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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소설] 엎드리지 않는 자 - 원점

언더월드 오버턴의 신자라 밝힌 수험생이 테트로독신에 중독된 채 실려간지 2시간 째, 민철은 구석에 기대어 다른 특별관리자원들을 예리하게 살펴본다. 민호는 곁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이며 수험생의 특징을 얼추 예측해 특별관리자원이 되기 이전에 어떤 자들이었는지 머릿 속에서 카탈로그를 짜냄과 동시에 광신도 귀부인 내뱉었던 말을 곱씹는다.

"영팔이 저 새끼 금새 지루해졌다고 저 지랄이네. 저렇게 둬도 되는 거야?" 민철이 팔짱을 끼며 봉팔이에 대한 불만을 내뱉는다

봉팔은 1시간 전 까진 두 사람 곁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있었으나 금새 포커 판 쪽으로 기어들어가 기웃대던 참이었다.

"쟤가 뭘 발설할 놈은 아니야, 게다가 여기까지 왔으면 봉팔이 나름대로 정보 습득하게 두는 편이 낫겠지."

"그건 그렇다 쳐, 근데 그 뿐만이 아니야."

"지금 실려간 광신도고 나발이고 대기한 지 2시간 째라고. 놈들이 공개 시험이든 뭐든 간에 자기 입맛대로 계획을 변경하기 시작한 게 분명해."

"그래서 당당히 합격해서 정보부 문서를 입수한다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거다?"

"그렇지. 시발 수틀리면 본전이고 뭐고 이대로 탈주하자."

"좋아. 목숨 걸겠다고 똥폼 잡던 봉팔이가 실망하겠네"

민철의 결심에 민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긍한다. 광신도 귀부인이 여러가지 발설한 이상 높으신 분들이 최소한 정상적으로 진행할 거란 보장은 사라졌다. 민호 입장에선 봉팔이가 변수가 될 가능성을 보인 이상 전원 목숨이 온전한 채로 정보부 문서를 입수하지 않으면 실패나 다름이 없었다.

"씨발, 봉팔이가 지금 계획에 제일 핵심이라서 이 모양이잖아. 1차 시험에서 개같이 구른 보람이 없어졌어."

"그래도 박격포 타고 날아가긴 했잖아. 그 정도면 평생 소원 아냐?"

[휴게실에서 휴식 중이던 전 수험생 분들에게 알립니다. 잠시 후 2차 시험이 재개됩니다.]

['탈진 증상'으로 실신한 수험생 역시 회복이 완료되어 시험에 투입될 예정이니, 이 점 참고 바랍니다.]

"하! 탈진!"

민호는 빈 종이컵을 구기며 휴지통으로 던져넣는다

"역시 그 귀부인이 높으신 열두 분들하고 연줄이 있긴 한가본데, 그런 말까지 하고도 재투입이라니."

"미시가 떡정이라도 쌓아둔 거 아냐?"

"그 인간 원래 아재였을 거다. 정신 좀 차려 민철아."

[추가로, 변경된 시험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1차 시험에서 합격한 수험생을 무작위로 3인 1조로 선발하여 각자 지정된 시험장에 투입하여, 2시간 동안 비살상 로봇에게 포획당하지 않으면 합격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단인데요?"

봉팔이가 방송을 듣고 그제서야 포커판에서 돌아온 참에, 민호는 이마를 탁치며 답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탈주할 거란 소리다."

"네?! 그 고생을 했는데요?"

"씨발, 뒤 좀 보라고"

"삐리립 비빅- 수험생들은 본 안내 로봇을 따라 이동해 주십시오."

민호의 경고에 봉팔은 뒤를 돌아보니 휴게실의 모든 엘리베이터에서 '안내 로봇'들이 쏟아져나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안내 로봇 같은 소리 하네, 1차 시험에서 달라진 게 없잖아?!"

개중에는 다른 특별관리자원을 신나게 찢느라 튄 피를 닦아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또... 또 얘네들이랑 엎치락 뒤치락하라고? 내 살을 찢는데?"


"어차피 합격시킬거면 그냥 대충대충하면 안되나. 정글 한복판에서 앞뒤로 잡혀서 척추가 뽑히는 줄 알았는데."

"강민준 이 개~새끼 진짜"

커피를 마시거나 포커를 치던 다른 수험생들도 그 광경을 보고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성이 터져나온다. 심지어 표면상으로 우서아로 알려진 강민준을 언급하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튀어나온다.

"수험생 한봉팔 님, 무작위로 선발된 조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

봉팔은 안내 로봇을 따르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에 움찔하여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네.. 안내하세요."

"오 봉팔이. 방금 좀 추했어."

"하하. 이제 와서 이름 제대로 부르기에요?"

민철이 그 움추리던 기세를 놓치지 않고 봉팔을 놀린다.

"오늘 새벽에 호언장담한 것치곤 조금 쪽팔리게 되긴 했네요."

"됐고, 내가 그날 네 목에 칼 들이댔을 때 기억해?"

"그 느낌만 잘 잡아서 어떻게 살아만 있어라. 그리고 어떻게든 위치를 우리한테 알려줘, 찾아갈 테니까."

"그럴게요, 고마워요."


감사의 말을 전한 봉팔은 안내 로봇의 뒤를 따르며 민철과 민호에게서 멀어진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 고물들을 전부 찢고 봉팔이를 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첫째로, 여긴 너무 좁은데다 지금 휴게실에 들어온 로봇들이 백 대가 넘어 둘째로 그러다 봉팔이가 죽을지도 몰라"


"이 극한의 상황을 전부 뚫고 봉팔이를 살려낸다 쳐도 그 다음엔 909 특작 부대를 부르겠지. 네 후배들 말이야."


"난 지금 여기 고철들에 더해서 909 애들까지 몰려와도 전부 죽일 자신이 있는데, 역시 봉팔이가 문젠가."


"이미 선 넘긴 했지만 아직 시험은 시험이야. 로봇들이 시험장마다 적당히 분할되서 달려들건데, 다른 애들도 썩어도 준치라고 특별관리자원이니 봉팔이도 어떻게 빌붙어 살길 바라야지."


민철과 민호가 작전을 짜는 사이 위잉철컹하고 안내 로봇이 둘에게 다가온다.


"수험생 김미미 님, 오연희 님, 장원경님. 같은 조로 선발되셨습니다."


그 말을 통보하고 고릴라 같은 몸체를 철컥철컥하고 떠나는데, 그 뒤로 민호가 처음 와서 커피를 마실 때 잠시 언쟁을 나눴던 인물이 뒤따라 왔다.


"하아~ 시이발"

안내 로봇에 의해 장원경이라고 밝혀진 남성은 한숨하듯이 욕을 내뱉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내민다


"내가 전에 좀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한데. 이렇게 된 이상 잘해봅시다."


"얘네 아직 정신 못차렸는데? 이걸 우리 둘이 묶어?"


"아예 우리 둘이 이 시험을 망쳐달라는 거 같은데. 이정도면 꽤 명확한 메세지야"


"우선 봉팔이가 보낼만한 신호를 포착하면 그쪽으로 가보자고."


"좋아."


"어... 저기요? 성민호?"


민철과 민호는 신나서 작전을 짜는데, 장원경이 용기를 내어 내민 손에 반응은 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신호를 못 보내면?"


"너랑 내가 각자 수색해야지."


"넌 제대로 못 싸우잖아."


"적어도 너랑 똑같은 요소로 구성된 신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야. 설마 이번엔 무기를 안줄라고."


"... 이래서 틱틱대지 않고 평소에 잘했어야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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