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구독자 27명 | 파블로프의자명종

여느때와 다름없이 인터넷을 하던 중 한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글쓰기 게시판? 글쓰기 게시판이라. 태생이 관종이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말같은건 또 못하는지라 난 어릴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말머리에 또 중2병이 있다. 중2병? 중2병이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 된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신의 정서와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행위가 오글거림과 중2병이라는 한 단어에 덧없이 묶인 지가 언제였던가를 더이상 나는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가는 상관 없다. 나에게는 이 일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개똥철학도 철학이건만. 세상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자각하는 시기에 한번 내면에 골몰해 보는 것이 그렇게나 아니꼬운 사람이 많은 것은 개탄할 일이다.


풀이 초록색이라면 '다른 색으로 있어도 될 것을 굳이 초록색으로 있어서 적록색맹 환자들을 배려하지 못한다' 하고 욕하고 바다가 푸르면 '나는 파란색이 싫은데 왜 파란색인 것인지 모르겠다 불편하다' 하고 욕하는 정말이지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 못하고 배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가장 튀어보이기 쉬운 행위 중 하나이다.


나는 소위 말해 꼰대를 매우 싫어한다. 꼰대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꼰대짓이 나이를 절대로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아직 스무줄의 반도 지나가지 않은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그런 꼰대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21세기가 된지 20년도 넘었는데 아직 20세기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상심리와 합리화에 절여진 청소년 꼰대들을. 나는 그들의 곁을 걷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인간이 바로 나라면 그건 너무나도 비참할 테니까.


그러다가 유머 게시판에서 요즘 학생들이 여러 어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탐탁치 않은 감정이 들었다. 내가 기어코 누군가를 지식 수준만으로 재단하려는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까?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그 정도가 꽤 컸다. 고등학생들이 위화감, 양분, 가제 등의 단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장 수능에도 나올 법한 단어들을.


내가 보기에 이런 사단은 중2병의 부재로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10대에 고민해본 문제는 20대인 지금도 풀릴 기미가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해결이 어려운 난제기에 그것을 10대에 생각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무언가를 고민했을 때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게 될 테니까. 그 대상은 부모님과 또래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평소에 거들떠도 안 본 책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시답잖다고 할만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중학교 때 읽고 충격을 받았다.


중2병이니 개똥철학이니 하는 것은 무언가를 고찰해보고 생각의 저변을 넓히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유명한 중2병 짤이 있었다. 살인과 죄에 대해서 묻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사회에서 살인은 죄인데 야생에서도 살인이 죄가 될 것인가? 우리 인간이 문명 발달을 이루지 않고 짐승이나 다를 바 없이 생존을 위헤 서로를 죽이면 그것도 죄인가? 하는 식의 내용이었다.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의문이다.


나름대로의 그런 질문의 답을 내릴 수 있게 될 정도로 성장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분명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다. 가령 이런 답을 내릴 수 있다. 살인이 죄인 이유는 사람들이 살인이 죄라고 정했기 때문이니까 정말로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살인이 죄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반대되는 답을 내릴 수도 있다. 제아무리 야생이라 해도 생명에는 동등한 가치가 있기에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죄라고.


최근의 10대들은 이러한 의문을 껴안을 틈이 없다.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 청소년들은 매우 말초적인 쾌감에 접촉하기 쉬워졌다. 말초적인 쾌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반의 모든 청소년들이 1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핸드폰 액정 속의 인터넷 스타와 함께 앙 기모띠를 외치는 광경은 측은한 광경이다. 그러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고 사람들이다.


조선 시대에 부농이 판소리 하는 사람을 불러올 때는 적벽가 할 줄 아냐고 제일 먼저 묻고, 할 줄 모른다고 하면 그 다음에 춘향가 할 줄 아냐고 묻고, 할 줄 모른다고 하면 그 다음에 심청가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적벽가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기반으로 한 마당이니 그만큼 삼국 시대에 대한 기본 지식이 받쳐줘야 이해가 가능한 내용이고, 춘향전도 조선의 시국이 반영된 만큼 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암행어사가 무엇인지는 알아야지 이몽룡이 무엇을 어떻게 할 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왜 적벽가를 제일 우선적으로 물어봤을까? 적벽가를 능히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다른 마당들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이다. 개인의 수준에 따라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도 넓어지는 법이다. 나는 청소년들이 적벽가를 부르진 못하더라도 들으면서 주유와 제갈량의 심리전에 손에 땀을 쥘 정도는 되면 좋겠다. 그런 기쁨을 느낄 첫 발걸음이 중2병이니 오글거리니 하면서 좌절되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냥 되는대로 써제끼긴 했지만.... 그냥 중2병취급받는게 싫고 나랑 동류인 사람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싫은 애새끼의 푸념정도로 이해해주십쇼.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글은 지우라는데 아무리봐도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지적해주시면 그 부분만이라도 지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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