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법률안을 발의하였던 국회의원들 앞으로 제가 보낸 메일을 기록 보관 및 논거 공유 차원에서 올려둡니다.
존경받는 의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금번에 접수된 [220729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우려스러운 점이 있는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실력은 미숙하나마 취미로 만화를 몇 차례 그려본 적 있는 아마추어 작가로서 제 의견을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의원님들께서 발의한 법안의 취지는 십분 이해합니다만, 2012년 3월 16일 법률 제11047호에 따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시행 이래로 가상의 표현물까지 청소년성보호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꾸준하게 논란이 되고 있으며 금번 개정안으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를 더욱 과도하게 침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의원님들께서는 영화 '은교'를 관람하신 적 있으신지요? 은교의 개봉을 즈음하여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관람불가의 성인물일 뿐 음란물이 아니므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당시 명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2013헌가17·24, 2013헌바85(병합) 결정에서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은 은 단순히 등장하는 사람이 어려보인다거나 성인이 아동·청소년과 같이 옷을 입거나 분장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상의 상식을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그 외모, 신원,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그 사람을 등장시켜 각종 성적 행위를 표현한 화상 또는 영상 등 매체물의 제작 동기와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실제 아동·청소년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설시한바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미성년자가 등장한 작품들은 어떻겠습니까? 2000년 작 한국 영화 '춘향뎐', 1992년 작 프랑스 영화 '연인' 모두 작중 여성 주인공의 나이가 19세 미만이며, 연기한 배우 또한 마찬가지로 미성년자였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대역을 썼다는 설도 있고 아니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한 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명백히 아동·청소년이 등장하여 청소년성보호법 제2조 제4호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되는데, 이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하나 '춘향뎐'은 2022년 한국영상자료원의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 특별상영전에서 상영된바 있으며 현재도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네이버 TV 및 유튜브 채널과 VOD 서비스를 통하여 시청할 수 있고, '연인'은 현재도 여러 OTT 서비스를 통하여 시청이 가능합니다.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는 이렇게 널널한데 왜 그림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가상의 표현물에 대해선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술성과 비교하여 음란성이 정도를 지나친다면 이는 건전한 사회 풍속을 해한다 보고 사회적 법익을 고려하여 실제 아동·청소년 등장 여부와 무관하게 가상의 창작물까지 규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과 형법 제243조, 제244조를 통하여 기 규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설령 이로는 부족하다 한들 법개정을 통하여 해당 조항의 형량을 상향하거나 항을 새로 추가하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가상의 표현물에 대하여까지 특별법을 통하여 일반법 대비 상당히 중한 처벌과 함께 공개명령과 신상정보 등록 처분 등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 주관적인 개연성 주장 수준을 넘은 상당하고 객관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구체적으로 입증되거나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진 부분은 있던가요?
헌법재판소의 2013헌가17·24, 2013헌바85(병합) 결정에서도 단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만 하였지 구체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진 않았으며, 당해 결정 중 재판관 4인은 이를 지적하여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의 접촉과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된 바 없고, 단순히 잠재적으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한데, 이를 이유로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경우를 성적 착취를 당하는 일차적 피해 법익이 존재하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와 동일하게 중한 법정형으로 규율하는 것은 유해성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나 유해의 가능성만으로 표현물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헌재 2002. 6. 27. 99헌마480 참조)'는 반대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형량 면에서도 봅시다. 현행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 제1항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상의 표현물, 이를테면 그림이나 만화 하나 그렸다고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게 옳은 걸까요? 형법 제250조 제1항 살인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고, 최근 국민 대다수를 당혹케 했던 계엄 사건과 관련하여서는 제87조 제2호 내란(모의참여, 중요임무종사, 실행)의 형량이 이와 유사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입니다. 실제 성착취물이면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겠으나, 그저 그림 그린 것만으로 살인이나 내란범과 동급의 취급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배포 등에 대한 형량은 당초 헌재 결정의 취지에 벗어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법정형의 상한만이 정해져 있어 법관이 구체적 사건에서 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등장하는 사람 또는 표현물의 유형, 표현된 성적 행위의 수위, 음란성의 정도 및 범죄의 죄질과 행위자 책임의 정도, 일반예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형사정책적 측면, 해당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유통으로 인한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한 양형의 선택이 가능하고, 영리 목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구별하여 후자의 법정형을 경하게 정하고 있으며, 특히 영리 목적이 없는 경우는 벌금형의 선택도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이 형벌체계상 균형을 상실하여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시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여러 차례에 걸친 법률의 개정으로 인하여 비영리의 경우 3년, 영리의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만을 규정하는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죠. 합헌 결정이 나온 상황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개정 과정에서의 국회 회의록과 소관위 검토/심사보고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성착취물 관련 처벌조항의 형량이 처음 상향된 건 청소년성보호법 일부개정안(의안번호 1901633)이 청소년성보호법 전부개정안(의안번호 1902737)에 반영되어 해당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 제311회 국회(정기회) 제4차 전체회의의 회의록을 보면 의안번호 1901633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최민희 의원 스스로가 표현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이 보입니다. "최민희 위원: (전략) 그때 2조5항이 이토록 모호하게 행정부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판단되는지 점검하지 못한 것 잘못입니다. 그러면 그 잘못된 것에 대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잘못입니까? 국회의원이 신이냐고요. 그 후에 한 달 반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 제기를 받고 그 문제 제기들을 일일이 들었습니다. 듣고 ‘아, 이것은 전체적으로 2조5항과 8조5항은 연동되어서 토론되어야 되는구나’ 그랬고 간사하고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라 발언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였고, 행정 실무상의 실수와 일정에 쫒긴 문제로 표현물 부분이 삭제되지 못하고 남아있게 되어버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한 차례 더 개정을 하게 되는데, 의안번호 2023925의 개정안이 의안번호 2024979 개정안에 반영되어 흡수되고 의안번호 2024979 개정안이 통과되며 형량의 하한선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설시한 취지라든가 앞서 최민희 의원이 문제삼았던 표현물과 관련한 검토 내지 지적은 회의나 보고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지적한 내용은 새 발의 피입니다. 법률 제11047호 개정과 헌법재판소 2013헌가17·24, 2013헌바85(병합) 결정 등에 대하여는 수많은 법학논문들이 지적해온 바 있습니다. 법률에 이러한 결함이 있음에도 이를 방기한 채 처벌 대상만 확대하는 것은 문화예술계에 지나친 규제가 됩니다. 본 개정안은 폐기하고 이러한 흠결을 함께 바로잡는 새 개정안을 제안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