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구독자 27명 | 파블로프의자명종

[릴레이소설] 엎드리지 않는 자

"뭐야 이 씨, 왜 50년 씩이나 지나서 그러는데? 왜 이제와서 이러냐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희도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를 뿐이에요. 우서아 박사님."

직원 휴게실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란에 온 직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C 핵융합 발전소에서 가장 온순하기로 유명한 우서아 박사가 헝클어진 머리에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초고도비만 보안팀장과 한바탕 싸우는 것은 그들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저기 보안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우리 서아씨가 혹시 피해망상이 도지기라도 했나요? 여기, 도넛 하나 드시죠."

"헉. 도윤아 네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좆됬다고 진짜"

"아. 홍아린 박사님 도넛 감사해요. 박하힘도 모히하는 지히가 이허허요."

"어, 뭐라고요?"

보안팀장은 직장 내에서도 초장신으로 유명한 홍아린 박사에게 몇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도넛을 하나 받고는 게걸스럽게 베어 물며 대답한다.

"아린, 도넛은 챙겼으면서 커피를 놔두고 가면 어떡해? 보안팀장님, 안녕하세요!"

160cm 대의 단신의 남성이 홍아린의 몫까지 양 손에 들고 졸래졸래 따라오며 발랄하게 인사한다.

"박승주 박사님까지. 잘됬네요. 제가 땀 흘리면서 각자 찾아갈 필요 없어졌어요. '윗선'에서 지시에요. 세 분을 즉시 이송시킬 준비를 하래요."

말을 마친 보안팀장은 도넛을 마저 입에 쑤셔넣고 검지를 치켜세우며 따라오라는 제스쳐를 보인다

"어디로요?"

"몰라요. 대답해주시지 않았어요."

"저, 인사과에선 딱히 별말 없었나요?"

"네. 전혀요."

"윗선에서 더 다른 말 없었고요?"

"하... 이 새끼들이 이쯤되면 상황 파악이 안되나"

"저기. 저도 한번 따져봤는데 저희 상관도 얼버무렸다고요. 뭔가 이유가 있겠죠."

우서아는 이마를 매만지며 표정이 썩어들어가고 있었고, 홍아린은 당황한듯 우서아와 박승주의 눈치를 번갈아보며 쳐다본다. 보안팀장은 의아해하며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물어보려던 순간

"으... 으아아아악 뜨거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상대를 배려하여 묻는 말이 아닌 면상에 쏟아진 고열의 액체에 격통을 호소하는 비명

"... 유나? 도대체 무슨 짓을?"

"잘했어, 이제 튀어!"

"씨발. 팀장님, 죄송해요!"

그 정체는 박승주 박사가 집어던진 커피. 우서아 박사는 그런 악랄한 짓을 저지른 박승주 박사를 칭찬하며 쏜쌀같이 달아나고 홍아린 박사는 둘을 보며 당황해하다 보안팀장을 앞발로 걷어차고 먼저 달아난 둘을 쫓는다.

"흐으으윽... 왜... 설명이라도... 적어도 설명이라도 해달라고요오!!..."

그대로 몇바퀴 구른 보안팀장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의문과 배신감에 가득찬 절규를 지르다 축늘어졌으며 그대로 흐느끼다

[치익] "흑... 흐윽... 우서아 박사, 홍아린 박사, 박승주 박사. 셋은 직장 내 폭력을 행사하고 도주중이다. 오바."
[치익] [팀장님 지금 우심까? 오바.]
[치익] "부상자 발생. 나 보안팀장.. 흐으으으으으으응허어어어어ㅓ어어어어어엉우어어어ㅓ어어어"





"씨발 둘이 뭐하자는 거야 지금. 상황도 안보고 팀장 괴롭히고 뭐하는 짓인데?"

"정도윤 넌 언제 까지 돌다리 두들기고 넘어갈꺼야, 좆될 거 같음 감이 온다고!"

"'과학자'가 좆될 거 같은 감이라고? 아예 점집을 차리지 그래? 강민준 법사의 용하디 용한 무당집 어?"

"씹유나 이 미친년이 돌았나. 지가 먼저 선공으로 커피 집어놓고선"

"아아아아 이 씹... 그래서 어쩔건데?!"

