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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이비어 - 11화 : 그리고 소년은 결심한다. (4)

세호가 정신이 들었을 때 그의 시야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불그스름하게 노을 진 하늘이었다.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고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별관 건물을 보자마자 방금 자신이 겪었던 그 끔찍한 사건을 떠올렸다.

 

일상이라는 건 이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을까. 그는 생각했다.

 

, 일어났다.”

 

그때, 옆에서 무감정한 소녀, 방금까지 자신을 도와 학교에 침입한 인트루더 무리와 싸우는 데 도움을 준 소녀, 나래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 그래....... 이제 다 끝났어?”

 

은발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세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순간,

 

박세호!!”

 

민지가 무척이나 다급하게 세호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분명 유인원 괴물에게 유린당했을 텐데 그녀에겐 작은 타박상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김민지? 너 괜찮은 거냐?”

 

네 걱정이나 해. 그렇게 한꺼번에 이형력을 소모하다니.......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녀는 곧바로 세호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고,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세호는 살짝 억울했다. 도와주고 욕먹는다는 건 이런 걸까. 민지는 세호의 마음을 아는 건지 어떤 건지 헛기침을 한 번 내뱉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도와줘서 고마워.”

 

병 주고 약 주고 인 걸까. 그래도 민지의 감사에 가식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기에 세호의 억울한 마음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갔어?”

 

, 학교 선생님들도 네 안전은 확인했고 네가 깨어나면 우리가 귀가시키겠다고 말했어.”

 

그래, 더 이상 피해자는 없는 건가...’

 

세호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래와 눈이 마주치자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민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맞다, 김민지. 나래 녀석, 정말로 격리하는 건.......”

 

그건 이제 괜찮을 거야.”

 

또 한 명의 목소리가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자, 세 사람은 고개를 운동장 쪽으로 돌렸다. 검은 제복을 입은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은 비교적 마른 체형이었고 여유만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포니테일 머리의 여성이 어느 틈에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민지나 나래보다는 훨씬 성숙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고 쾌활한 분위기를 잔뜩 내뿜고 있었다.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해야겠지. 이 몸은 리틀 나이츠 팀의 요원 조세리! 우리 이걸로 두 번째 만나는 거네?”

 

세리가 방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세호는 이틀 전 샛별 상가에서 민지와 함께 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리틀 나이츠의 요원, 선우현이라고 한다. 우리 민지를 도와줘서 고맙다.”

 

, 그건 어쩌다 보니까....... 그보다 괜찮다니요?”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를 만났거든. 그리고 그 사람한테서 받은 게 이거고.”

 

현은 세호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짧은 동영상이 찍혀 있었다. 비록 다급하게 찍은 것인지 다소 흔들렸지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조류를 연상시키는 날개를 팔 대신 휘두르는 조인(鳥人)형 괴물에 맞서고 있는 은발 소녀의 모습을. 분명 나래의 모습임이 틀림없었다.

 

이걸 상부에 보냈으니 그 애가 무고하다는 게 밝혀질 거고, 처음에 잘못 보고한 그 세이비어 요원들은 징계 처리를 받겠지. 엄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붙인 꼴이니까.”

 

현이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잇자 세호는 현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래는 이제 자유인가요?”

 

일단은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는 보호시설에서 대기해야겠지.”

 

말을 마친 청년은 나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현이 한 이야기를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현의 시선을 느낀 건지 그쪽으로 시선을 맞췄다.

 

나래라고 했지? 우리 때문에 네가 고생했구나. 다른 세이비어들을 대표해서 사과할게, 정말 미안하다.”

 

청년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자, 뒤를 이어 세리와 민지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괜찮다.”

 

나래의 목소리가 들리자 현을 비롯한 3인방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민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기 정리도 끝났고. 이만 철수해야겠네요.”

 

그래, 돌아갈 때도 내가 운전할게요?”

 

아니, 절대 하지마.”

 

세리의 말에 반응한 것은 현이었다. 방금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에이~ 아저씨 왜요? 제가 운전하니까 빨리 왔잖아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인마! 운전 두 번 했다간 아저씨 심장마비 걸려!”

 

현은 여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잠시만요.”

