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왕실 결혼에서 아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아모리 왕 사후 예루살렘 왕국의 귀족인 이블랭의 발리앙(<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이 된 실존인물 맞다.)과 재혼했고 이 사이에서 2남 2녀를 더 보았으며 나중에 보두앵 4세와 시빌라가 모두 사망한 후에 그녀의 딸 이사벨이 왕위를 이었다.
킹덤오브헤븐의 발리앙
<그녀의 군사적 기여>
1184년 살라딘은 케라크를 다시 포위하고 보두앵 4세의 군대 앞에서 다시 한 번 도망쳤다. 왕의 모든 군대가 케라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살라딘은 (마리아가 있던) 나블루스를 공격했다. 발리앙 역시 케라크에 있었기 때문에, 방어를 지휘한 사람은 아마도 마리아였을 것이다. 도시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라딘이 도시를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프랑크인들을 그녀가 성채 안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살해당하지 않았다.
가능성?) 아모리의 다음 국왕 보두앵 4세가 아프지 않았다면.
https://en.wikipedia.org/wiki/Baldwin_IV_of_Jerusalem#Planned_offensive
The price which Manuel demanded for his help was the same as that which he had required of King Amalric in 1171 - the establishment of Byzantine protectorate in the Crusader States. For this to be effective the emperor needed permanent representatives at Jerusalem and Antioch. The Orthodox patriarch Athanasius, who had fulfilled that role Antioch, had been killed in an earthquake in 1170, while Amarlic queen Maria Comnena, who with her with her household had represented Byzantine interests in Jerusalem, had retired from public life in Baldwin IV Reign. As there was no possibility of arranging a new Byzantine marriage alliance with the royal family of jerusalem because Baldwin IV could not marry and his sister was married already, Manuel proposed to restore an Orthodox patriarch there.
마누일은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 1171년 국왕 아모리 [보두앵 4세의 부왕 아모리] 에게 십자군에 동로마 제국의 보호령을 세우라고 요구한 것과 같은 대가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 황제는 예루살렘과 안티오크에 영구적인 대리인이 필요했다. 안티오크에서 역할을 수행했던 정교회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는 1170년 지진으로 사망했고, 그녀의 가문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동로마 제국의 이익을 대변했던 아모리의 왕비 마리아 콤니니는 보두앵 4세 치세에서 공적 생활에서 은퇴했다. 보두앵 4세가 결혼할 수 없고 그의 누이 [시빌라] 가 이미 결혼하여 예루살렘의 왕실과 새로운 동로마 혼인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마누일은 그곳에서 정교회 총대주교를 회복하자고 제안했다.
Baldwin IV must therefore have agreed to Leontius [Leontius II] ' coming, and the only reason he can have had for doing so was that Manuel [Manuel I] had made his protection of the Latin Kingdom against Saladin conditional on the restoration of the Orthodox patriarch.
그러므로 보두앵 4세는 레온티우스가 [그리스 총대주교 레온티우스 2세] 오는 것에 동의했을 것이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마누일이 라틴 왕국을 보호하고 살라딘에 대항하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정교회 총대주교의 복원이 조건으로 되어 있었다.
Bernard Hamilton, 『The Leper King and His Heirs : Baldwin IV and the Crusader Kingdom of Jerusalem』,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24310
보두앵 4세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한센병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센병이 없었다면 보두앵 4세 역시 백부와 부친처럼 왕비를 동로마 제국에서 두었을 수 있다.
3. 테오도라 콤니니 + 안티오크 공작 보에몽 3세
https://en.wikipedia.org/wiki/Theodora_Komnene,_Princess_of_Antioch
(요안니스 2세의 증손녀, 아마도 위의 마리아 콤니니의 자매일 것이다.)
그녀는 안티오크 공작 보에몽 3세의 두 번째 아내이다. 그러나 마누일 1세가 죽자 동로마와의 동맹이 더 이상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테오도라와 이혼했다. 테오도라는 이후 벳산 영주의 아들 Walter of Béthune와 재혼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보에몽 3세의 누이 마리아가 바로 마누일 1세의 황후였고 알렉시오스 2세의 모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