중년의 교수와 박사를 제치고 밀치며 복도를 부리나케 달리는 셋은 우서아, 홍아린, 박승주 박사지만 그들은 서로 강민준, 정도윤, 심유나라 칭하고 있었다.

"일단 각자 숙소로 돌아가서 농성한다. 가다가 보안팀이 막아서면 그냥 몸빵으로 뚫어. 놈들이 준 몸인데 이렇게라도 역으로 써봐야지"

"숙소로 돌아가서 그 다음은? 걔네들이 전부 열쇠 가지고 있는데!"

"말했다시피, 우리 몸은 정상이 아니야. 네가 막으려고 마음 먹으면 다 할 수 있어"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데! 시간 벌기만도 못해!"

심유나는 남성의 성대임에도 고막을 때리는 고음으로 짜증을 부리며 묻는다

"정보부 말단이 와도 대답은 못들을거야. 그대로 계속 공성전해서 마땅한 사유라도 들어야지. 우리가 언제까지 고분고분 해야하는데"

"애초에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가야할 이유가..."

"성민호! 씨발 성민호가 탈주했다고! 그 소식을 듣고나서 뭐 생각한 게 없어? 그러고 나서 그렇게 뒤지고 싶던 새끼가 탈주를 저지른지 며칠 째 소식이 없는데 감이 안와?"

강민준은 성민호의 이름을 입에서 내뱉을 때마다 치가 떨려 격정한다.

"자꾸 감 타령하는데 넌 진짜 과학자의 귀감이 아니야."

"닥쳐! 난 곧 내 숙소동 쪽으로 간다. 시간 없으니까 잘 들어. 첫째 어떻게든 뻐겨서 놈들의 요구사항을 듣고만다. 둘째 놈들의 요구사항이 좆같으면 스위치 꺼내서 터트린다. 셋째 내가 덜 좇같다 싶어도 셋 중에 하나가 터뜨리면 버튼 눌러서 터뜨린다"

"너 진짜 미쳤지?! 이게 물리학자야 테러리스트야?"

"그나마 다행인건 이 시간대엔 숙소에 사람이 없을 거란거지?"

"넌 지금 말릴 생각도 없냐?!"

정도윤과 심유나가 티키타카하는 사이 강민준은 실외로 뛰쳐나와 뜀박질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데, 연구소 처박혀서 컴퓨터 자판을 눌러대는 과학자라고 믿기지 않을 속도다.

"우서아 박사님, 거기 멈추세요! 경고합니다! 그러시지 않으면 테이저 건을 발포합니다! 발포하ㅂ 밹"

보안팀이 그녀를 포착해 막아세우려하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들이박아버리고 불쌍한 보안 요원은 그대로 공중 3회전하다 바닥에 처박힌다

강민준이 세번째 보안 요원을 들이박았을 즈음 현관 앞에 도착했고, 부리나케 열쇠구멍에 열쇠를 끼워 문을 열고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닫아 그것으로도 모잘라 최신예부터 아주 고전적이고 아날로그한 안전고리까지 빛의 속도로 걸어잠근다. 그러고도 신발장에 숨겨둔 은밀한 스위치 꺼내 쥐고서야 현관문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른다.

"후.. 후우... 성민호... 죽은 건 아니겠지... 후..."

"안 죽었어요. 크게 한건 했던데요."

강민준은 혼잣말에 대한 대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숨도 못 쉬었고, 몇 초가 지나서야 용기를 내어 한발짝 한발짝 내딛어 모서리에서 자기방을 빼꼼 내다본다.

"특별관리자원 직장 쪽에서 이송 절차를 겪는게 공식적으로 내려온 명령이긴 해도, 세 분이 온전한 축에서 문제아 쯤 되는 분이라 그냥 먼저 와 있었죠. 똑똑하진 않아도 예측에 성공하다니 좀 인텔리해진 기분이네요."

"안 죽다니?"

"안 죽었죠. 우리도 지금 못찾고 있어요."

"입이 가볍네. 그래도 얘기가 좀 통하는 군."

강민준은 그 요원이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 따위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누군가임을 알아보고 심문 아닌 심문을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고, 스위치를 주머니에 넣고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를 경계하며 소파에 앉았다.

"좀 더 말해봐."