 

민지 일행의 등 뒤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고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세호가 서 있었다.

 

박세호?”

 

저기...... 그 세이비어라는 거,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호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세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는지 세 사람 모두 놀란 눈빛이었다.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세호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좋아, 나는 찬성!”

 

맨 먼저 반응한 것은 세리였다. 그녀는 예의 활기찬 표정을 되찾으며 세호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맞잡고 힘찬 기세로 흔들었다. 그때, 현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세리야, 잠깐만.”

 

세리가 얼른 현을 위한 자리를 터주자 현이 세호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는 살짝 진지해 보였다.

 

세호, 네가 우리 팀에 들어와 준다면 우리는 환영이야. 특히 민지는 네가 다니는 학교로 간다는 말을 듣고 엄청 기대했으니까.”

 

현의 말을 들은 민지는 며칠 전 세호를 영입한다는 생각에 평소답지 않게 들떴었던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웠는지 붉어진 얼굴을 푹 숙였다. 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 어머니도 그러하셨고 나를 비롯한 다른 세이비어들도 마찬가지로 인트루더와 싸운다는 건 즉 목숨을 건 일이야.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말 세이비어가 되려는 거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진 평범하게 살 수 있잖아.”

 

현의 질문에 세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다. 그의 말대로 인트루더와의 싸움은 목숨을 건 사투. 방금 별관에서 민지 역시 잠깐의 틈 때문에 유인원 괴물에게 유린당했었다. 만일 그때 세호가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 현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요, 솔직히 인트루더 같은 거랑 싸우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게임이나 하는 게 더 좋죠.”

 

세호 역시 자신 나름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괴물 새끼들이 멋대로 설치게 두면 안 되잖아요.”

 

그는 폐허가 된 자신의 학교 별관 건물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만일 제가 나서지 않아서 제 친구나 가족,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다면 분명 후회할 테고요. 전 그런 마음 가지기 싫거든요.”

 

민지는 말없이 세호를 바라보았다. 어제의 모습과는 달리 퉁명스러워 보였지만 알게 모르게 책임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현 역시 할 말이 없어졌는지 세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세호의 대답엔 가식이나 속물적인 감정 같은 것 없이 진지해 보였다. 잠깐이었지만 그에게서 서가인의 모습이 겹쳐진 건 착각이었을까?

 

현의 표정이 점점 풀리더니 평소의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손뼉으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이야, 이놈 봐라? 아저씨가 좀 정색했다고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냐? 좋아, 나중에 저녁 쯤에 너희 집으로 갈게. 같이 사는 사람들한테 허가는 받아야지.”

 

사촌 누나랑 같이 살고 있어요. 이따가 지도 보내드릴게요.”

 

그래, 부탁한다.”

 

말을 마친 현이 빙긋 웃자, 뒤에서 다시 세리가 잽싸게 다가와 세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아! 환영해, 후배님! 아까도 소개했지만, 이 몸은 조세리! 앞으로도 잘 부탁... 으갹.”

 

언니, 아직 허가받은 것도 아니거든?”

 

민지가 세리의 옷깃을 당기며 뒤로 끌고 가면서 세리에게 딴지를 걸었지만 어째선지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세호는 쓴웃음을 짓다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인 채 앞만을 주시하고 있던 은발 소녀, 나래에게 다가갔다.

 

너도 쫓기느라 고생 많았다.”

 

나래는 말없이 세호를 바라보았다. 세호의 말대로 인트루더와 싸워 사람들을 구해주고도 누명을 써 요 며칠간 다른 세이비어들에게 추격의 대상이 되어 숨어지내야 했었다.

 

이제 숨어서 살 필요 없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세호, 함께 하겠다.”

 

나랑? 설마 너도 세이비어를?”

 

나래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너까지 억지로 할 필요 없잖아.”

