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깊다.
글은 아직 하나도 못썼다.
한글은 키지도 않았다.
그저 엑셀을 켜놓고 회차 플롯만을 적어놨을 뿐이다.
무엇이 날 망설이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는데 굳이 마주하려 않는 것이다.
마주해봤자 내가 글을 써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럴바엔 미지의 원인으로 놔둔채 애먼 허공을 집는게 더욱 편하기 때문이다.
맨 처음 글을 썼을때가 떠오른다.
남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썼었다.
내 가슴에 고여있는 응어리를 토해내고, 생각과 사상을 이야기로 펼치는 그 재미에 나는 물아지경을 경험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천직이구나.
하지만 상업작가가되니 많은 것들이 달랐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소수. 나는 팔리는 글을 써야했다.
예전과 다르게 많은 노하우가 생겼다.
인간이 언제 재미를 느끼는지 깨달았고, 어떻게하면 독자들이 환호하는지도 알았다.
재미있지.
독자들과 함께 호흡한다는건 참으로 기쁜일이다.
하지만 독자들과 함께 간다는 생각때문에 정작 나 자신을 버린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 내가 원하는 캐릭터, 내가 원하는 결말.
슬픔과 아집으로 점철된 이야기는 대중성이라는 이유로 미루어졌다.
그대신 얻은건 돈.
슬프게도 이 돈이란건 마음의 공허함을 메꾸어주진 못했다.
누군가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라는 인간은 물질 따위로 공허함을 달래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럼 무얼해야할까.
내가 원하는 글을 써야겠지.
지금 작품은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한동안은 나만이 만족할 수 있는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