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 구독자 22명 | 프로코피우스 | Troubadour유스티니아누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기마상 3D 복원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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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게에 올라왔던 사진을 여기에도 올립니다.

예장용 갑주(로리카 무스쿨라타, 즉 근육 흉갑입니다. 이 시기에 실제 전장에서는 철갑, 쇄갑을 사용했습니다)를 걸치고 공작깃관을 쓴 유스티니아누스가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왼손에는 보주를 든 기마상의 모습을 3D로 복원해낸 모습입니다. 하기아 소피아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높이도 하기아 소피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유스티니아누스 1세 대는 고대 후기가 맞나 봅니다. 이라클리오스 대부터는 중세 로마로 치는 편이고요. 우상 숭배 금지 원칙이 그리 엄격하지도 않았고, 황제 숭배 문화가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교를 숭배하는 사람(예: 트리보니아누스)은 고대 후기에도 욕을 푸지게 먹긴 했지만 말이죠.


성상 파괴 논쟁이 극심했던 시기에도 저 동상이 무사했다고 하니(물론 저 기마상이 콘스탄티누스 1세 동상으로 오인된 게 크다고는 합니다. 성상 파괴론자라 해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창건자 동상을 부순다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겠죠), 시민들과 후대 황제들에게 저 기마상의 위치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된 이후 저 동상이 우상이라며 부수어진 게 안타깝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해선 크리스트교보다 더욱 엄격한 이슬람 입장에선(천사 지브릴의 계시를 받은 이후 시기의 무함마드 얼굴도 안 그릴 정도니까요) 이교도 황제를 우상으로 숭배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4차 십자군 때문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영묘가 도굴당해 시신이 유실된 시점에서 저 기마상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유스티니아누스의 외양을 실제 외모와 흡사하게 복원할 수 있었을 텐데, 역사를 좋아하는 후대인 입장에선 꽤나 속이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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