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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유스티니아누스는 왜 고토 회복을 꿈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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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에 쓴 글을 조금 가다듬어 올려봅니다.



대개 인간 행동의 본원(本源)은 욕망이며, 욕망에는 여러 이름이 있다.


인정받으려는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더 편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

그의 '꿈' 역시 어떠한 욕망에서 유래하였을 터.


적어도 그 욕망은 몽상가적 기질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인간' 페트루스 사바티우스 유스티니아누스는 오랫동안 동로마 정계에 몸을 담그며 정치를 맛본 정치인이고, 기어이 제관을 쓴 나이는 불혹을 넘긴 45세였으니까.

그런 여정을 거치고도 몽상가 기질을 유지했다면 뭐, 나름 대단한 주관이겠다.


동로마 제국의 유명한 정복군주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리아 정복 등 크고 작은 전쟁을 평생에 걸쳐 수행했고 죽기 전까지도 원정을 기획했다.

이는 바실리오스가 전쟁광이기 때문이기보다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바실리오스 2세는 젊은 시절 연이은 내전을 겪은 인물이다. 황제의 권위가 실추될 때 어떤 상황이 일어날 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딱히 로마 시민들을 사랑한 것 같지 않지만, 열심히 자작농도 육성하고 귀족을 견제한 것 역시 황권강화책이 결과적으로 좀 괜찮은 정책이 된 케이스이다.


필자의 귀찮음 탓에 바실리오스 2세의 예시만을 들긴 했으나, 대개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황제의 권위는 정복과 양적 상관관계에 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유스티니아누스는 트라키아 소작농 출신이었고, 선임 황제이자 숙부 겸 양부인 유스티누스 역시 사병 입대한 돼지치기가 황제까지 된 케이스였다.

유스티누스는 요행과 정략으로 제관을 손에 넣었지만 문맹이었다. 세련된 수도 귀족들 눈에는, 솔직히 성에 차지 않는 황제였을 것이다.


어쩌면 공공연히 조소거리로 회자되었을 지도 모른다. 돼지치기 주제에 분에 맞지 않게 출세했다며.


니카 반란 때 폭도들이 아나스타시우스 전 황제의 조카를 옹립한 것도 소작농 출신 황제보다 더 고귀한 핏줄을 선호했기 때문 아닐까.


다행히 유스티누스는 문맹이되 얼간이는 아니었다.


출신 성분에 대한 세간의 편견에 맞서고 싶어서일가, 적어도 그 후계자인 유스티니아누스는 양부의 후원 아래 온갖 고급 교육을 받아 수준높은 교양인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 정계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적극 등용한 인재 중에는 신진 세력이 많았는데, 이는 그가 기존 기득권 세력 내에서 친위 세력을 양성하기 어려운 '비주류'였다는 방증이다.


더불어 유스티니아누스가 인재 감식에 유독 뛰어난 것 역시 이런 성장배경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정치적 비주류니 자기 사람 한 명이 절실할 테고, 그러니 많은 사람을 만나며 안목을 기를 수 밖에.


이러한 환경에서 부풀어오른 열등감은 일종의 증명욕, 출세욕으로 굴절되기 쉽다.


좌절을 겪은 자들일 수록 이상주의자가 된다 했던가. 유스티니아누스의 경우에는 이 욕구가 고토 수복 전쟁으로 발현했다.

붕괴한 서로마 땅을 회복하고 옛 로마의 황제가 된다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이후 아무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그가 이룬다면?

아무도 유스티니아누스를 벼락출세한 소작농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로마의 영광을 회복한, 누구보다도 위대한 황제를 증명한 셈이니까.


니카 반란을 겪으며 최소 폐위 최대 시해당할 뻔한 경험을 겪은 후로는 더더욱 이런 갈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거기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을 일종의 '선택받은 자' 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는 재건한 하기아 소피아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게 이런 위업을 이룰 자격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솔로몬이여, 내 그대를 능가하였다!"

이렇듯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에게 어떠한 사명, 소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역대 황제을 능가할 업적과 치적을 이룰 자격을, 다름 아닌 '신'이 부여했다고.

말마따나, 타우레시움의 소작농집 아들이 황제가 된 것만 봐도 신이 어떠한 계획 하에 이룬 이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소명을 받은 이상, 불멸의 업적을 남겨야할 의무감 역시 들지 않겠는가?


마침 반달 왕국도 고트왕국도 상황이 엉망이다. 이건 전쟁을 하라는 신의 계시다.


따라서, 필자가 몇 개의 전기와 사료를 보며 결론내린 바는 이러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죽을 때까지 밤낮으로 정력적으로 정무를 돌보고, 원대한 정복을 꿈꿨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자신의 소명을,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을 뿐. 그로서 권위를 세울 수 있다면 더 좋고.

다만 이 목적 의식은 흑사병과 테오도라 사후 다소 약화, 혹은 꺾인 것으로 보인다.


전처럼 전쟁과 대규모 토목공사에 적극적이기보다는 종교와 민심 통합에 중점을 두었으니.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소명 의식은 테오도라에 대한 부채감과 그리움, 남겨진 자의 의무감, 그리고 회한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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