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을 넘어 바다 깊숙이 이제는 빛뿐 아니라 소리조차 집어삼키는 심연 속에서
그녀들의 배는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엄청난 압력 때문에 배는 위험하다는 신호음을 시끄럽게 울려댔다.
배는 더 이상 제어되지 않았고 다시 되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들의 물의 압력에 찌부러지지 않고 멀쩡했다.
그녀들이 적막 속에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빛과 함께 리바이어던과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직한 벌레 율이다."
그것은 상냥하고 따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아라. 나의 이 거대한 움직임을, 육중한 힘을, 그리고 내 살에 공생하는 생명들을 보라!"
"나는 비옥한 이다, 아우라쉬. 나야말로 '생명'의 시작이자 끝이다!"
"보아라!"
"'이르', '졸'. '우르', '아카'. 고결한 벌레들을!"
"우리야말로 '선'신임을 알라!"
그것의 목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감미롭고 장엄했다.
"잔혹한 리바이어던과 하늘에 속한 자들이 그대를 가로막고 있다. 그들은 어둠 속으로 그대를 밀어 넣을 테지."
"그들은 그대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두려워해 바닷속에 잠재우려 그들의 위성을 배열했다."
그것은 자매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녀와 그녀의 동족들이 왜 고통받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왕자들이여, 우리는 그대를 돕고자 한다. 그대 각각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우리의 아이들, 새로이 태어난 애벌레를 몸 안에 받아들여라. 이 아이들로 그대들은 영생을!..."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연약한 육신을 뛰어넘어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 말들은 너무나도 달콤하여.
그것은 그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약속했다.
마치 그녀들일 뭘 원하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만약 세계의 결함을, 부당하고 불편한 점을 발견한다면 그 힘으로 바로잡아라!"
"그 어떠한 법칙도 그대들을 구속하게 놔두지 말라!"
자매들의 눈에 벌레들은 마치 빛나는 신처럼 보였다.
"오 왕자들이여, 그 힘에 대한 대가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대들은 자신의 본성에 영원히 복종해야 한다."
"아우라쉬, 그대는 영생 속에서 영원토록 자손을 위해 탐구하고, 알아내야 하리라."
"시 로 그대는 영생 속에서 영원토록 힘을 시험해야 하리라."
"사토나, 그대는 영생 속에서 영원토록 교활한 간계를 짜내야 하리라."
벌레들은 자매들에게 무한한 영광을 약속했다.
진실 속에 교묘히 거짓을 숨긴 채.
"만약 이를 멈춘다면, 몸속의 벌레가 그대들을 삼키리라."
"오 왕자들이여, 그대들의 힘이 커질수록 벌레의 식욕도 커져갈 것이다."
그렇게 세 자매는 불멸자가 되었다.
"아우라쉬, 벌레는 그대의 육신을 넘어서는 힘을 선사한다. 그런 그대가 왕으로 변모한다면 성체가 된 그대를 무어라 부를탠가?"
"그대에게 숙고를 의미하는, 오릭스(아우릭스)라는 이름을."
"어머니로 변모한 사토나여. 그대에게는 사바툰이라는 이름을."
"기사로 변모한 시 로여. 그대에게는 시부 아라스라는 이름을."
"허하노라"
"이제 이 음울한 곳은 질리지 않나?"
그 말을 끝으로 심해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멸과 강령한 힘을 손에 넣은 자매들은 마치 태풍과 같이 물 속을 가르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이것이 오릭스 왕조의 시작.
'군체'의 시작이었다.
'오스뮴 궁정'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오릭스가 약속한 불멸과 힘을 받아들였지만 또 그 수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그 힘을 거부했다.
거부자 들은 본보기가 되어 죽임을 당했고 동족을 하나 죽일 때마다 그녀들은 자신들 속의 힘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대륙이 불바다가 되었다. 수 많은 동족들이 그들 발 앞에 무릎 꿇었고 복종했다.
그들은 오릭스와 자매들의 축복으로 벌레를 몸 안에 받아들여 불멸의 힘을 누렸다.
