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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와 늙은 개의 방랑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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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령을 벗어나는 동안 두 사람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상황이 아니었다. 둘은 질주하듯 말을 몰았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남작 주제에 공작가의 일원을 공격하지는 않을 테지만, 행정관의 태도를 봐서는 그러고도 남을 미친놈의 소굴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나 늙은 팔먼이었다. 그는 남작령의 경계가 되는 산등성이를 꺾자마자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아니, 저놈들이 왜 저런 겁니까요? 초야권 치르는 어린 남편 마냥 눈에 불똥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데.”

 

청년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안장에서 수통을 꺼냈다. 들이키는 건지, 세수를 하는 건지 덜덜 떨어대던 청년이 겨우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하아, 그게 그렇게 궁금하던가? 후우, 두 시간을 죽어라 달려서 나온 질문이 그건가, ?”

 

, 죽어라 쫓아오니까. 왜 날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는지는 알고 싶으니까요.”

 

이것 때문일 것 같더군.”

 

주름이 가득한 팔먼의 눈이 가늘게 찢어진다. 젊은 주인이 내민 것은 어젯밤 과수원지기의 오두막에서 발견했던 문슈가(Moon sugar)가 담긴 작은 자루였다.

 

멍청한 놈들. 이건 자백이구만요. 가만히 있어도 모자를 판에.”

 

정제된 코스카(Kosca)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완벽한 증거는 아니겠지. 문슈가 자체로는 민간에서 쓰이는 약재일 뿐이야.”

 

, 약재로 쓰이고 있었다면 놈들이 저렇게 발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요. , 그럼 농노들이 죽은 것도?”

 

그건 아닌 것 같더군. 그건 치정 싸움이었어.”

 

휘둥그레 눈을 뜬 팔먼을 힐끔 쳐다 본 청년이 터덜터덜 말을 몰아 선두에 섰다. 잠시 머리를 굴린 늙은 팔먼이 말을 이어붙였다.

 

아니, 그럼 네 명이 죽었는데 그게 다 사랑 싸움이란 말입니까요? 귀족도 아니고 농노 주제에?”

 

농노는 사랑 못하라는 법 있나?”

 

... 그건 아니지만서도, 아니 대체 아낙네가 얼마나 이쁘길래 젊은 노예들이 지들끼리 목숨을 걸고 싸워댄단 말입니까? 창관도 없는 동네던데.”

 

. 농노가 아니니까 그렇지.”

 

??”

 

“남작의 서기관 톰슨 기억나?”

 

... . 좀 재수없고 얍실하게 생긴 녀석 말씀입죠?”

 

그래. 그 놈. 하체가 부실했나봐. 정부가 얼마나 굶주렸으면 농노와 뒹굴 생각을 했겠어? 프흐흐.”

 

...?”

 

아주 더러운 영지야. 주인부터 농노들까지 하나같이 역겨운 놈들이더군. , 상관없나. 어차피 내것도 아닌걸.”

 

눈동자가 왕방울만 해진 팔먼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청년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청년의 어깨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

 

고갯길을 탄 지, 어느덧 한 시간 째.

 

팔먼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던 질문을 또 꺼냈다. 이미 열 번은 족히 넘었다.

 

아니, 그러니까, 레이디 쟌... 그 서기관의 정부가 농노랑 붙어먹고 있었단 말씀입니까요? 그걸 눈치챈 서기관은 농노를 죽인거고? 정숙하게 생겨가지고 완전 암캐였구만!”

 

나이 든 사람들의 정조관념이랄까.

 

늙은 팔먼의 얼굴이 흥분으로 빨개져 있다.

 

레이디 쟌을 처음 봤을 때 그가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배신감도 꽤 컸을 터다.

 

에헤이, 암캐라니! 팔먼, 표현이 영 고상하지 못하군. 내가 기사도 책 좀 읽으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아이고, 썩은 생선들 눈까리만 후비다 기사서임을 받았지 않습니까요. 그 미친 생선 놈들 사이에서 20년을 같이 썩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요.”

 

팔먼이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머쓱하게 대꾸했다.

 

표정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필부에 가까웠다.


이 어리숙하게 보이는 늙은이가 악명 높은 몬트델 해군의 [검은 해일]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이제 세상에 단 한 명. 청년 뿐이었다. 그의 전 주인인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전역한지 벌써 10년이 넘었을텐데?”

 

첫 왕의 달에 전대 주인어른께 서임을 받았으니 작은 주인어른을 섬긴 지 이제 막 6년 지났습죠.”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내게 남겨진 것은 이 늙은 전직 해병출신의 기사 하나 뿐이다.

 

아마 처음부터 그 말투를 지적했을 테니 자넨 지난 6년 내내 내 말을 무시한 거군.”

 

그렇습니까요? 뭐 천성이니 그런 가보다 하고 넘어가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흐흐.”

 

넉살 좋은 미소에 청년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남작령과 백작령을 잇는 킬라니 산맥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작은 횃불 하나를 길동무 삼아 둘은 천천히 고갯길을 걸었다.

 

전대 주인어른은 참 좋은 분이셨는데 말이죠.”

 

그만하게.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뒤집혀지네.”

 

팔먼은 헛기침을 하며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 청년이 전대 주인어른, 공작님의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 실수였다.

 

다행히 청년의 표정은 그렇게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팔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갯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에서 팔먼이 제안을 했다.

 

여기서 노숙을 해야할 듯 싶습니다만.”

 

킬라니 산맥의 중심부는 꽤 위험한 지역이다. 제 아무리 팔먼이 백전노장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늦은 밤에 단 둘이 킬라니 산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자살이나 다를 바 없는 선택이다.

 

청년도 지쳐 있었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나는 장작이나 좀 구해오겠네.”

 

저는 요깃거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알지? 나는 토끼가 좋아.”

 

준비하겠습니다요.”

 

청년이 입맛을 다시는 제스쳐를 취했다.

 

늙은 기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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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으로 쓰다보니 지명이나 설정에 구멍이 많을 겁니다. 지적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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