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https://m.ruliweb.com/etcs/board/700064/read/3956?
오래된 건축양식을 참고하여 세워진, 실제로는 근대적인 대형 건조물. 도서관이나 박물관처럼 보이는 그곳은 <유니온 인류역사 연구소>라 불리우는 시설이었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지금도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방이 몇 개 존재했다.
"여어, 그라베, 오늘도 잔업이냐?"
대량의 서류가 정연하게 늘어서있는 방. 현재는 매우 희귀해진 비 디지털 자료인 종이 책이나 사진 등이 가득하다. 상당한 양이다. 그렇다고 어질러져 있지도 않다. 모두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방의 주인인 남자ㅡ그라베라 불린ㅡ의 성격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라베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듯, 물 흐르듯 우아하게 자료 정리를 계속했다.
"안듣고있어?"
동료로 보이는 남자가 재차 말을 걸었다.
"미안, 듣고있다."
그라베는 손을 멈추고 서류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검은 머리카락이 사락 하고 흔들린다. 남자한테서는 보기 힘든 장발이다.
들어올린 얼굴 중심에는 안경. 색이 짙은 렌즈 안쪽에는 지적인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얼굴은 중성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료 사이사이로 엿보이는 몸은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미안, 몇 초만 있으면 정리가 끝나려던 참이었다. 여기서 집중이 흐트러지면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는데 수 분은 걸리거든. 이쪽 사정 때문에 실례되는 행동을 했군."
그라베는 상대를 응시하며 솔직하게 사과했다. 이렇게까지 시원하게 사과하는 사람도 드물다.
"여전하네."
말을 건 남자는 웃으며 용서했다. 그라베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자료에 집중하고 있던 그에게 말을 건 자신이 나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네가 있는 곳은 늘 종이가 산더미네."
"역사를 연구하는 거니까. 당연히 자료도 오래된 것이 많아지지."
"오래된 자료들이라도 디지털화 된게 있잖아?"
"디지털화 라는 작업 때문에 자료의 본질적인 부분이 결락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곤란하지."
"너답네."
"그런데, 볼일이 있어서 온게 아니었나?"
"아니, 나도 가보려는데, 너도 일이 끝났다면 같이 한 잔 하러 가는게 어떠냐고 물어보려 왔어. 하지만 그러고 있는걸 보면~. 어차피 정리가 끝나도 바로 레포트 작성을 시작하겠지. 다음에 또 올게."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군. 오늘 중으로 이 아프리카 지역 리포트를 정리해 두고 싶었거든."
남자는 거절당하긴 했지만 불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라베라는 남자는 겉과 속이 없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설명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며, 결코 변명 같은게 아니다.
이런 게 연인이라면 대화의 스릴도 기대할 수 없는 '재미없는 녀석' 취급을 받겠지만, 업무상의 동료로서는 심플하고 알기 쉬운것이 최고이다.
본래 인간관계라는 것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네가 이 일을 좋아하는건 잘 알고 있으니까."
에둘러 "힘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라베가 항상 베스트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남자 동료는 잠시 생각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쉬엄쉬엄 해."
"그래."
"그럼 난 먼저 실례할게."
남자가 사라지자 그라베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떨궜다.
그라베가 일하는 <유니온 인류역사 연구소>는 민간 시설이었지만 그 이름대로 유니온이 출자하여 새워진 것이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인류 생존권>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나누어져있는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로 묶는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 활동은 다른 진영에 비해 긴 역사를 갖지 못한 나라,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역사를 세계와 공유하는 것으로 자신들도 '길고 오래된 역사'를 기지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고싶다는 속마음이 있었다. 이것은 '세상은 자신과 관계된 지역이다.'라는 발상과도 이어지며, 세계경찰로서 각지의 분쟁에 개입하고있는 유니온에게는 큰 메리트가 있었다.
물론 그런 이면의 이유는 그라베와는 관계 없었다.
아까 그 남자가 지적한대로 그라베는 이 일이 좋았다. 그는 역사 뿐만이 아니라 인류와 관련되어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였다.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이유 같은건 없을지도 모르겠군……"
정리를 끝낸 자료를 이용해 레포트 작성에 몰두하기 위해 다시 집중한다.
