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웅 하는 엔진음과 함께 소파에서 기분 좋은 승차감이 올라온다.
"가는 길에 취조라도 좀 할까요?"
"서아 박사님, 아니 민준 씨는 무슨 재밌는 얘기라도 했길래 그렇게 웃었던 거에요? 이미 한번 쯤 죽인 사인데."
특별관리자원과 동일한 육신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장의 요원은 일부러 친근한 척 굴며 그들을 떠보려하지만 맞은 편의 강민준 창 밖을 쳐다보며 실실 웃고, 정도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는 척 하고, 심유나는 애써 흰자위를 굴려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가는 중에 말하거나 거기 가서 다 말하거나 무슨 차이겠어."
라고 말하곤 요원은 구두를 벗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눕더니
"팔자도 좋아. 누구는 진짜 죽었는데 누구는 쓰레기 장에서 파이어 캠프하다가 이렇게 고오오급 리무진이나 타고 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요원이 능청을 떨며 비꼬는 말에 흰자위나 굴리던 심유나 박사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
"기밀이에요."
요원은 번쩍일어나며 한마디 뱉었다.
"이 말 안했네. 지금 여기에 도청 장치 같은 건 없거든요. 그전에 설치하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했다고 대충 변명 하면 되고."
"정보 교환해요. 뭘 할건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말씀드릴 테니깐. 난 여러분의 앞 뒤 생각없이 저지른 행동이 퍽 맘에 들었거든요. 정부도 그걸 예측 까진 못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먹었어. 그래서 다른 특별관리자원에 스페어들까지 죽어버렸고."
"한태성..."
"게다가 지금 가서 도청장치도 삽입당하고 감시 수준도 오를텐데 지금 아니면 계획 짤 시간이 없잖아요."
창문 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던 강민준의 입가가 움찔움찔하는 것이 요원의 눈에 보인다. 그렇게 떡밥은 던져졌고, 트리오는 미끼를 물 것이다.
"널 어떻게 믿는데."
그 말에 요원은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미소를 짓더니
"한번 더 보고 싶은 남자가 있어요.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눈을 마주봤던 그 사람..."
짠바람, 화약냄새, 누군가의 고함, 낯익은 목소리. 김민철에게 그날은 해적에게 피랍된 화물선의 선원들을 전부 확보한데다 소굴 안의 모든 적들의 확인사살까지 마치고 작전 완수를 코 앞에 두던 때였다.
"임소위! 정신차려! 임소위!"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비하라 같은 말로도 부족했던 예상치 못한 저격. 수백 미터 밖에서 렌즈의 반사광이 보였을 때야 총알이 날아와 자기 머리를 터트릴 것을 직감했지만
"작전도 다 끝났는데 네가 왜 거기서 총알을 대신 맞냐고, 이 빡대가리 새끼야!"
기적적으로 김민철이 살았던 것은 같은 순간에 같은 반사광을 포착했던 909 특작 부대원이 자신을 덮쳤기 때문이다. 피격 직후에 부대 전체가 일괄적으로 엄폐하고 지원을 요청해봤지만 저격수를 찾아 낼 수 없었다.
"선배. 이미 죽었어. 얼굴에 피나 닦아."
"닥쳐, 이 페도 새끼야!"
"임지안 소위!"
.
.
.
.
.
"미ㅁ...." "민ㅊ..." "민철 씨!"
"일어났으니까 좀 닥쳐봐 봉팔아."
"오? 이번엔 제대로 부르셨네?"
봉팔이가 항상 남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던 "꼬마"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는 사실에 놀랄 동안 민철은 봉팔이가 들고온 쟁반을 휙 채간다.
"딸기쨈에 식빵?"
"네. 혹시 불만 있으신지? 실은 아침을 제대로 안차렸거든요."
"상관 없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민철은 버터나이프로 딸기쨈을 떠서 식빵의 하얀 면에 대충 처바르고 그대로 입에 쑤셔넣는다.
"연희 씨는 싫어하던데요. 심지어 건포도 식빵이었는데. 어쨌든, 그거 다 드시고 나면 큰 방으로 오는 거 잊지마요. 심인 시험 칠 때 경쟁자로 누가 나올지 예상하기로 했잖아요."
"뭐 연희 씨 의견이면 충분할 거 같긴 한데."
봉팔이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손을 흔들다 그대로 방문을 닫으며 떠난다.
"..."
민철은 묵묵히 식빵을 씹으며 그 날 일을 다시 떠올린다. 909 특작부대를 맡던 시절 최초의 실책, 임지안 소위가 전사한 뒤 직접 저격수가 있었을 자리까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어떤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일개 해적의 소행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로썬 유력 용의자는 :
'이미 그때 부터 날 특별관리자원으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었나.'
그 순간 숨이 멎어가던 임지안 소위의 눈동자 빛이 흐려지던 것이 민철의 뇌리에 스쳤고, 그에 대답하듯이 강철 문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버터 나이프를 던진다.
'죽지 못할 이유는 나도 하나 더 늘었군.'
그렇게 식사를 마친 민철은 버터 나이프가 박힌 강철 문을 열어 방문을 나선다
우선 짧게나마 이었습니다. 시점을 현재로 옮기는 데 그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