"안그래도 행동파인 '우서아' 박사님을 대할 땐 역설적으로 납득할만한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고 나와 있어서요. 어차피 이동하실 텐데 마저 좀 더 입방정을 떨어보죠."

"성민호 님은 죽기는 커녕 김민철 선배님과 합류해서 죽이고 다녔어요."

"뭐?"

"그러는 와중에 위치추적기도 제거하고 신원불명의 제 3자와 함께 뿅! 사라졌죠."

"그니까 성민호 때문에 이 지랄이 났다 이거지. 우리말고 다른 애들은 진작 끌려갔나 봐?"

"디테일한건 저희랑 같이 가서 들으시면 되요."

"아니, 부족해. 가면 뭘할 건데"

"우선은 국가특별관리자원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갖춘 1인실을 제공할 것이고,"

"독방이겠지."

"네. 다른 특별관리자원간에 교류를 차단한다는 항목도 있긴했어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도청기도 체내에 삽입할 거라는데요."

"나중엔 아주 시각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는데."

"참고하죠."

'지랄. 지들이 성민호 같은 놈들 더 만들려고 작정하네. 그 새끼가 남들과 다르게 고집이 쌔도 걔와 같은 이유로 자살하려던 특별관리자원은 적지 않아.'

'가만, 근데 이 새끼...'

강민준은 더 깊은 생각에 빠지기 전에 자기가 묻는 말에 전부 대답해준 요원을 지긋이 살펴보다 '좆된 감'을 느낀다

'도대체 어느정도 되는 인간이길래 이런 질문에 전부'

"잠깐 넌 도대체, 야 가까이 오지 ㅁ허어어어억 끄윽 컥"

'씨발 악력이 왜 이렇게...'

"어차피 가실 건데 좀 곱게 가시면 안될까요?"

정장의 요원은 그대로 강민준의 목을 한 손으로 조르며 높이 들어올렸고, 강민준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주먹으로 마구 내리쳐 보지만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의식이 점점 더 희미해진다

'스위치... 를...'

그 순간 섬광을 동반한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와장창 부서졌고 요원은 그 충격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강민준을 집어던진 뒤 창문 밖을 살펴본다. 서쪽으로 우유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주변의 차량들은 그 충격파로 도난방지 벨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서쪽... 씹유나가...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너... 케흑... 너희 메뉴얼 좀 갈아엎으시지."

"헉... 행동파는... 따로 있다고."

"!! 그거 내려 놓으ㅅ"

"좆까"






섬광, 굉음, 암전.

'얼마나 지난거지?... 아직 내가 살아있는 건가?'

눈을 떴음에도 바로 앞이 보이지 않았고, 시야가 천천히 밝아진다.

'이 차, 내가 보안팀장 차를 깔아뭉갠건가? 불쌍한 새끼'

강민준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자기 숙소에서 100 여 미터 떨어진 곳, 게다가 보안팀장이 애지중지하는 렉□턴을 반파시킨 채 유리창과 보닛 위에 기댄 채 누워있었다.

'뭉게구름이 세 개. 정도윤도 마저 터트렸나. 얼추 재생도 된 거 같으니 얼른 집결 장소로 가야...'

그 순간 보닛을 턱하며 짚는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강민준의 뺨에 튀었다.

"후우욱.. 함호 하호혹 하효..." (참고 하도록 하죠)

얼굴의 가죽은 모두 벗겨진데다 턱은 날아가고 외팔이에, 그나마 보닛을 짚은 손은 뼈가 다 들어나 있었고, 하반신은 사라진 채 기어온...

"앰병, 너도 그런 거였나. 으 으아아아"

강민준은 기겁하여 그대로 보닛 위에서 굴러 떨어졌고, 손이 닿는대로 아무거나 쥐어 들어 '요원'의 머리를 마구 때린다

"씨발!" 퍽! "싫다고!" 퍽! "너 같은 놈도!" 퍽! "망할 그 정책도!" 퍽! "성민호도!" 퍽! "나 자신도!" 퍽!