키잉!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머릭속을 전기와 같은 것이 꿰뚫었다.
아픔은 없다.
불쾌감도 없다.
위화감도 없었다.
그저 전류가 흐르면서 만들어진 작은 구멍으로부터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등록넘버 07362-AW6416 성명 그라베 비오렌트. 새로운 미션으로 이행. 필요 데이터의 다운로드……90%완료. 접속중……"
몇 초 후.
그라베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노베이드. 베다를 위해, 인간을 알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그리고 지금부터 솔레스탈 빙을 위해, 사람을 모아야만 한다. 건담 마이스터로서, 무력개입에 종사할 인간들을……"
한 순간에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안 그라베는 새로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일어섰다.
"......"
조금 생각해보고, 다시 고쳐앉는다.
그리고 아까 시작하려고 했던 레포트 제작을 시작한다.
자료 정리가 끝났기 때문에 레포트 작성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자신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있었지만, 레포트를 이대로 두고 갔다가는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된다.
"조금만 더……"
그라베는 아침까지, 지금껏 해왔던 일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것과 영원히 이별했다.
다음 날 아침, 그라베의 방을 찾아온 자는 말끔히 정돈된 방과, 완벽히 정리된 레포트를 발견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
200여년 전.
영구적인 평화와 인류의 진화를 바라던 남자가 있었다.
이오리아 슈헨베르그.
그는 우수한 과학자였으며, 자신의 꿈이 '실현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불안한 점은 어리석은 인류가 꿈을 실현하기 전에 멸망해 버릴 가능성이었다.
그는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아 꿈을 확실히 실연시키기 위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이상을 이어받은 존재였다.
<베다>
'지식'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양자형 연산처리 시스템. 거대한 컴퓨터이며, 세상을 뒤덮은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생명체가 아닌 베다는 영원히 가동하며, 영원히 이오리아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작동한다.
베다는 그 이름대로 <지식>을 가진 <지성체>그 자체였지만,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지켜야 할 인간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이오리아는 베다를 돕도록 인간의 유전자를 베이스로 제작한 인조인간을 준비했다. 유전자를 제공한 것은 이오리아의 동료였던 과학자들이었다.
인조인간들은 인간 사회 속에서 인간으로서 생활하며, 양자통신을 통해 베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보를 계속해서 송신했다.
그들은 다가올 혁신적 진화를 이룬 인류 <이노베이터>를 본뜬 능력을 가지며, 이노베이터의 모조품을 뜻하는 <이노베이드>라고 명명되었다.
수많은 이노베이드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 채 생활하고있다. 극히 일부만이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으며, 베다에게 특수한 미션을 받고 활동하고있다. 그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부여받은, 본래의 이노베이드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라베는 전자로서 인류사회에 배치되었고, 그 후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존재는 그닥 많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인원 스카우트 활동이었기 때문에, 인간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인간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경험을 쌓도록 한건가……"
모든 것을 안 그라베는 냉정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했다.
베다는 계획의 중요한 요소로서, 건담이라 불리는 기동병기를 사용하는 분쟁에 대한 무력개입을 계획하고 있었다.
솔레스탈 빙을 자처하는 사설무장조직. 그곳이 보유한 기동병기 건담. 그것은 세상에 크나큰 충격을 줄 것이다. 세상은 그들과 맞서기 위해 하나로 뭉치려 할 것이다. 당연히, 그 저항 또한 거셀 것이다.
싸움 한 가운데 서게 될 건담의 파일럿ㅡ건담 마이스터라 불린다ㅡ은 신체적 적합성에 더해, 이념적으로 조직에 공감할 수 있는 인재가 요구된다.
건담 마이스터의 적임자를 찾아내는 것이 그라베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우선 개발을 담당할 마이스터를 고른다. 그중에는 실제 무력개입에서도 마이스터를 맡길 수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도 세계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인물……"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그라베는 적합자의 인물상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베다가 준비해 둔 후보자 자료는 방대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조사하고, 그리고 직접 만나 확인하고, 마지막 판단을 내려 베다에게 진언한다.
