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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이비어(The Savior) - 4화 : 귀신을 보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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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가 한가운데에서 세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햐아아악......

 

칠흑색 괴인의 육체는 어두운 보랏빛 액체를 뿌리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단발머리 소녀가 돌격소총을 든 채 서 있었다.

 

소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녀의 앞에는 칠흑빛의 인간형 괴인 무리의 싸늘한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지금 5층 상점가엔 오직 그녀를 비롯한 2명만이 서 있었고 황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4층, 상황종료.”

 

단발 소녀의 한마디가 침묵을 깨뜨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세리가 자신의 키만 한 창을 능숙한 솜씨로 돌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헷, 이거 너무 시시한 거 아냐?”

 

“세리 언니, 내가 늘 말하지? 잠깐의 방심이......”

 

<다들, 제 목소리 들려요?>

 

민지가 세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할 때 마침 그녀의 귀에 부착된 소형 무전기에서 한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발머리 소녀 민지는 무전기의 버튼을 눌러 대답했다.

 

“경혜 언니, 무슨 일이에요?”

 

<방금까지 감지되던 지하 1층에서 중급 인트루더의 반응이 소실됐어.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이형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고. 혹시 거기 상황이 끝나는 대로 확인해 줄 수 있겠니?>

 

무전기 속의 여자는 다급함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지금 감지된 이형 에너지의 주인이 인트루더일 수도 있고 이형력을 악용하는 능력자, 혹은 폭주하는 이형력자일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알았어요, 당장 확인해볼게요.”

 

<그래, 현이 씨한테도 얘기했으니까 4층, 5층의 상황이 끝나는 대로 합류할 거야. 부디 조심하렴!>

 

경혜와의 통신이 끝나자 민지는 새로운 탄창을 소총에 끼워 넣으며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세리에게 말했다.

 

“세리 언니, 사람들을 부탁해!”

 

민지는 곧바로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그녀는 한 가지만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그 에너지 반응의 주인이 인트루더건 이형력자건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면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고.

 

맞서 싸운다. 그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니까.

 

 

*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 시각 18시 42분 부로.......>

 

“으윽.......”

 

안내 방송의 소리에 세호가 깨어났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이 꺼져버린 주차장의 어두운 천장이었다.

 

‘나... 살아 있나?’

 

비록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세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안내 방송의 내용대로라면 상가에 출현한 인트루더가 제거되었다는 것. 온몸이 피로에 절어서 무거웠지만 손발에 감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지도 멀쩡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몸속에 그동안 쌓아온 걸 다 푼 것처럼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꾸으윽....... 꾸욱.......

 

그 때,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리가 주차장 구석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세호는 그 소리를 느끼고 비틀거리면서 상반신을 세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불쾌한 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세호로부터 10m 떨어진 지점에 방금 전까지 세호를 사냥하려고 했었던 철갑 거인이 온몸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당한 채 콘크리트 벽에 처박혀 있었다. 거인의 온몸은 점점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고 괴성은 점점 잦아들었으며 광기에 사로잡혔을 붉은 외눈은 빛을 잃어버린 채 오래였다. 그 처참한 모습에 세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은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신,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세호는 사정없이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를 자각했다. 박세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균열 개방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의 자력으로는 일으킬 수 없는 힘, 이형력을 다루는 초능력자, 이형력자였다. 세호는 그 사실을 이미 자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이미 능력을 각성했었기 때문이니까.

 

‘쓸데없는 잡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세호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겐 어서 나갈 곳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끄으윽.......”

 

세호는 안간힘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이형력을 너무 오랜만에 쓴 후유증 때문인지 온몸에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응?”

 

어째서인지 세호의 곁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세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세호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방금 전 거인과 싸우던 은발 머리 소녀였다.

 

“너, 너 괜찮아?”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호는 온몸의 피로감도 잊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가녀린 몸을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도 그녀에게 큰 외상은 없어 보여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너 설마 내가 일어나길 기다린 거야?”

 

소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세호는 가슴 한쪽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초면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직접 괴물과 싸우다가 크게 다칠 뻔한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쓰러진 걸 보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준 그녀의 모습이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은혜, 갚았다.”

 

소녀는 여전히 무감정한 목소리로 세호에게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지 세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볼을 긁었다.

 

“자, 다들 질서정연하게 이동해 주십시오.”

 

그때,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색 전투복으로 무장한 사람들, 즉 경비대의 대원들과 구조대원들이 민간인들을 출구로 안내하고 있었다. 인트루더의 위협이 끝났다는 증거였다.

 

“아, 아무튼 여기서 나가자. 방금 그 괴물들도 다 없어졌다고 하니까.”

 

세호는 소녀의 손을 붙잡고 건물에서 나가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는 이제야 지옥 같은 순간이 끝났음을 확신했다.

 

상가에서 나온 세호의 눈에 비친 것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청색 전투복을 입은 경비대원들과 줄을 지어 찾아와 사상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출발하는 구급차와 구조대원들의 모습, 그리고 무사히 목숨을 건져 부랴부랴 상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세호는 엉망이 되어버린 상가 건물에 시선을 두었다.

 

나름대로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이 동네에서 살면서 세호와 수민이 자주 장 보러 갔던 마트도, 한 달 전에 새로 개업해 사람들로 북적이던 떡볶이 가게도, 친구들과 함께 가던 PC방도. 하지만 모두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정말 최악이야.......”

 

세호가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자신은 살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은발머리 여자아이 덕분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 고맙.......”

 

세호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려는 순간, 이미 은발 소녀는 세호에게 등을 돌린 채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세호는 어리둥절한 채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너, 괜찮아?”

 

세호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한 소녀와 소년이 세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소녀의 손에는 검은색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행으로 보이는 소년은 단발머리 소녀와는 정반대로 제복의 상의의 단추를 전부 풀고 있었고, 무척 활발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세호는 단발머리 소녀가 이형력 관리국의 세이비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입은 제복의 왼쪽 어깨에 수놓아진 은색으로 수놓아진 국제 이형력 관리국을 상징하는 X자로 교차 된 두 자루의 검이 겹쳐진 지구 문양이 증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세이비어가 그녀를 쫓는 것이었을까?

 

“저, 저기 말이야.......”

 

“아, 걱정마. 난 결코 수상한 사람이 아니니까. 난 이형력 관리국에 소속된 세이비어 팀 ‘리틀 나이츠’의 요원, 김민지라고 해.”

 

그녀는 자신의 요원증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소개했고, 목을 한 번 가다듬고서 말했다.

 

“혹시 말이야, 방금 그 이형력자가 너한테 무슨 짓 안 했어?”



어반물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설정해둔 건 많은데 막상 제대로 쓰기는 엄청 힘들었네요.


재밌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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