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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이비어(The Savior) - 2화 : 귀신을 보았다 (2)

지루한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세호와 두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지금 성훈과 현모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다 왔다. 우리 먼저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


“그래, 내일 보자.”


성훈과 현모는 세호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성훈과 현모를 비롯해 하차할 사람들이 다 내리자 버스의 문이 닫혔다.


신호등의 신호가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바뀔 때 세호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세호는 진동을 일으키던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어, 세호야. 지금 학교 마쳤어?>


성숙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의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세호에게 들려왔다. 세호가 대답했다.


“그래, 수민이 누나. 무슨 일인데?”


<그래? 오늘 너랑 시장이나 좀 보려고 했었는데 오늘 좀 늦게 마칠 것 같거든. 거실 탁자에 돈 있으니까 그거로 시장 좀 봐줄래?>


세호의 사촌 누나 수민은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업무가 끝난 그녀는 종종 샛별상가의 마트에서 시장을 보며 가끔 세호를 불러 같이 장을 보기도 한다. 물론 오늘같이 수민이 부득이하게 늦게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시장? 알았어. 나도 곧 집에 다 왔걸랑.”


<그래, 고등어조림 해서 먹자.>


“부엌에 손댈 생각 하지 마. 내가 알아서 만들 테니까.”


세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호의 누나 수민은 자취를 시작한 지 제법 된 주제에 요리실력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세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 수민이 직접 만들어 준 그 맛없는 해물파전을. 맛이라곤 밀가루 냄새만 풍기는 그 해물파전을.


수민의 맛없는 요리 덕분에 세호는 직접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도 요리는 세호의 담당 업무가 되었다.


<크윽... 아, 아무튼 부탁해. 그렇지, 장 보고 남은 돈으로 떡볶이도 좀 사 올래?>


수민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버스에서 세호가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내용의 안내 방송이 들렸다. 세호는 자기가 앉은 좌석 옆에 있는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버스는 곧바로 정류장을 앞에 두고 멈췄다.


세호는 곧바로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가 도어락의 잠금을 풀고 집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세호를 반기는 것은 고요한 침묵 뿐. 그도 그럴 것이 이 아파트에 사는 건 오직 세호와 수민, 둘 뿐이기 때문이었다. 세호는 곧바로 거실로 들어서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은 뒤 냉장고를 열어다 보았다.


‘김치 있고, 마늘 있고, 고춧가루까지 있으니까........ 무하고 파랑 고등어 사고, 아, 계란도 사야겠다.’


역시 집안의 가사를 책임지는 세호답게 그의 머릿속엔 오늘 저녁 메뉴에 무엇이 필요한지 훤하게 보였다.


세호는 탁자에 놓인 만원 짜리 지폐 4장을 챙겨 평소에 자주 가는 상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점원의 인사를 들으며 세호가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물건을 잔뜩 담은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장도 다 봤겠다, 이제 세호가 할 일은 집에 들어가서 오늘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 뿐. 세호는 지하의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나왔다. 상가 1층의 분식집에서 떡볶이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다.


「장 보고 남은 돈으로 떡볶이도 사 올래?」


세호는 수민의 말을 떠올리면서 지갑의 돈을 확인해보았다. 고등어조림의 재료와 계란을 사고도 제법 돈이 남아있었다.


세호는 피식 웃으면서 분식점의 문을 열며 말했다.


“저기요, 떡볶이 2인분만 싸주세요.”


“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점원은 세호에게 돈을 받고 곧바로 능숙한 솜씨로 볶음팬의 떡볶이를 휘젓기 시작했다. 세호는 창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 때, 가게의 문이 다시 열렸고 한 소녀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점원의 인사 소리가 들리자 떡볶이를 기다리던 세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출입문 쪽으로 갔다.


세호보다 두 살은 어려보이는 외모의 여자아이가 곳곳에 때가 타고 너덜너덜해진 카키색 파카를 입은 채 분식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외국인이었는지 허리까지 닿는 은빛 머리칼에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비록 잔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형 같았다. 하지만 곳곳에 때가 타고 거의 누더기가 된 카키색 파카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나 노숙자 같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잖게 있었다.


“주문....... 하시겠어요?”


점원이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묻자, 은발머리 소녀는 계산대에 있는 메뉴판을 유심히 보다가 일반 떡볶이를 가리키며 짧고 간략하게 말했다.


“이거.”


“네, 떡볶이 1인분이죠. 계산 도와드릴게요.”


소녀는 점원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바로 파카의 양쪽 주머니 속을 뒤적이다가 100원짜리 동전과 10원짜리 동전이 잔뜩 섞인 동전 꾸러미를 꺼내 계산대에 올려주었다. 그 기상천외한 모습에 주변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점원은 얼떨떨하면서도 성실한 자세로 소녀가 준 동전 꾸러미의 동전을 일일이 계산해 주고는 소녀에게 대답했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500원 모자라는데요.......”


“아.”


점원의 선고 앞에 소녀는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도 찍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주변에서 그녀를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비웃는 가운데, 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다가왔다.


“얼마 모자라다고요?”


“네? 아, 500원이요...”


세호는 지갑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은 오지랖을 부리는 그를 잠깐 처다보았지만, 자신이 상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세호의 동전을 받았다.


“네, 조금 시간 걸릴 테니까 앉아서 기다리세요.”


세호는 소녀를 데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세호와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세호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소녀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뭘.”


세호는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세호는 면식도 없는 여자아이에게 돈을 보태준 것이었을까? 500원 동전 하나가 없어서 떡볶이를 눈앞에서 포기해야하는 소녀의 모습이 그렇게도 안쓰러워 보인 것이었을까?