"자료를 직접 확인하고 결단한다."라는 방식은 지금까지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첫 스카우트 대상자는 형무소 안에 있었다. 대량살인을 저질러, 그 죄에 사형이 내려지기 직전인 여자였다.
사형수라면 보통은 스카우트 대상에서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라베는 "그녀에겐 충분한 소질이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베다도 찬성했다.
그라베는 베다를 이용해 그녀의 형무소 면회 리스트에 개입하였다. 최후판단 전에 반드시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다는 모든 네트워크에 간단히 침입 가능하여, 간단히 데이터를 바꿔치기 해 그라베의 면회 스케줄을 설정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사실, 그녀는 지금까지 모든 면회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형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변호사와의 면회 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종교 관계자도 거부하고 있군……"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하고, 그 자신도 죽으려 하고있다. 그러나 종교에 의지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이것은 나쁘지 않다고 그라베는 생각했다.
그가 딱히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성의 태도로부터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인물에게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 분명 좋은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그녀가 사형을 당하는 것이지."
그라베는 그녀가 사형에 처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은 지독하게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녀를 마이스터로 스카우트 할 수 있다면 사형은 면할 수 있다.
그라베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라베는 여성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그녀와 면회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비극의 근절."
그것만을 썼다.
그리고 당일. 면회실에서 기다리고있던 그라베의 앞에 여성 후보자가 나타났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강화 유리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여성은 스스로 말을 걸어왔다.
"그건, 무슨 뜻이었지."
그라베의 편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그 뜻 대로다. 당신이 바란다면 당신의 목숨을 '거기'에 쓸 수 있지."
여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 보지."
그 순간, 그라베는 그녀가 동료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라베는 솔레스탈 빙이라는 조직에 대해 말했고, 그녀에게 기동병기 건담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면회실에서의 대화는 전부 녹음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베다에 의해 즉석에서 뒤바뀌고 있다. 애초에 그라베가 면회를 온 사실조차 기록에 남지 않는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도중, 그라베는 그 여성이 상당히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조직의 멤버로서는 위험한 레벨이었다. 그녀가 상냥함 탓에 조직을 배신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직접 만나고 이야기 하며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그라베가 안 순간, 베다도 알게된다. 아마도 베다는 그녀의 배신 방지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리라.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지금 그녀를 스카우트 하는 것은 그녀를 구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이 그녀를 스카우트 하는 것이 그녀의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그라베는 마음 깊숙이서 바랬다.
설명을 끝내고, 그라베는 여성에게 마지막 의사 확인을 행했다.
"그래. 비극을 막을 수만 있다면."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렇게 마레네 블라디가 동료가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으로 만난 후보자는 마이스터로서의 능력 말고도 메카닉으로서의 재능도 겸비한 남자였다.
베다는 자신에게 축적된 수백년을 앞서가는 기술과 전 세계의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손에 넣은 최신기술을 이용해 기동병기 건담을 개발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기술자를 더하는 것도 솔선하고 있었다. 베다가 모든 것을 진행하는 것을 조직의 창시자 이오리아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반드시 인간의 손을 거친다. 설령 비효율적 일지라도, 조직은 그렇게 운용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남자는 작업용 워크로더 개발로 이름이 알려진 존재였다. AEU가 모빌슈트 개발자로서 스카우트 하려고도 했었다. 당시 신형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던 AEU는 우수한 인재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싸움을 낳는 병기는 저한테는, 조금……"
멋쩍은 미소를 띄우며 거절한다.
그 때의 영상은 베다가 감시카메라에서 다운로드 했으며, 그라베도 볼 수 있었다.
미안한 듯 웃으며 대답하는 남자. 미남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라베는 이해해도 베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라베는 남자가 과거에 거절했던 '군용 병기'의 일을 부탁하려 하고있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거절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라베에게는 승산이 있었다.
남자를 끌어내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준비했다.
허가를 받아내고 그가 알하고 있는 팩토리에서 직접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도 베다를 사용하여 순조롭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날 만나러 왔다는 사람이 당신인가."
"시간을 빼았아 미안하군. 하지만 손해는 보지 않을거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 스케줄을 건드린거지?"
순간, 그라베의 말문이 막혔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무슨 수를 쓴거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거지."