하지만 곧 수 많은 왕국과 거부자들이 협력하여 거대한 군대를 일으켰다.
그 중에는 자매의 아버지를 죽인 '타옥스' 또한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놓지 못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서로 뭉쳤다.
강력한 힘을 보고도 저항했다.
그들은 권력이 아닌 종족을 위해 싸웠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
오릭스의 안에서 의문이 싹틀 때쯤.
벌레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아주 잘했다, 오릭스 그대 안의 벌레가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나? 그대의 의지가 단순한 법칙을 뒤틀기 시작한 것도?"
"그대 안에서 슬픔이 느껴지는군. 숙고하는 자여, 이해하라. 그대는 신성하고도 원대한 과업을 행하고 있다."
"너의 전생은 신성한 행위다."
그녀는 아니 '그'는 생각을 멈췄다.
사바툰은 그녀의 뛰어난 머리로 우주선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제 이 행성을 떠날 것이다. 이 행성은 곧 하늘의 의지로 정렬된 52개의 달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이제 날아오를 때다."
'군체'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행성 밖으로 나왔다.
우주를 부유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짧은 수명과 척박한 환경에서 해방되어 불멸의 삶을 살게 된 기쁨에 환희 했다.
행성 주변을 돌고있는 52개의 달.
그 달에도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 행성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며 끝없는 살육을 벌였고.
살육이 계속될수록 그들의 힘 또한 커져갔다.
이것이 벌레가 준 '군체'가 가진 축복이었다.
얼마나 수 많은 전쟁을 했을까. 군체는 여태껏 만난 그 어느 종족보다도 지적이며 성간 여행마저 실현한 종족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평화로웠고 친절했으며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종족이었다.
사바툰은 그들을 암모나이트라고 이름 지었다.
타옥스는 그녀를 따르는 거부자들을 이끌고 암모나이트에게 망명을 신청했고
그것은 받아들여졌다.
군체는 암모나이트의 꿈과 불멸을 이야기하며 그들을 회유하고자 했다.
자신들과 같은 신을 믿고 심연을 따르자고 협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을 따르는 종족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신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 방법은 하나 뿐이라는 것을 군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협상이 결렬된 이후 그들의 전략을 분석하기 위해 그들을 관측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52개의 달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53번째 달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신이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이토록 굳건한 광신을 만들고 눈을 흐렸는지는 명확했다.
벌레들은 그 신과 그 신을 따르는 암모나이트들을 전부 죽이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오릭스의 안에서는 또 다시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왜 나의 일부 동족들은 이 불멸의 축복을 거부하고 저항하는가.
암모나이트는 무었을 약속 받았기에 불멸을 거부하였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이리도 평안해 보인단 말인가...
이들을 정말 전부 죽여야 하는 것인가?
또 얼마나 많은 동족을 죽여야 하는 거지?
이것이 정말 맞는 길인가?
그는 오릭스가 된 이후 처음으로 이 길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전쟁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왕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미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의 망설임 때문에 군체는 첫 패배를 맛보았다.
암모나이트의 공격으로 그들은 6번째 달까지 후퇴하였고 그들의 군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오릭스는 망설였다.
벌레들은 초조해졌다. 오릭스의 심연에 의문을 품고 하늘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껏 이뤄낸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을 걱정했다.
벌레들은 사바툰과 시부 아라스에게 그들의 약점을 찾아낼 것을 지시했고.
그들의 자손을 더욱 퍼트려 수를 늘릴 방법을 찾게 했다.
그럼에도 오릭스는 망설였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군체의 역사를 바꿀 대 사건이.
암모나이트는 사바툰의 계략과 시부 아라스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을 때 쯤, 그들은 여태껏 보인 적 없었던 무기를 사용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넘어서 모든 우주의 법칙을 무시했다.
사바툰은 그것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연구에 몰두했다.
시부 아라스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은 '초인과적'인 것이었다.