 

날 믿어준 거, 세호가 처음이다.”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나래의 눈빛에 허풍이나 거짓은 없어 보였다. 살인미수 혐의를 뒤집어썼었던 그녀는 요 며칠 동안 단 한 명의 아군 없이 다른 세이비어들에게 공격을 피해 이곳저곳을 도망 다녀야 했다. 자신의 무고를 밝히고 싶어도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대한 세이비어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제압하고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배고픔이나 추위는 차라리 괜찮았지만 누명에 의한 인간들의 적의는 전혀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다름 아닌 세호였다. 자신에게 돈을 보태주고, 인트루더에게 붙잡힌 자신을 구해주고, 자신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준 그에게, 그녀는 은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 오늘 완전 월척이네. 새 멤버가 둘씩이나! 아저씨, 쟤도 우리 팀에 넣을 수 있죠?”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세리가 뛸 듯이 기뻐하며 현에게 말했다.

 

, 세호도 스카웃해서 팀으로 넣는 거니까 이 애도 잘 얘기하면 되겠지. 안 그러냐, 민지야?”

 

현이 민지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민지의 대답은 들리질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심각한 눈빛으로 나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민지야, 듣고 있어?”

 

? , . 괜찮을 것 같네요.”

 

현이 재차 물어보자 민지는 그제야 현의 질문을 들었는지 황급히 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일단 본부로 복귀해야겠구만. 세호야, 나중에 찾아갈게.”

 

현은 그 말을 끝으로 민지, 세리, 그리고 나래와 함께 학교를 떠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호는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홀로 중얼거렸다.

 

우리 누나 설득은 어떻게 하지......”

 

 

*

 

 

어느 닭갈비 집. 누군가는 가족과의 외식 때문에, 누군가는 회식 때문에 떠들썩한 이 식당의 한 테이블에선 무거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세이비어가 되고 싶다는 얘기야?”

 

, ......”

 

수민은 얼음장처럼 굳은 표정을 한 채 깊은 한숨을 쉬자 세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건 세호의 옆에 앉은 안경잡이 청년 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상은 했지만 완전히 가시방석이구만.’

 

현은 나래를 보호시설에 보낸 직후 바로 세호네 집에 찾아가 그의 누나, 수민에게 동생분 덕분에 우리 요원이 목숨을 건졌으니 밥이라도 사주려고 한다.’ 는 명분으로 수민을 근처 닭갈비 집에 불렀고, 세호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이전에 학교에서 현에게 말했던 그대로 수민에게 세이비어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고, 분위기는 지금과 같이 얼음장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웬만큼 사이가 나쁘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자신의 가족이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가는 걸 좋다고 할까? 수민 역시 오래전부터 세호와 함께 살았던 몸. 그녀에게 있어 세호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세이비어가 되면 국가에서 돈도 준다고 들었는데 만약 그 돈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난 절대 허락 안 할 거야.”

 

그녀가 무겁게 내뱉으며 소주잔을 홀짝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애가 타는 건 수민일 것이다. 그녀는 동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 자리에서 몇 번이고도 만류했지만 끝내 세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래, 알아. 이젠 우리 동네도 안전하지 않다는 거잖아.”

 

수민이 세호의 말을 가로챘다.

 

같이 살면서 부탁 같은 건 한 번도 안 하더니, 첫 부탁이 이거라니.......’

 

수민의 기억하는 어렸을 적 세호는 절대 다른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전혀 얘기하지 않았었다. 세호의 엄마, 가인이 행방불명되어 사실상 혼자가 되어 친척 집에 얹혀살게 된 것 때문에 타인의 눈치를 보는 거였다.

 

수민이 자취를 시작했을 때 세호를 데려간 것도 사촌 동생 세호의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나이 차가 많이 안 나는 자신이라면 세호도 편하게 대할 테니까. 다행히 수민의 바람대로 세호는 예전보다 눈치를 덜 보게 되었고 대화도 자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민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미안함을 품고 있었던 걸까?

 

그래, 세호 네가 그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는데 내가 뭐라 말해도 안 듣겠지.”

 

정말 미안하다, 누나.”

 

, 왜 사과해? 듣자 하니까 요즘 뉴스에서 고등학생쯤 되는 능력자도 관리국에 넣는다 어쩐다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일찍 해버리는 게 낫지.”

 

수민은 애써 대범한 표정을 지으며 앞접시에 담긴 닭갈비를 집어 먹었다.

 

솔직히 누나가 이런 말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해봐. 대신 다치지 말고.”

 

그래, 알고 있어......”

