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마에조노가 인천을 떠난 뒤, 한동안 K리그에서 일본인 선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맥이 끊겼던 일본인 선수 영입이 다시 시작된 것은, 2009년 아시아 쿼터 제도의 시행 이후였습니다.
기존까지는 3명의 외국인 선수만 보유 가능했던 제도에, 아시아 국가 선수 한명을 추가 영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09년 시즌, 3명의 일본인 선수가 K리그에 합류하게 됩니다.
1. 오하시 마사히로
2009년 K리그에서 첫 시즌을 맞이하게 된 강원 FC는 카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미드필더 오하시 마사히로를 영입합니다.
당초 오하시라는 등록명이 고려됐으나, 최종적으로는 선수 본인이 선호하던 마사라는 이름으로 K리그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묘하게도 이후 강원 FC는 똑같이 등록명이 "마사" 인 이시다 마사토시를 영입하게 됩니다.
강원 입단 이전까지 J리그에서 이미 181경기를 뛴 선수였고, 직전 시즌 카와사키에서 주전급으로 뛰며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었습니다.
계약 조건은 1년 계약에 연봉 1억 9천만원.
2009년 시즌 초반 꽤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자원으로 꼽혔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며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일본 선수 특유의 세밀한 패스와 정확한 킥이 인상적인 선수였지만, 피지컬적으로는 아무래도 밀리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종 성적은 리그 20경기 4골 2도움.
결과적으로 강원 FC는 1년 계약이 종료된 후 연봉 대비 활약이 아쉽다는 이유에서 마사와의 재계약을 포기합니다.
그로 인해 공석이 된 아시아 쿼터는 리춘유라는 중국 선수와 계약하며 메우지만 이 선수는 7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더욱 아쉬운 성적에 그쳤습니다.
이후 J리그 2의 미토 홀리호크에서 한 시즌을 뛴 후, 마사는 2011년 시즌 다시 강원에 합류합니다.
2009년에 비해 대폭 삭감된 연봉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이전만 못한 활약을 보이며 리그 4경기 출장에 그친 후 시즌 도중 방출되었습니다.
이후 마사는 당시 JFL 소속이던 마츠모토 야마가 FC에 합류했고, 팀의 J리그 2 승격에 힘을 보탠 뒤 2012년 시즌 후 은퇴했습니다.
강원 FC에서 2번이나 영입했을만큼 패스와 킥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히 좋은 선수였습니다.
일본에서도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며 도쿄 베르디 시절에는 팀내 킥 전담 선수로 활약했었으니까요.
하지만 168cm 65kg이라는 신체조건이, 피지컬적 요소가 중요한 K리그에서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낳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사가 한국에 오게 된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일 것 같네요.
일본에 유학을 왔던 아내와 결혼한 뒤, 아내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뛰고 싶다는 이유로 강원 FC에 합류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요코하마 플뤼겔스 유스 출신으로, 안정환, 유상철과 함께 뛴 인연도 있습니다.
최근 유상철 감독의 별세 이후 과거 선물로 받았던 지갑의 사진을 게시하며 추모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친정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U-10팀 코치로 재직 중입니다.
2. 토다 카즈유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아직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추억일 겁니다.
토다 카즈유키는 바로 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뛰었던 선수입니다.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활약한 후, 필립 트루시에 감독의 눈에 띄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이 나섰던 4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주전으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다만 국가대표 커리어는 이후 취임한 지코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네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토다는 유럽 진출을 모색합니다.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에레디비지에의 ADO 덴 하그 등의 팀에 임대되어 뛰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며 J리그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부상과 기용 포지션에 관한 문제 등으로 인해 2008년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방출되며 무적 선수가 되었습니다.
마침 외국인 선수를 찾고 있던 경남 FC가 토다에게 접근했고, 경남 구단 최초의 아시아 쿼터 선수로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09년 시즌 토다는 전반기에 오른쪽 종아리 부상에 시달리고, 후반기에는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발목이 골절되며 시즌 내내 부상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경남에서 남긴 기록은 리그 6경기 출장이 전부.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패스 능력이 좋은 선수였기에,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외국인 선수 보는 눈이 좋기로 유명한 조광래 감독 또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렸던 선수였기에 더더욱 부상이 아쉽게 느껴지네요.
이후 토다는 J리그 2 더스파구사츠 군마, FC 마츠다 젤비아에서 뛴 후, 2013년 싱가포르 리그 워리어스 FC를 마지막으로 은퇴했습니다.
현재는 해외 축구 해설을 하면서, 동시에 히토츠바시 대학 축구부 감독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3. 오카야마 카즈나리
아마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할 선수 중 가장 독특한 선수가 바로 이 오카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아시아 쿼터를 통해 K리그에서 뛴 자이니치 코리안 선수기 때문입니다.
한국 이름은 강일성.
한국에 오기 전 J리그에서 수많은 옮겨다닌 저니맨이었고, 2008년 베갈타 센다이를 마지막으로 방출된 무적 선수였습니다.
당시 포항 입단을 위해 자신이 직접 DVD를 제작해 홍보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어필을 했고, 입단 테스트를 거쳐 최종 계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카야마는 일본에서도 주로 J리그 2에서 활약한 선수였습니다.
카와사키 프론탈레와 아비스파 후쿠오카, 가시와 레이솔 등의 팀에서 꾸준히 뛰었지만 크게 주목받은 적은 없었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이른바 오카야마 극장이라 불리던 응원에서였습니다.
직접 확성기를 들고 팬들 앞에 나서서 응원을 이끄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수였습니다.
2009년 시즌 도중 합류한 오카야마는 포항에서도 주전급으로 뛴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2010년까지 한시즌 반 동안 리그 13경기에서 1득점.
하지만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포항에서 백업 수비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고, 가끔 최전방 자원으로도 기용되며 제 역할을 해줬습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축구 인생 첫 우승을 함께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오카야마는 콘사도레 삿포로와 나라 클럽을 거쳐 2017년 은퇴했습니다.
2014년에는 세레소 오사카 팬 투어 가이드로 포항을 다시 방문하여 스틸야드에서 팬들과 재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근 별세한 유상철 감독에 대한 추모의 메세지를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오카야마는 관동 축구리그 소속의 VONDS 이치하라 FC 감독으로 재임 중입니다.
사회인 축구 레벨의 팀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프로를 목표로 하는 클럽이라, 언젠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항과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