“17번 손님, 떡볶이 2인분 나왔습니다.”


점원이 복창하자 세호는 자리에 일어나서 떡볶이가 포장된 봉지를 받아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이제 네 것도 나오겠다.”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호의 말대로 곧 점원이 떡볶이를 주문한 사람을 찾을 때였다.


“18번 손님, 떡볶이 1인분........”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구역에서 인트루더가 출현했습니다. 지금 방송을 들으신 분들은 신속히 가까운 지하 대피소로 피신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현재 구역에서.......>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자 목소리의 대피 방송이 울려 퍼졌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대피 방송에 세호는 천장에 안내 방송을 전달하는 스피커에 시선을 옮겼다.


지금껏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만 나오던 사건이 그에게 직접 닥쳐왔다. 피난 안내 방송과 함께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무질서하게 앞 다투어 상가 지하에 있는 대피소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세호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대피소로 들어가 몸을 숨겨야 한다. 세호의 기억대로라면 이 상가 지하 2층에 지하 대피소가 존재한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야, 얼른 나가자.”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떡볶이를 받아 온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은발 머리 소녀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멍한 얼굴을 한 채 세호를 바라보았다.


“뭐해? 시간 없어!”


그는 소녀의 손을 억지로 붙잡아 끌고 나가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세호가 헐레벌떡 발걸음을 옮겨 지하 1층에 도착한 그 때 강풍이 불어 닥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심연이 형성되는 소리임이 틀림없다!


“이런 미친...!”


세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사람들에 떠밀리며 대피소로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쿠아아아아아악!!


이 세상 생물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괴성이 상가에 가득 울려 퍼졌다.


*


“여러분, 긴급 상황이에요. 다들 주목해줘요.”


청색 재킷을 입은 장발 머리 여성이 사무실로 8인용 직사각형 테이블을 둘러싼 검은 제복 차림의 3인조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언뜻 보기엔 침착해 보였으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었고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면서 말을 이었다.


“현 시간부로 12구역에 인트루더의 반응이 나타났어요. 지금 경비대가 상대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태구요.”


“경혜 언니, 12구역의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했나요?”


테이블을 둘러싼 일행 중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짓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지금 경비대와 구조대원들이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있지만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도 많아, 서둘러야 해.”


“경혜 씨, 우리 말고 투입하는 팀도 있어?”


단발머리 소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이 물었다.


“아뇨,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서 저희한테 맡기는 모양이에요. 해당 구역에 고립된 민간인들도 있을 테니까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인트루더 제거 작전 및 민간인 구조 작전을 수행하겠습니다.”


단발머리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3인방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혜 언니, 저희만 믿으세요! 후딱 해치우고 올게요!”


3인방 중 한 명인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소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먼저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잠깐, 세리 언니! 혼자 앞서가면 어떡해?”


이번에 뒤따라간 건 차분한 분위기의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서 장신의 안경잡이 청년이 사무실을 나섰다.


“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알겠죠?”


경혜도 복도로 나와 급히 작전에 투입하는 일행에게 걱정 어린 어조로 외쳤다. 그러자 일행 중 단발머리 소녀가 고개를 경혜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네, 걱정마세요. 언니.”


“그래, 경혜 씨. 우리 애들은 나한테 맡겨두라고.”


단발머리 소녀에 이어서 안경잡이 청년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혜는 자신만만한 요원들의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한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단발머리 소녀를 비롯한 3명을 반긴 것은 가지런히 주차된 은백색 차량이었다. 그 차량의 문짝에는 국제 마나 관리국의 엠블렘, X자로 교차 된 두 자루의 검이 겹쳐진 지구 문양이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자그마하게 ‘국제 마나 관리국 한국지부’라고 쓰여 있는 걸 제외하면 평범한 승합차 그 자체였다.


단발머리 소녀 일행은 곧바로 차량에 올라탔고 운전석에 앉은 안경잡이 청년이 시동을 걸었다. 그들은 태운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아저씨, 차라리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내 이형력이면 까짓거 5분 만에 도착할 텐데.”

포니 테일 소녀 세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세리 언니, 이제 두 번째 임무야. 가뜩이나 언니는 우리들 중 제일 늦게 힘을 각성했으니까 좀 더 조절하면서 싸울 필요가 있어.”


청년을 대신해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단발머리 소녀가 세리에게 대답해주었다. 세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씁, 어쩔 수 없지.”


“그래, 세리야. 대장님 말 잘 들어야지.”


운전을 하던 청년이 민지의 말을 거들었다. 민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역할을 분담할게요. 내가 인트루더들을 상대하고 있을 동안 세리 언니는 대피소로 들어가지 못한 민간인들을 바깥으로 대피시켜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찾아. 그리고 선우현 선배님은 세리 언니를 도와서 민간인들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호해주세요. 알겠죠?”

“좋아, 식은 죽 먹기지!”


“무리하지 마라, 알겠지?”


세리가 의기양양하게 거수경례로써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고 안경잡이 청년 현도 오른손으로 OK 사인을 그렸다.


“좋아, 곧 있으면 현장에 도착할 거야. 다들 통신기랑 무기 상태 확인해주고, 도착하면 경혜 언니한테 보고할 테니까 다들 준비하고 있어요!”


민지를 비롯한 3인방, 국제 파동 관리국 한국 지부 소속의 세이비어 팀, ‘리틀 나이츠(Little Knights)’를 태운 차량은 12구역, 즉 샛별 상가를 향해 달려갔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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