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왕국의 왕위 분쟁 : 시빌라와 이사벨 사이에서
6대 예루살렘 국왕 (재위 : 1162-1174) 아모리의 부인들과 후손들
첫번째 부인 : 아녜스 드 쿠르트네 (결혼 : 1158-1162/무효화)
장녀 : 시빌라 (1160년경)
- 아들 보두앵 5세 8대 예루살렘 국왕 (재위 : 1183-1186)
장남 : 보두앵 4세 (1161) 7대 예루살렘 국왕 (재위 : 1174-1185)
두번째 부인 : 마리아 콤니니 (결혼 : 1167-1174 / 아모리의 죽음으로 사별)
= 요안니스 2세의 증손녀
차녀 : 이사벨 (1172)
보두앵 4세 사후 단독 국왕이 된 보두앵 5세는 1186년에 사망했다. 시빌라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루살렘에서 시빌라와 그 남편 기 드 뤼지냥의 대관식에 대한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의 경쟁자 레몽(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은 이사벨과 그 남편 험프리를 대립 군주(rival monarchs)로서 왕위에 앉힐 것을 제안했다. 이사벨이 아버지 아모리의 치세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전에 태어난) 시빌라보다 더 낫다는 주장은 이사벨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동로마 제국의 Porphyrogeniture(born into the puple) 전통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Porphyrogeniture?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태어난 자녀보다 아버지가 왕이나 황제가 된 후에 태어난 자녀의 권리를 선호하는 승계 시스템이다. 이러한 관행의 예로는 동로마와 Nupe Kingdom이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11세기 후반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서 이것은 잉글랜드의 헨리 1세가 그의 형인 로버트가 아닌 자신이 상속받아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It is clear that Raymond's party now planned to prevent Sibylla's accession by throwing doubt on her position as plus dreit beir aparant. It was suggested that she was the daughter of an illegitimate and annulled marriage with Agnes, which King Amalric had been forced to repudiate before the patriarch would crown him, and that she had never been legitimised. Only her sister, Isabella, moreover, had been born to Amalric while he held the throne : behind this argument might be seen the ideas of Isabella's mother, The Byzantine Maria Comnena now married to Balian of Nablus and thus closely allied to the baronial party, proposing the prior claims of a child 'born into the puple'. But on his accession Amalric had insisted on the legitimisation of his children and Sibylla had been enfeoffed with a royal apanage, ... And if Sibylla was illegitimate so then too were Baldwin IV and Baldwin V, both of them descendants of Amalric and Agnes.
레몽의 당파는 이제 그녀의 지위, 그러니까 plus dreit beir aparant에 따라 의심을 던짐으로써 시빌라의 즉위를 막으려는 계획을 세웠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아녜스와의 불법적이고 무효화된 결혼의 딸로, 아모리 왕은 총대주교에게서 왕관을 받기 전에 그것을 부인하도록 강요받았으며, 그녀는 결코 합법화되지 않았다고 제안되었다. 더욱이 그녀의 여동생 이사벨만이 아모리가 왕위에 있을 때 태어났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이사벨의 어머니인 동로마 제국의 마리아 콤니니가 현재는 나블루스의 발리앙과 결혼하여 baronial party(레몽의 당파)와 밀접하게 동맹을 맺었다는 것과 ‘자줏빛에서 태어난' 아이의 선행 주장을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즉위했을 때 아모리는 [아녜스와의] 자녀들(보두앵 4세, 시빌라)의 합법화를 주장했으며, (따라서) 시빌라는 세습 자격을 지닌 왕실의 일원이 되었고, ... 그리고 시빌라가 사생아였다면 [선왕들인] 보두앵 4세와 보두앵 5세도 마찬가지였는데, 왜냐하면 둘 다 아모리와 아녜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The feudal nobility and the kingdom of Jerusalem, 1147 - 1277』 108p
Maria Komnene, Queen of Jerusalem
https://en.wikipedia.org/wiki/Maria_Komnene,_Queen_of_Jerusalem#Succession_dispute
Born in the purple
https://en.wikipedia.org/wiki/Born_in_the_purple#Porphyrogeniture
Riley-Smith, Jonathan, 『The feudal nobility and the kingdom of Jerusalem, 1147 - 1277』, Springer,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