더 이상 특별관리자원의 머리통을 둔기로 부숴버릴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죽지 않았으나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음을 깨달은 강민준은 보안팀장의 사이드 미러를 툭하고 떨구고 수차례 심호흡을 하다 발걸음을 옮긴다

'EMP도 같이 터트리긴 했는데 위치추적기가 망가졌을까' '그래도 금방 추적해낼 거야'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성민호가 나대서...'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

"너네가 빠른거야. 우리랑 똑같은 몸뚱아리 요원이 날 직접 데리러 왔었다고"

우서아, 홍아린, 박승주. 아니 강민준, 정도윤, 심유나는 쓰레기장 변두리의 한 주인 없는 컨테이너에서 합류했다

"날 데리러 오려고 했던 그 요원 놈이 입이 가벼웠어. 우선 성민호는 살아있다. 게다가 그 살인 병기라는 김민철도 같이 있고."

"그 김민철? 걔랑 걔가 만날 때까지 뭐했데."

"그냥 설렁설렁 냅두다가 탈주 하고나서야 조치를 취했나봐. 우리가 폭탄을 만들어둔 것도 모르면 얘네 생각보다 안일했어."

"근데 이번에 잡히면..."

심유나가 침울하게 앉아서 울상을 짓다가 말 끝을 흐린다. 강민준은 어깨를 으쓱대며

"잡히면? 최소 독방에 감금하고 도청기도 심는다던데. 내가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시청각 정보도 모니터링하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보겠단다. 아 물론 순순히 그대로 끌려 갔어도 마찬가지였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랬어야만..."

"좋든 싫든 정도윤 네가 여기까지 와준 건 고마운데, 자꾸 김새는 소리 할 거면 좀 꺼져줘라. 우리가 탈주하려고 만든 폭탄이 아니라 우릴 보호하려고 만든 거였어."

"이제 어쩔거야? 성민호처럼 하려고? 난 그걸로 안돼. 내가 특별관리자원으로 끌어들인 애들만 스물이 넘어. 난 이대로 혼자서 못 도망가."

"그야 도망... 하..."

물리학자 트리오는 쓰레기장에서 합류한 다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준은 도망쳐야한다고 설득하려다 말을 멈추고,

"내 생각엔..."

"뭐가?"

"빨리 좀 말해."

하려던 말을 할까말까 그 의견이 자꾸 입안에서, 입술에서 맴돈다

"성민호를 죽이자."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올 수가 있냐?"

"알 거 같긴 한데. 네 희망사항도 포함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아니라고 씨발! 들어봐! 솔직히 내가 열등감을 품은 건 맞아! 근데 얘만 사라지면 우리가 받아야할 처우가 좀 나아질 수도 있다고!"

"죽여봐야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고 나서 '그 새끼'만 그랬던거라고 어떻게든 우기자고! 사상 최대의 천재니까! 어?!"

강민준은 어색한 미소 속에 어떻게든 논리를 펼쳐낸다. 성민호만 없앤다면 어떻게든 될거라고.

"'그 새끼'만이라니. 우린 방금 핵융합 발전소에 폭탄을 세 개나 터트렸어."

[약 네 시간 전 C 핵융합 발전소에서 세 차례 폭발과 함께 불길이 번졌습니다. 폭발사고의 근원지라 알려진 숙소동엔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인명 피해가 없으나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또한 폭발 사고 직후 발전소 일대의 통신 장치가 마비가 되는 등...]

"차라리 이렇게 된 이상 성민호랑 합류해서 맞서는 ㄱ"

"안 돼!!"

"안 돼. 우리가 걔랑 합류한다고 이길 거란 보장은 어딨어? 그 동안 다른 특별관리자원은? 말이 독방에 도청기지 무슨 짓을 더할 지 모른다고!"

"유나..."

논쟁 끝에 적막한 침묵만이 돈다. 그들은 쫓기는 신세에도 불구하고 몇 분을 그렇게 보내다 강민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그럼"

"죽이자?"





[노화 역행 시술까지 받은데다 죽음을 위장하고서도 그 오랜 세월 동안 기계공학 같은 건 제대로 안파봤어? 벙커까지 침입한 건 좋은데 모양이 왜 이래?]

"이.. 개새끼!"

"너도 한번 쓰레기 장에서 여섯 시간 안에 5 대를 뽑아 보던가"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으면 이 꼴은 아니었어!"

쓰레기장에서 부족한 자원으로 그만한 살인병기를 6대씩이나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에 더해 어디있을지 모를 탈주자를 찾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특별관리자원에 들만한 천재 물리학자 셋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물리학자 트리오, 핵융합 발전의 권위자. 강민준, 정도윤, 심유나.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어. 내가 김미미 양을 시켜서 먼저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오셨구먼.]

