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 - 보드게임 소개
코리아보드게임즈
2023-09-26
만 14세 이상 | 1~4명 | 45분
"주사위를 굴려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자!"
2016년, 독일 에센에서 매년 열리는 전 세계적인 보드게임 축제 <슈필> 박람회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박람회장 문을 열자마자 두 개의 부스에 방문객들이 길게 늘어선 것이다. 하나는 독일 보드게임 퍼블리셔인 쉬버크라프트 페얼락과 미국 보드게임 퍼블리셔 스트롱홀드 게임즈였다. 이 두 개의 긴 줄이 한가지 게임의 영어판과 독일어판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게임이 지금껏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스웨덴의 한 가족 회사가 만든 신작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슈필에서 전 세계 보드게임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프릭스게임즈의 <테라포밍 마스>는 발매와 함께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다. 그 붐은 한국도 비껴가지 않았다. 2017년 8월 <테라포밍 마스>의 한국어판은 예약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한국 보드게임 사상 유례가 없었던 팬 축제, <테라포밍 마스 게이머스 데이>가 개최되었다.
테라포밍 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에서도 카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테라포밍 마스>는 화성 개척을 소재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그렇지만 화성을 개척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게임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은 화성 개척 사업에 뛰어든 다국적 기업의 총수가 되어, 이 사업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꾀해야 한다. 화성 개척 사업의 목표는 화성의 행성 지표인 기온, 산소 농도, 해수량을 일정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게임 내에는 화폐인 메가크레딧을 비롯해 강철, 에너지, 식물, 미생물 등 아주 다양한 자원이 등장한다. 플레이어마다 서로 다른 기업을 경영하게 되는데, 기업마다 특정 자원이나 기술에 특화되어 있어 약점을 강점으로 보완할 수 있다. 게임 내에 굉장히 많은 프로젝트 카드가 있고 연계 효과도 다양해서 게임의 흐름을 아주 짧게 압축하기는 쉽지 않지만, 게임의 기본 구조는 분명하다. 화성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고, 자원을 많이 얻으려면 기업의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하며, 화성 개척에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이 생산력에 영향을 주는 순환식 구조다. 화성 개척이 완료되면 게임이 끝나며, 각 기업이 화성 개척에 기여한 기여도와 사업상의 업적, 그리고 특정 분야에 얼마나 투자했느냐 등을 종합해 점수가 매겨진다.
<테라포밍 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뛰어난 고증과 실감 나는 장치들이다. 과학자인 작가가 10여 년을 설계해 만들어 낸 이 게임에는 화성 개척이라는 주제의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플레이어들이 이윤을 위해 자기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동안 화성 개척 사업이 진보한다는 설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을 잘 묘사했다. 200여 장의 카드 하나하나마다 갖추고 있는 다양한 효과들은 그런 설정들에 충분한 개연성을 부과하며, 그러면서도 게임을 매끄럽게 만들어 준다. 역할 시뮬레이션의 실감과 순수한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모두 완벽하게 끌어낸 게임이기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게이머 사회에서도 이 게임은 ‘또포마’라는 애칭을 얻으며 끊임없이 플레이되었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 주사위들을 가지고 화성을 테라포밍 해 보자.
그런 게임이니만큼 당연히 다양한 확장판과 변형판이 시리즈로 발매되었는데, <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은 그중에서도 가장 최신작이다.
<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은 원작인 <테라포밍 마스>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원작의 게임 구조를 압축하고 주사위를 도입해 신선한 매력을 부가한 것이 게임의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카드 게임에 가까웠던 원작에 주사위라는 무작위 요소가 어울릴지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원작에서 현실 개연성과 게임의 시스템적 묘미를 훌륭하게 섞어놓았듯이, 이 신작의 주사위 요소는 <테라포밍 마스>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어 있다.
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의 기본적인 게임 진행 방법. 굴린 주사위를 기반으로 하여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원은 주사위로 표현되었고, 주사위를 굴려서 그 자원의 종류를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녹색 주사위의 경우 나오는 면에 따라 식물, 미생물 동물 자원 중 하나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사위만 잘 굴리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우선 프로젝트 카드 사용 등 각자의 사업을 통해 기업의 역량을 높일수록 굴릴 수 있는 주사위의 총량도 달라지며, 주사위의 면을 세 개까지 바꾸게 해주는 카드나 주사위의 자원을 선택하게 해주는 카드 등 확률 자체에 개입하는 카드들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주사위가 들어간 만큼 어느 정도 플레이어에게 도박적 선택을 권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카드 한장 한장이 끼치는 영향력으로 보정해 주는 느낌이다. 또 생산을 택한다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세 개만 남기고 버려야 하기 때문에, 낮은 생산력으로 버티며 자원을 모아 뒷일을 도모하기는 어렵고 결국 기업이 확보한 생산력이 중요해진다.
작아진 게임판과 짧아진 게임 시간, 하지만 여전히 화성 테라포밍의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게임 시간도 짧아졌다. 원작과 달리 세 가지 행성 지표 중 두 가지만 끝까지 올리면 게임이 끝나며, 도시를 세우거나 숲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의 개수도 완화되었다. 전반적으로 <테라포밍 마스>와 ‘주사위 게임’을 조화롭게 버무려 놓았는데, 빠른 게임 시간과 플레이어에게 계속 선택을 요구하는 시스템, 주사위라는 요소가 어우러져 게임의 템포 자체가 빨라졌다.
<테라포밍 마스 주사위 게임>은 원작보다 게임 시간도 짧아지고 규칙도 간단해졌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여전히 이것은 <테라포밍 마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르기에, 독특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기존 <테라포밍 마스> 유저에게도,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추천할 만하다. 본격적으로 <테라포밍 마스>를 즐기기에는 게임의 볼륨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가벼운 마음으로 <테라포밍 마스>의 매력을 맛보기에 적절한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