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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줄 모르는 찐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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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야 할 때 끊어야 하는 결단력은 이럴 때 나오지 않았다.


일할 때는 잘만 나오는 게 이럴 때 하필 미동도 안 하는 걸까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가슴 속 미련이 그렇게 만들었겠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남녀관계가 그런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친한 사람 생겨도 괜찮겠다고 자기정당화(?)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서로 말을 나누다 보니 그 친구가 그림에 책과 걷기, 맥주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그림, 맥주와 책은 내 관심분야이기도 하여 많은 말이 오갔다. 남녀를 떠나 같은 관심사가 있으면 말하기 참 좋은 법이고, 몇 년 만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보게 되니 반갑기도 하니 서로 하는 말도 많아졌다.



지난 주, 사무실 조직이 개편되어 대규모 이사를 단행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그 동기는 경리를 보다 내 업무 일부의 후임을 맡게 되었다. 사무실은 이사로 인수인계를 할 상황이 아닌지라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카페에서 만난 그 친구는 커피를 사 주며 고맙다고 했다. 더치를 할까 했지만 내 입장만 내세우는 건 아닌 듯해서 일단은 얻어마시며 노트북 켜고 후다닥 인수인계를 해 주었다. 그 친구가 "빨리 인수인계하자."고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인수인계를 끝내고 헤어지기 전, 그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이제 뭐 해?"


내 대답은 척수반사하듯 바로 튀어나왔다.


"집에 가야지"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볼게, 나중에 보자."


그렇게 그 친구와는 나중에 보기로 했다.



부모님 말고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게 얼마만이려나


오랜만에 들은, 아니 들은 게 처음일지도 모르는 그 말의 메아리가 깊게 울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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