"오만한 새끼가 다 아는 체 하고 자빠졌어!"

"씨발. 이제 다 끝났어."

"내가 이래서 말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 셋을 뛰어넘는 지력에다가 그들이 겨우 만들어낸 살인 병기 6대가 다합쳐도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모두 파훼되었다

~~~

[혹시라도 너희랑 만나게 된다면 생과 사 조차 국가에게 관리당하는 마당에 서로 차나 마시면서 협상이나 해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네.]

"나도 몰라서 당하긴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살고 싶다고!"

사실이다.

"난 애초에 자격미달이었지만 다른 애들 꼬시는 걸로 거래했단 말이야!"

사실이다.

"난 안죽고 싶거든! 뒤지고 싶은 거 너뿐이라고 이 병신아. 뒤질거면 혼자 뒤져!"

거짓이다. 성민호 말고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하는 고통 때문에 죽으려던 특별관리자원은 적지 않았다. 강민준은 당황한 나머지 그저 자살을 종용하고 있을 뿐이다.

[못 죽어.]

"아니 아니 아니 너. 넌! 죽어야 해!!" "뭐?!" "못 죽는다고? 그럼, 그럼 우린? 우리는 이대로 붙잡혀서 독방에 갖히라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딜 감히

[슈퍼사이즈 버거세트를 시켜 먹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생겼거든.]

[그래서 이제 못 죽어.]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강민준은 흥분한 나머지 앉고 있던 의자를 화면에 던져 부숴버린다. 살인기계를 조작하던 여러 기기들도 모두 아작을 내버린다.

"슈퍼! 사이즈! 버거세트! 라고?!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거야! 성민호도! 이 개좇같은 정부도! 씨이바아알!!"

나머지 둘은 증거인멸인 셈 치고 강민준의 과격 행동을 막지 않는다. 정도윤은 한숨과 함께 자석과 라이터 압전기로 만든 쇼트 장치로 모든 기기의 메모리를 태워버리고, 심유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폐유를 뿌리고 간이자폭장치를 준비한다 활활 불타는 컨테이너, '간이거점'을 등지고 물리학자 트리오는 아무말 없이 쭈그려 앉아있다가 저편에서 시커먼 차량들이 몰려오는 것을 포착한다

"아."

강민준은 맨 앞의 요원이 어딘가 낯익은 것을 보고,

"역시 안죽었나."

"걔가 쟤야?"

"그래."

"하, 적어도 성민호 위치는 고자질할 순 있겠네."

정도윤의 한숨과 함께 나지막히 내뱉은 말에 강민준은 뭔가 깨달은 것처럼

"오 시발."

"야 그거 말하지 말아라"

"존나 개쩌는 거 생각났어. 감이 온다고."

"이제와서? 미친 새끼."

"닥쳐봐 씹유나. 특별관리자원은 자원끼리 뭉칠 수 있고, 국가는 국가대로 전복하고,"

"성민호도 죽여버릴 꺼라니깐?"

강민준은 그대로 벌떡 일어나 불타는 컨테이너를 후광 삼아 마왕처럼 웃어댄다. 마침 언덕을 올라온 요원이 그 모습을 보고,

"저 빼고 무슨 재밌는 얘기라도 했어요?"





['행정부에서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핵심인적자원'으로 관리하기로 발표하였습니다, 핵심인적자원, 약칭 '심인'의 창설 멤버는 핵융합 발전의 최고 권위자 우서아, 홍아린, 박승주 박사를 포함해...]

"쯧!..."

"아 뭐야 팀장님. 우리 발전소 출신 박사님들 티비 나오는데 왜 그래요? 그렇게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면서"

보안팀장은 그대로 채널을 돌려버렸고 부하직원이 그에 불평하지만

"네가 직접 안당해봐서 몰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폭발사고 때문에 내 차도 폐차시켰다고."

"거 유감이네요."

보안팀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인다.

"흐윽.. 왜 그러셨냐고요... 힝" "팀장님 우심까?" "안 울어 이씨!"



 

 

성민호 ↔ 오연희

김민철 ↔ 김미미


강민준 ↔ 우서아

정도윤 ↔ 홍아린

심유나 ↔ 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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