오릭스는 해답을 얻기 위해 그들의 신인 벌레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그대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릭스여."
"절박해진 암모나이트가 인과를 초월하는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무기가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은 이 우주 내 어떤 힘은 한낱 물리 법칙의 상위 개념으로 존재한다고만 해두지.."
벌레는 뜸을 들이며 말을 흐렸다. 마치 오릭스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그런 오릭스의 기분을 눈치챘을까, 벌레는 끌끌 웃는 소리를 내며 오릭스에게 말했다.
"이 같은 무기는 하늘의 미끼 별, 여행자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교묘하고도 굉장히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오릭스는 깜짝 놀랐다.
그들의 신은 자매에게 세계의 법칙을 뒤바꾸고 부정할 힘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 앞에 그들의 힘마저 무시하는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에 어떻게 대적한단 말인가.
충격에 빠진 오릭스의 귀에
오릭스의 걱정을 덜어주듯 벌레가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대는 이와 똑같이 맞설 수 있다. 사바툰의 어머니들이 우리의 가르침을 귀 기울여 들었다."
"왕 오릭스여 그대에게 심연을 주지는 않겠다."
"그건 우리, 그대의 신에게 주어진 것이니."
"대신, 기호와 의식으로 그 힘을 불러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벌레는 오릭스를 달래듯 감싸며 환영하듯 몸을 활짝 폈다.
"기뻐해라! 그대는 이제 인과적 폐쇄성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대의 의지는 법칙마저 이겨낼 것이다!"
"검으로 자손 백 명을 베어라!, 오릭스여!"
"그 검이 변하는 모습을 보아라!"
"우주가 공포에 질려 그대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을 주시해라!"
오릭스는 자신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상승을 느꼈다.
"이제 그대라는 존재가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기 시작할 터!"
그리고 이것이 벌레가 약속한 힘의 진정한 모습임을 깨달았다.
"그대의 본성을 따라라. 벌레에겐 먹잇감이 필요하다..."
전쟁은 삽시간에 끝이 났다.
전쟁을 중재하기 위해 심해 속에서 뛰쳐나온 리바이어던은 죽어 단순한 고깃덩어리가 되었으며 암모나이트의 고향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은 도망쳤다.
오릭스와 그의 자매들의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이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하기로 했다. 이것은 동족 간의 전쟁이었다.
오릭스와 사바툰, 시부 아라스는 서로 통치하고 있는 군단으로 서로 공격하게 했다.
서로 계속해서 죽이고 그 생명을 집어삼켜 서로가 서로의 힘을 키웠다.
이것이 그들이 알려준 심연을 사용하는 방법.
세계의 물리 법칙 위에 있는 상위개념 중 하나였다.
이 개념을 아는 자들끼리 싸워 상대를 죽인 자는 그 죽음을 통해 그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힘뿐만 아니라 죽인 자의 지혜와 기억까지도.
군체는 계속해서 불어났고 또 줄어들었다.
이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서로를 위하는 그들만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강해진 세 자매는 현실 우주를 초월한 검고 어두운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이 우주가 있는 한 이 우주의 주인인 그들은 현실 우주에서 죽더라도 다시 부활한다.
그 우주 앞에서 오릭스는 선언했다.
"나는 이곳에 궁정을 세우겠다. 이 궁정에 들어선 이는 누구든 내게 도전할 권리가 있다. 내 궁정이야말로 대전쟁 그 자체다!"
"그곳은 죽음의 터이자 우리가 신에게서 배운 검의 논리를 배우는 학습의 장이 되리라!"
사바툰도 이에 감동하여 그녀 또한 자신의 우주에 궁정을 세우고 '대마녀단' 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부 아라스 또한 이에 호응해 말했다.
"세계 그 어디든 전쟁이 있는 곳이 곧 나의 궁정이리라."
52개의 달에서 펼쳐졌던 이 전쟁은 이제 그들의 세계를 넘어 우주의 다른 행성들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강해졌고 계속해서 우주의 종족들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렸다.
