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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의 전사 (1)


아주아주 먼 옛날, 한 전사가 설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는 따스한 평원에서 마주치는 모든 불경한 자들을 죽였고 저항할 힘이 없는 약한 자들은 강제로 자기 백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는 일이 없었으며 땅에서 악마가 솟아나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도 맨손으로 흠씬 두들겨 패 내쫓았습니다. 그 전사에게 지배받는 백성들은 그를 두고 불패의 전사라 불렀지요.



오래된 나무 문이 부서질 기세로 쾅 열림과 동시에 그로인한 풍압으로 집안의 온갖 살림들이 날라간다. 열린 문을 통해 눈부신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휘날리는 먼지를 비춘다

"브렌다!"

갑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문 사이로 비추던 눈부신 햇살 막아서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꽃가루처럼 휘날리던 먼지들이 자취를 감춘다.

"아직도 자고 있나? 게을러 터졌군. 늑대를 주먹 한방에 죽여버릴 때까지 수행을 한다고 들었는데."

전신을 중갑으로 두르고 그 안에 사슬갑옷까지 덧대입은 거구의 남성은 성큼성큼 다가가 불쑥 튀어나온 이불을 콱 쥐어든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이 잠꾸러기 같으니!"

두꺼운 이불을 천장에 팡하고 던져버리는 순간 참나무 장작 더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함정."

남자는 텐션이 올랐던 방금전과 다르게 무미건조한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좁은 투구 틈 사이로 감탄하는 눈빛을 쏟아낸다

"내가 죽일 늑대는 바로 너다! 죽어라아아아아아!"

남자가 들어왔던 문 너머로 붉은 머리의 여성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빠른속도로 뛰어오는데다 여성의 덩치는 갑옷을 두른 갑옷남보다 약간 크다. 뒤이어 온몸의 체중을 실은 펀치

"훌륭해, 브렌다. 내가 좀 늙은 것도 있지만 완전히 속아넘어갔어. 게다가 이 정도 주먹이면 늑대의 두개골을 부술 정도군, 틀림없어!"

갑옷을 입은 남자는 전혀 밀리는 기색 없이 한손으로 주먹을 막으면서 투구 사이로 침을 튀길정도로 칭찬을 해댄다

"도전이다! 불패 아저ㅆ"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갑옷남, [불패 아저씨]는 브렌다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그 충격이 전해지는 순간 집 현관이 완전히 박살났고 브렌다는 집 멀찍이 떨어져있는 고목에 열댓번 구르다 쾅하고 부딪힌다.

"일단 내가 딱히 지도한 적은 없지만 더이상 수행은 필요 없을거야. 늑대 따위는 떼로 와도 널 못 이겨. 아니, 온 세상의 모든 늑대가 와도 널 못 이겨. 그리고 둘째로 방금 뭐라 했는지 못들었는데."

"아이고! 동네 사람들 들어봐요! 브렌다가 늑대를 때려잡을 만큼 컸어요!"

불패 아저씨는 브렌다의 무력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큰 목소리로 능청을 떨며 나무에 처박힌 붉은 머리 소녀에게 다가간다. 브렌다는 그에 대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명치를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고른다.

"코피 조차 흘리지 않다니 엄청 튼튼한데. 그리고 사실 네가 뭐라 말할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제발 부탁이니..."

"그런 도전은 할 생각도 마라."

브렌다 곁에 가까이 다가온 불패 아저씨는 낮게 속삭이며 으르렁댄다.

"그럼 이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의원에 가서 진찰 좀 받으라고."

"... 아저씬 늙었잖아."

불패 아저씨가 휙돌아 갈 길을 가려던 순간 브렌다가 숨을 다 고르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의사 나으리한테 가봐야할 건 내가 아닐걸. 손가락이 좀 부러지지 않았을까?"

"천 년을 넘게 살았으면서 여자일 때도, 남자일 때도 있었지?"

"브렌다."

진중한 목소리가 브렌다의 말을 막아선다.

"공공연한 비밀까진 아니지만, 그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난 지금 네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 꿈도 꾸지 마."

"난 계속 도전할 거야."