 

세호는 그제야 긴장감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절대 들어주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그 누나가 고집을 꺾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 . 그리고 선우현 씨라고 했죠?”

 

수민이 빈 소주잔을 현에게 내밀며 말했다. 현은 점점 취기가 올라가는 수민의 모습을 보고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 맞습니다.”

 

우리 동생이 애가 좀 싸가지가 없고 그래도 착한 애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아시죠?”

 

, ...... 물론입죠. 제가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현이 수민의 당부에 대답하면서 그녀의 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그녀는 소주잔을 한 번에 다 털어넣었다. 수민의 얼굴을 보니 이미 잘 익은 대추 마냥 붉어진 것 같았다.

 

만에 하나 우리 세호한테 뭐 상처라도 났다? 그럼 아저씨는 기냥......”

 

수민은 접시에 담긴 풋고추를 집어 들고 그 자리에서 반으로 쪼개버리며 시시덕 거렸다.

 

나한테 뒤지는 거야아... 아라써?”

 

누나, 좀 취한 거 같은데... 오늘은 그만 먹는 게 어때......?”

 

갠차나, 이 눔 쉬꺄. 누나가 을마나 술 잘하는지 모르지? 딱 봐.”

 

점점 혀가 꼬부라지는 수민의 모습을 지켜보는 세호와 현은 앞으로 있을 일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으으에에에.......”

 

현이 타고 온 승합차의 뒷좌석에서 수민의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려왔다. 20분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소주와 닭갈비를 먹어 치우던 수민은 결국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고 세호와 현이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운 것이었다.

 

으흐흐흐어어... 세호 이눔 새끼야... 가지 말라고...”

 

그때 뒷좌석에서 수민의 잠꼬대 소리가 훈훈한 분위기를 확 깨버리자 조수석에 있던 세호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걱정 마, 어디 안 가.”

 

역시 잠꼬대였는지 수민은 대답 대신 코 고는 소리로 응수했고 그 모습이 웃겼는지 현이 킥킥거렸다.

 

죄송해요, 아저씨.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시고...”

 

먼저 입을 연 건 세호였다. 그는 수민이 곯아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신 것도,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 역시 조용히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 솔직히 예상한 일이었다. 그것보다 말이야.”

 

운전을 하던 현의 어조가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니까 서가인 요원님의 아들이라고 했었지?”

 

... 맞는데요?”

 

세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남자도 과거 관리국의 연구원들과 똑같은 유형의 인간인 걸까? 하지만 세호의 예상은 현이 내뱉는 말에 의해 깨져버렸다.

 

, 네가 예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굳이 물어보진 않을 거야. 옛날 일 후벼파는 것보다 거지 같은 게 또 있겠냐.”

 

세호가 침묵하자 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도 그렇고 다른 팀원들도 그렇고, 절대 니가 생각하는 만큼 기대하고 그러진 않아. 너희 엄마가 영웅이었건, 잠재력이 뛰어나건 말이야너는 그냥, 부담 갖지 말고 니 역할을 하면 돼.”

 

진지하면서도 따뜻한 격려가 되는 말. 세호는 어째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의 배경 같은 걸 신경 쓰지 않고 대하는 사람은 지금껏 수민과 자신의 두 친구, 그리고 담임선생인 은영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주목받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 건 어떻게 숨기진 못했다.

 

현과 세호 남매를 태운 차가 세호 남매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자 세호와 현은 자리에서 내려 뒷좌석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수민을 부축해 집까지 데려가 침대에 눕힌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현은 다시 승합차에 올라타며 넌지시 말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 10시 관리국으로 와라. 주말엔 당직팀 빼고 다 쉬거든. 그때까지 학교에 얘기도 해두고.”

 

, 알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현이 운전하는 승합차가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걸 바라보며 세호는 밤하늘을 보며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인트루더의 침공을 떠올렸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세호가 처음으로 세이비어로서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네, 제가 쓴 소설은 여기까지입니다. 딱 프롤로그 분량까지 썼었지요.

분명 한창 쓸 때는 엄청 머리를 싸매기도 했고 만족하기도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캐릭터 대사나 묘사가 어설퍼서 이불킥할 뻔했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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