우주에 거짓과 기만을 뿌리는 빛과 하늘을 향한 심연의 성전이 막을 올랐고 우주는 전쟁으로 불타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와 승리를 오가는 사이에 오릭스는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위화감은 의심이 되었고 의심은 곧 확신이 되었다.
"사바툰! 시부 아라스! 내 형제여!"
"우린 배신당했다! 우리는 결코 영생을 누릴 수 없다!"
그들이 생명을 하나 죽일때마다 그 죽음으로 인해 몸속의 벌레는 허기를 채우고 그만큼 숙주에게 힘을 준다.
이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계약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다.
벌레에게 생명을 먹일수록 그 숙주는 현재의 자신보다 두배 강해진다고 해보자.
하지만 벌레의 허기는 그 강해진 것 보다 세배 에서 네배 이상 커지고 그만큼 빨리 찾아온다.
강해지는 것보다 벌레의 허기가 더욱 빨리 커지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벌레의 허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모든 동족들이 그들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벌레에게 먹혀 죽을 것이다.
이것은 불멸의 삶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다.
그런 고민 속에 빠져 그들이 수백이 넘는 우주의 문명을 우주에서 지워버렸을 때.
새로운 위기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에큐메네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군체가 자신들의 세계를 완전히 끝장내고 다른 은하계에서 만난 첫 생명체.
그들은 그들의 강력하고 지혜로운 과학 기술로 은하계 전체를 통합한 거대한 '은하 제국' 이었다.
처음 그들과의 전쟁에서는 군체가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모든 은하 저지선을 초토화 시키고 그들의 은하계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의 반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워 졌다.
군체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고 함선들을 붕괴 시켰다.
그들에게는 암모나이트 처럼 빛과 하늘의 초인과적 힘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지혜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타옥스' 세 자매의 원수이자 종족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어머니.
그는 암모나이트가 전쟁에서 패배할때 동면한 상태로 우주선을 타고 탈출했다.
에큐메네는 이 우주선을 습득했고 타옥스를 통해서 군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에큐메네는 은하계의 모든 것을 총 동원해서 이 3명의 지도자를 집요하게 노렸다.
그들의 행성을 부수는 병기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기계 병사들은 그들의 전함을 정조준 했고.
군체의 함대는 파괴되었으며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죽고 부활하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첫 패배이자 마지막 패배가 될 것이 자명해 보였다.
오릭스와 시부 아라스 그리고 사바툰은 서로를 끌어 안았다.
그들에 몸에서는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이제 한계다."
"계속 음모를 꾀하고 간교를 짜냈지만 내 벌레를 먹일 충분한 살육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리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벌레는 더욱 굶주려 간다."
사바툰이 말했다.
우리의 성전은 이대로 끝인가? 우리 군체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건가?
시부 아라스가 그녀의 거대한 머리를 떨궜다.
"물러나서 힘을 모아야 해."
사바툰은 당혹스러운 패배감에 사로잡혀 눈을 감았다.
"우리의 신, 벌레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간청하자."
"그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나?! 우리의 목적을 부정하는 건가? 무엇을 하건, 이는 무력과 전쟁을 통한 살육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섬기는 잔혹한 최후의 중재자이며, 이를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먹혀 마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오릭스가 그들의 자매들에게 소리쳤다.
"벌레를 어떻게 먹이지?"
시부 아라스가 물었다.
"내게..."
사바툰이 침을 삼크며 말을 이어갔다.
"내게 방법이 있다. 하지만 에큐메네를 수십억씩 죽여야만 가능해. 그놈들을 어떻게 이기지?"
그들의 계획에는 결국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힘을 키운단 말인가.
이때 그들의 자매의 막내가 결단을 내렸다.
"그럼 날 죽여."
시부 아라스는 자신을 죽여 자신의 힘을 취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에 오릭스는 그녀의 목을 배었다.
사바툰 또한 이에 찬성했다.
"그리고 날 목 졸라 죽여"
오릭스는 사바툰 또한 죽였다.
