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조 33년(1757년), 조선 -
"내가 금주령을 내린 지 여섯 달이 되었거늘, 호조 좌랑은 어찌하여 술을 빚은 것인가?"
나는 지금 집에서 술을 빚다가 걸려서 잡혀 왔다. 분명 제대로 숨긴 것 같지만 들켜버린 것이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다 전하를 바라본다. 전하께서는 단단히 노하신 것 같다.
"전하, 소인이 마신 것은 술이 아니라 그저 차에 누룩과 설탕(조선 시대에는 설탕을 사탕이라고 했지만 편의상 설탕이라고 했다.)을 넣은..."
이때 직감했다. 망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파직으로 끝났겠지만 변명이랍시고 한 말 때문에 오히려 죽게 생긴 것이다.
"설탕? 술을 빚은 것으로 모자라 거기에 귀한 설탕까지 넣었단 말인가?"
전하께서는 대노하신 것 같다.
"호조 좌랑은 술 한 병에 얼마나 많은 쌀이 들어가는지 아는가? 자네가 마신 술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굶어죽는단 말이다."
죽기 싫어서 간절히 빌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송구하옵니다. 다시는 술을 빚지 않고 마시지도 않을 터이니 부디 저를 귀양을 보내시고 목숨만은..."
"시끄럽다!"
전하의 뜻은 확고했다.
"호조 좌랑 이병우는 금주령이 내려진 해에 술을 빚었고, 귀한 설탕을 술 빚는데 썼으며, 또한 갖지 않은 말로 나를 속이려 하였으니 그 죄는 중하다. 그러니 죄인 이병우를 참형에 처하라!"
"전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시옵소서!"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저잣거리에서, 자루가 긴 칼을 든 망나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나를 꿇어앉히고, 망나니가 칼을 들고 휘두를 준비를 하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사람과 옛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 어렵다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인, 이제 일곱 살이 된 아들과 다섯 살이 된 딸... 목에 무언가가 닿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눈앞이 어두워지고 정신이 흐려진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흐릿하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시장님?"
흐릿하게 들리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분명 처음 듣는 언어인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시장? 누구를 말하는 거지?
"시장님!!!"
눈을 뜨니 나이가 서른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그 사람은 두루마기와 비슷하나 길이가 짧고 품이 작으며 고름 대신 단추가 있고 양모로 만들어져 두꺼운 옷을 걸치고, 도포 위가 아닌 도포 안에 쾌자를 입었으며, 두껍고 단단하며 둥글고 갓양이 작은 검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얼굴은 굴곡이 많아서 이질적이고, 눈은 푸른색이었다. 옆에는 나이가 서른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여자가 보이는데, 분을 진하게 칠하고 낯선 옷을 입었으며, 역시 얼굴은 이질적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두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쓰러지셔서 놀랐습니다."
이곳은 실내인데, 꽤 넓은 공간이었다. 나무로 만든 탁자와 푹신한 의자가 있으며, 구석에는 줄무늬와 별이 그려진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옆 탁자에는 종이가 끼워진 기계가 있는데, 글자를 적다가 만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 주변에 붓이나 먹은 보이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이곳은 거의 모든 건물들이 위가 평평해서 지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의 건물은 돌이나 석회로 만들어져 있으며, 낮은 건물도 4~5층은 되었고 20층이 넘어가는 건물도 많았다. 길은 넓고 굽은 곳 없이 반듯하며, 길에는 말이 끄는 수레, 그리고 어떤 사람이나 말도 끌거나 밀지 않고 달리는 쇠수레가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얼굴이 아주 흰 사람, 약간 흰 사람, 약간 검은 사람, 아주 검은 사람이 있으며, 머리가 검은 사람, 갈색인 사람, 노란 사람, 붉은 사람이 있었다. 주변에는 팔각형의 납작한 모자를 쓰고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 다발을 파는 소년, 둥글고 단단하며 두꺼운 모자를 쓴 사람, 끈 달린 바지를 입은 사람이 보이는, 그야말로 이곳은 지상이 아닌 별천지와 같았다.
"여기가 어디인가?"
"예?"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네."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 남자 쪽에서 마지못해 답하였다. 내가 왜 그것을 물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뉴욕... 맨해튼입니다."
처음 듣는 지명이 들렸다. 조선 팔도는 물론 청이나 왜에도 없는 곳이 확실하다. 여기는 서양인가?
내 의자 옆에는 봇짐과 함의 중간 정도 되어 보이며 한 손으로 들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린 것이 있었다. 열어 보니 안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있었다. 이것은 글자도 처음으로 보는 것이고 생소한 단어가 많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나는 이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1921년도 예산안, 지하철 요금 인하, 뉴욕항 확장 계획안... 글의 중간중간에는 '미국'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 줄에 항상 들어가는 글자는 '뉴욕 시장 존 프랜시스 하일런(1919년~1925년까지 뉴욕 시장을 역임한 실존인물)'. '존 프랜시스 하일런'은 내 이름인 모양이다.
"시장님, 요청하신 오늘 자 신문입니다."
글자가 빼곡히 적히고 그림도 들어간 종이 다발을 받았다. 맨 위에 적힌 글자는 '뉴욕 타임스'. 신문의 이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보(조선 시대의 신문. 조보는 왕족이나 관료들만 볼 수 있었다.)와 비슷한데, 여기서는 조보가 거의 모든 백성들에게 널리 퍼진 모양이다. 신문 내용은 첫줄부터 충격적이었다.
'내일부터 금주법 시행'
나는 잘못 봤나 싶어서 세 번이나 다시 봤지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아랫줄의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내일부터 미국 전역에서 모든 주류의 제조, 판매가 금지될 예정이다.'
"여기서도 술을 못 마신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는 양식이 풍족해서 가난한 사람도 고기를 먹을 정도라 쌀이 부족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