"이번에 댁이랑 만나기로 했던거,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거든.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변명거리 삼아 잡아놨던 '빠질 수 없는 예정'이 하나 둘 실현 불가능해졌거든. 거래는 날아갔고, 여행은 일방적으로 취소당했고. 우연이라기엔 좀 지나치잖아."
"그렇군."
아무래도 베다가 너무 나간 모양이다. 하지만 베다의 실수만도 아니다. 보통 누군가가 개입했을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하니까. 그러한 운명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것은 불가능하며, 우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눈앞의 남자가 우연이라 여기지 않았던 데에는 그가 가진 높은 감성, 메카닉으로서의 기술적인 센스가 관여된 듯 하다.
아무래도 이 남자를 스카우트 하려고 한 방침은 잘못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 생각은 정확하다."
"역시. 그런데, 어떻게 한거야?"
"그건 아직 대답할 수 없다. 용건을 전부 전한 다음에는 대답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좋아,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
"우선, 이걸 봐 줬으면 한다."
그라베는 준비한 사진을 남자에게 보였다.
곧바로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건 대체 뭐야!"
물음을 던지면서도, 메카닉인 그는 그 장체를 꿰뚫어보고, 스스로 정답을 말했다.
"최신식, 아니, 그런 간단한게 아니야. 이건 미래에서 온 모빌슈트인가?"
그라베가 보여준 사진. 그것은 조직의 최중요 기밀중 하나인 0건담의 사진이었다.
그라베는 건담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무력개입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어쩔거지?"
그의 의사를 확인했다.
"물론 참가해야지. 싸움을 멈추게 하는거잖아. 파일럿이든 뭐든 할거야. 게다가 이런 머신을 만질 수 있는 기회는 다신 없을테니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승낙했다.
그 얼굴을 보자 그라베의 표정도 상쾌해졌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라베는 그 남자ㅡ루이도 레조난스ㅡ를 스카우트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소녀는 워크로더의 조종기술을 겨루는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고등학생으로선 탑 클래스의 성적이다.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이 본격화 되어가는 현재, 그녀의 기술은 높은 평가를 받을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요구되는 워크로더의 조종자로서. 그리고 한가지 더, 그 엘레베이터를 지키는(또는 파괴하는) 모빌슈트의 조종자로서.
하지만 소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는 없었다.
인간은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열로서 만사를 판단해 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우승자에겐 스카우트 제의가 몰려왔지만, 준우승의 소녀는 무시당했다.
그러나 베다는 인간과는 다르다. 베다는 그 소녀의 재능을 분석하고 건담 마이스터로서 충분한 소질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라베도 베다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자료를 훑어보니, 그녀가 대회 직전까지 사용했던 기체가 있었지만 대회에서는 룰 변경에 의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익숙치 않은 기체로 대회에 참가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가 사용하려 했던 기체는 인류혁신연맹에서 우주 작업용으로 개발한 샤오쇼우라는 모빌아머였다. 이쪽은 현재 군용병기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회 규정에 걸린 것이다. 거기다 대회 직전에 와서야 그렇게 판정된 것은 라이벌의 적극적 방해공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베는 하교중인 소녀에게 접근했다.
"ㄴ, 네, 무슨 일이신가요?"
그라베를 보는 샬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명백히 일련의 감정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라베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 사회에서 나름 오래 생활해온 그였지만, 잚은 여성과 대화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라베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소녀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너의 표정을 보고있으면 이해 불가능한 감각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녀는 그것을 <연심>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고?
그런 자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라베는 곧바로 뇌양자파를 사용하여 베다에서 <연심>에 대해 다른 의미가 없는지 확인했다. 몇가지를 발견하긴 했지만 무엇도 현재 자신의 심경과 합치하지 않았다.
뭐, 됐다. 중요한 것은 스카우트다.
그라베는 다시금 소녀에게 조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네! 권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에 사랑하는 천진난만함을 남긴 소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카페에서 조직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꿈 속의 소녀도 현실로 돌아왔다. 진지하게 그라베의 설명을 들은 소녀는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받아들이겠어요."
그 순간, 후에 샬 아쿠스티카라고 자칭하게 될 소녀의 운명은 크게 움직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