오릭스의 동생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이는 진정한 죽음이었다.
그렇게 오릭스는 '물리 우주'에서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오릭스는 계획대로 그들의 신인 벌레에게 찾아갔다.
오릭스는 검을 휘둘러 물리 우주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우주로 들어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고 오릭스의 우주에 균열을 만들어 냈다.
오릭스는 그 심연과도 같은 구렁 속을 걸어갔다.
그는 하늘을 뚫고 걸었으며 이에 하늘은 떨며 그의 발밑에 얼어붙었다.
그는 계속 나아가 진실이 거짓이 될 떄까지 부정하는 자, 비밀의 벌레인 아카를 찾아냈다.
"나의 신이자 비밀의 벌레인 아카여. 나는 군체의 유일한 왕, 오릭스다."
"네가 쥐고 있는 심연의 숨겨진 힘을, 그 비밀을 받으러 왔다."
마치 조용한 바람 소리와도 같은 목소리로 벌레는 말했다.
"나는 그 어떠한 비밀도 주지 않는다."
"그래"
"넌 아무것도 주지 않지. 주는 건 하늘의 행위이지 심연의 방식이 아니다."
아카는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넌 우리에게 너의 애벌레를, 벌레를 주었다."
"그래서 벌레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거다. 쟁취한 게 아니라 주어졌기 때문이지."
오릭스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강한 힘을 담기 시작했다.
"그러니 네가 내 신일지라도 필요한 것을 네 개서 빼앗겠다."
오릭스는 자신의 신을 죽이고 그 힘을 빼앗겠다고 선언했다.
벌레 신 중 하나인 '아카'는 그렇게 오릭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자매들의 합쳐진 힘이 아카를 능가했다.
오릭스는 아카의 몸을 조각냈고 그 안에서 벌레 신들의 뒤에 서있는 심연의 비밀과 그것에 접촉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는 이 비밀을 몇 개의 석판에 새겨 이를 파멸의 석판이라 이름 붙였다.
"이제 아름답기 그지없는 최후의 형체, 심연과 대화를 나누겠다."
"나는 형체의 왕이 될 것이며 우리의 운명에 대한 모든 비밀을 낱낱이 배우리라."
심연을 숭배하는 군체들의 진정한 '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오릭스는 초인과적인 힘을 두르고 모든것을 파괴했다.
그의 검에 죽은 적들은 모두 그에 힘에 감염되어 그의 충실한 종이 되어 동족들을 덥쳤다.
오릭스는 에큐메네를 상대로 100년동안 전쟁을 벌였다.
100년이 끝나갈 때, 그는 에큐메네 의회를 전부 참살했고, 그 피 웅덩이로부터 시부 아라스가 일어나 말했다.
"나는 전쟁 그 자체. 그리고 이를 통해 네가 날 되살렸구나."
오릭스는 시부 아라스를 사랑했기에 이에 매우 기뻐했다.
에큐메네는 절망 속에 울부짖었다.
오릭스와 시부 아라스는 함께 에큐메네를 상대로 40년간 전쟁을 벌였다.
그 40년이 끝나갈 때, 오릭스는 에큐메네의 장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내 동생인 시부 아라스를 시기한다. 그녀를 없앨 수 있게 도와다오."
그들은 절박했기에 오릭스의 말에 응했다.
하지만 이것은 함정이었고 에큐메네의 부대는 전멸했다.
그 시체더미 사이에서 사바툰이 일어나 말했다.
"나는 권모술수 그 자체, 그리고 이를 통해 네가 날 되살렸구나."
오릭스는 사바툰을 사랑했기에 이에 매우 기뻐했다.
에큐메네는 공허 속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셋은 함께 에큐메네를 상대로 1000년 동안 전쟁을 계속해 우주에서 그들이 존재했다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다.
심연을 숭배하는 군체의 진정한 3명의 신이 탄생했다.
그들은 우주를 해방시킬 것이다.
그들은 빛이 만든 규칙으로 부터 모든 것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오릭스는 하늘을 찢어발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