"그럼 다음 도전은 네 마지막이 될거다. 차라리 내 백성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깨고 처죽여주지."

그 말을 남기고 불패 아저씨는 브렌다를 뒤로 하고 제 갈길을 떠났다.

"아저씨, 이 땅에는 불패가 필요해. 언제 어디서나 말이야."

브렌다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쳐다본다.






"불패 아저씨! 불패 아저씨!"

"브렌다. 이 땅딸보 녀석."

"동화에 적힌 이야기가 진짜야?"

"어디 한번 보자고."

옛날 옛적에, 설산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았던 불패의 전사는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고 악마들과 투쟁했습니다. 영혼을 고문하는 기구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눈에 보이는 모든 악마들을 구타했습니다. 그러더니 불패의 전사는 흠씬 두들겨 맞은 악마들을 모아다 외쳤습니다. "내 너희들을 죽이게 두지 않았으니 고마운줄 알아라. 너희들은 나를 당장 너희의 왕에게 안내해라. 지금 당장!" 악마들은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왕에게 불패의 전사를 인도했고, 불패의 전사는 그러는 동안에도 마주치는 모든 악마들을 때려주었습니다. 불패의 전사는 악마들의 왕 앞에 섰으며, 그 역시 흠씬 패는 것으로 지옥을 정벌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악마들에게 외쳤죠. "내가 그대들을 정복한 대가로 내게 절대로 지지 않는 마법을 달라. 그것을 전리품으로 삼겠다." 악마들의 왕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그에게 마법을 걸어주었고, 불패의 전사는 지옥 정벌을 마치고 절대로 지지 않는 몸이 되어 따스한 평원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 ..."

"정말로 지지 않아?"

"그래. 나는...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대단해!"






"의사 나으리한테 가봐야겠군."

불패 아저씨, 불패의 전사는 장사꾼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장을 둘러보다 나지막히 말한다.

"정말로 부러졌어. 브렌다 이 기특한 것."

불패의 전사는 '전사님 이것 좀 드시고 가세요' 라는 호객 사이에서 손가락을 매만지며 기쁜 투로 말을 내뱉는다. 그는 호객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에게 다음 번에, 가게를 털어버릴 정도로 사가겠다는 말을 하며 시장 변두리의 의원을 찾았다.

"의사 양반. 랜달."

"불패의 전사님! 이게 왠 일이세요. 혹시 병문안이라도?"

"아니."

"혹시 역병 건으로 방문하셨다면 일단락 된 상황입니다. 그 쪽 지역은 간호를 맡을 사람과 그외 인력들이 파견되었습니다. 확진자가 늘었다는 보고는 없고요."

"그게 아니고..."

"의료 정책에 대한 의견을 의사분들에게 물어보시러 오신건가요? 하긴 전사님도 의회에 큰 영향력을 지녔으니ㄲ"

"그만! 환자는 나다. 검지와 중지가 부러졌어."

그저 국정이나 시국을 살피러 온 줄로만 알고 있던 접수원은 불패의 전사가 지르는 고함에 깜짝 놀란다.

"아... 알았어요. 외과 쪽으로 말해둘테니 그쪽으로 가세요."

"아, 그리고 전 의사가 아니라 접수원이에요."

"이 집 아들이라길래 똑같이 의산 줄 알았지. 미안하네, 랜달."

불패의 전사는 터덜터덜 외과의가 진찰하는 방으로 걸어간다. 랜달은 이를 지켜보다 그가 환자로서 찾아온 경험에 놀라워하며, 한편으로 의아해하며 기록실로 향한다. 불패의 전사는 강력한 것이다, 랜달이나 랜달의 아버지가 아는 바로는 그는 오늘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환자로서 이곳을 찾아온 적이 없다. 그것이 그의 강함을, 불멸성을 증명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기록실의 냄새는 살짝 매캐하지만 건조했으며, 300년간 쌓여온 서류뭉치들을 보관해온 곳. 어쩌면 이곳에서 불패의 전사가 의원을 이용했던 기록을, 불패의 전사의 상처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이 랜달을 사로잡았다. 랜달은 의사로서의 재능은 없었지만 사람을 대하고 책을 빠르게 훑는 데 재능이 남달랐다. 어쩌면 불패의 전사가 골절상의 치료를 다 받기 전에 찾아낼 수도 있다.

