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 구독자 22명 | 프로코피우스 | Troubadour유스티니아누스 1세

성상파괴의 시대 (1)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에서 준동한 이슬람은 중동의 양대 거인 동로마 제국과 사산 페르시아가 수십년 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한 틈을 타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야르무크에서 주력 야전군을 잃은 동로마 제국은 순식간에 이집트와 시리아, 킬리키아를 잃어버렸다. 제국은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는 이슬람 세력을 최대한 막으려 했지만 콘스탄스 2세가 조직한 해군이 로도스에서 이슬람 해군(정확히는 이슬람 점령 하의 이집트 해군)에 의해 소멸되는 타격을 입으며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러한 제국의 위기를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내부의 갈등이었다. 3대 칼리파 우스만(644~656 재위)이 암살당한 후, 후임 칼리파의 자리를 놓고 이슬람은 5년에 걸친 내전을 겪게 되었고 이 기회를 틈타 동로마 제국은 내부를 추스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슬람이 무아위야 우마이야(661~680 재위)의 휘하로 재통합되며 이슬람의 제국 공격은 다시금 거시화되었다. 672년부터 이슬람(이하 우마이야 왕조)은 대군을 동원해 제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로도스, 키오스를 비롯한 에게해의 도서지역과 키지코스, 스미르나와 같은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가가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에 점령당했다. 무아위야 우마이야가 콘스탄티노플을 노리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674년부터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군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은 당대 기술력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요새였다. 그러자 무아위야는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제국령을 공격해 초토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은 굳건히 버티어냈다. 수년 간의 지지부진한 공성전은 결국 우마이야 왕조가 제국과 강화 조약을 맺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물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고 동로마 제국은 다시 한 번 이슬람군과 결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 당시 제국의 상황은 심히 좋지 않았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 -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그리고 다시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마지막으로 레온 3세가 황위에 오르는 동안 제국은 내전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겪어야 했고 이와 더불어 우마이야 왕조의 공격으로 인해 북아프리카 지역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국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아나스타시오스 2세가 이슬람의 침공을 대비하여 다시금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보수하고 식량을 비축하는 한편, 해군력을 강화했다는 점과 현 제국의 황제였던 레온 3세의 즉위로 당분간 내부 권력이 안정화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레온 또한 이슬람의 침공을 예측하고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717년 6월, 우마이야 왕조는 다시금 군을 동원해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가가 다시금 우마이야 왕조에게 점령당했고 이번에는 콘스탄티노플 근처 트라키아까지 우마이야의 군대가 진을 치기 시작했다.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의 육로와 해로를 모두 차단하고 포위하여 도시를 고립시켰고 레온의 평화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견고했고 동로마 제국의 해군 또한 강했다. 지난 포위전에서 처음 등장해 우마이야의 해군을 불태웠던 그리스의 불은 이번 전쟁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과시했으며 때아닌 강추위 또한 우마이야군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다시금 막대한 육로와 해로로 지원군을 보내 위기를 타개하려 했지만 해군 측 지원군에 속해있던 그리스도교 노예들이 우마이야군을 배신하며 지원군을 혼란에 빠뜨렸고 이 기회를 틈탄 동로마 해군의 공격으로 우마이야의 해군 측 지원군은 격파되었다. 육로쪽 지원군 또한 마찬가지 상황을 맞았고 이들 또한 니코메디아 인근에서 패배하고 후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불가르족이 제국을 도와 우마이야군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그 동안, 콘스탄티노플에 묶여있던 우마이야의 본대 또한 막대한 손해를 입고 퇴각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약 2년에 걸친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제국의 완벽한 승리로 끝맺음하게 되었고 이슬람 세력의 진출 또한 이 전투를 기점으로 동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국을 위협하던 외환이 사라지며 제국에 평화가 찾아오는듯 했지만 이번에는 제국 내부에서 또다른 분쟁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문제가 아닌 종교 분야에서 자라나는 분쟁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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