"랜달! 랜달! 어딜 간거야, 이 친구. 접수 받아라. 랜달!"

190년 전 기록을 살펴보던 랜달은 불패의 전사의 고함에 역시 시간이 부족했나 아쉬워하며 뜀걸음으로 접수처로 달려간다.

"그래도 네 가업이다. 랜달. 300년 동안 이 의원은 이 도시의 환자를 돌봤어. 좀 충실해야지."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늘 맞는 말만 하는 충고에 호기심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랜달은 예전에 있던 불패의 전사와의 일화를 떠올렸다. 항상 해가 넘어가기 직전 연말의 겨울 특정한 날에 자고 일어나면 항상 머리맡에 항상 갖고 싶어하던 선물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불패의 전사에게 물었더니 그는 곧이 곧대로 "바로 나다!"하고 대답하던 일을.

"전사님, 저... 물어 볼 게 있어요."

"뭐든지."

"사실 전사님이 환자로서 온 것이 너무나 놀라워서요, 그래서 그전에 이용하셨던 기록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만..."

"... 음"

전사가 턱에 주먹을 괴며 끙 소리를 내자 랜달은 자신이 무례한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착각 하며 사과를 하려하던 순간

"딱 한번 있었지."

"192년 전에. 돌풍의 할버드에게 매복을 당한 적이 있었다. 놈을 죽이긴 했지만 온몸이 베였었지. 너의 고조부와 그 아버지가 내 간호를 맡았다. 1년 뒤에 놈의 두목인 더스틴이 내게 도전했고."

"앗..."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환자들을 잘 살피도록!"

"예... 예에 안녕히..."

랜달은 미처 안녕히 가라는 인사를 다마치기도 전에 기록실로 뛰어들었고 불패의 전사가 언급해준 192년 전 문서를 수색한다. 마침내 랜달은 서류더미에서 [불패의 전사]가 환자로 적힌 종이를 찾아낸다.

자상 47 곳. (심각함 17 곳.) 대량 출혈, 상처가 너무나도 심각했으나 출혈을 멎도록 지혈을 하거나 영양가 높은 식사를 배급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호전됨.

"과연 불패의 전사님이시군.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잖아... 어?"


랜달이 그의 기록을 보고 감탄하는 사이 한가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불패의 전사... 여성?"

"그랬던 적도 있지."

"뭣...!"

랜달이 기록실 한구석에서 쪼그려 보는 사이 불패의 전사, 불패 아저씨, 그가 랜달의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기... 무슨 일로? 으악!"

"랜달! 자네는 예의가 없군. 인사를 했으면 잘가라고 말을 해줘야할 거 아니야? 이 도시에서 두번째로 싸가지가 없어."

그는 랜달의 말이 끝나기 전에 꿀밤을 먹이고 뒤이어 선생님이 학생에게 설교를 하듯이 말을 이어간다. 랜달은 핑핑도는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풀썩 앉는다.

"어떻게... "

"뭐지?"

"기록이 잘못됬을리는 없을 거에요. 어떻게?..."

"자기 가업을 의심하진 않는군, 그건 아주 훌륭해! 그리고 공공연한 비밀까지는 아니야. 자네는 동화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었나 보군. 거기에 거의 대부분 나와있다고. 난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자였던 적도 있고 지금처럼 남자였던 적도 있다. 심지어 늑대였던 적도 있지."

"이... 게... 불패의 비결?... 마법인가... 악마들의 왕을 굴복시키고 받은?... 하지만 그건..."

"그 마법이 맞다. 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어."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인지... 헉..."

"이제 그만 일어나. 접수 봐야지. 가업에 충실하라고 몇번을 얘기를 해."

불패의 전사는 랜달을 부축해 석양 빛이 비집고 들어오는 문을 향한다.

"꿀밤은 미안하네. 정신을 못차리는 군. 이런건 브렌다한테만 했더니 실수로 그러고 말았어. 다음부턴 삼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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