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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을 멈추는 법

마트에서 생닭 9호를 사와 백숙으로 홀라당 발라먹고 남은 육수를 닭죽을 끓여먹었던 어느 날, 뜨거운 살점을 급체할 기세로 해치워서 그런지 깊은 밤까지 딸꾹질에 시달렸다. 흙먼지가 듬성듬성 끼어있는 더러운 이부자리에 상체만 반쯤 일으켜 물을 마실 때면 놀랜 횡경막이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 마냥 움찔대는데 그럴 때마다 마시던 물이 들어갈 곳을 잘못 골라 기도를 때리느라 매번 사레에 들렸고, 그 딸꾹질을 막으려 숨을 멈춰보지만 사레 들린 물에 자극 받은 기도가 발광하여 숨을 마저 참지 못하고 목 안의 매운듯 아픈 느낌을 내뱉으려 캘록 기침했다. 그런 짓을 십수 분 반복하다보면 목이 갈라지듯이 고통을 호소하며 갈증을 부르짖었고, 그 통증을 해소하랴 물을 마시면 횡경막이 이를 눈치 채고 발작해 반강제로 사레를 들리게 했다. 그리고 또 그걸 멈추려...


깊은 밤이, 깊은 새벽으로 넘어갈 무렵. 나는 횡경막의 광기와 아픔을 외치는 기도, 갈증 사이에서 아리까리 아리송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심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고통받고 있었다. 배와 가슴 사이의 명치는 땡기다 못해 아파오기 시작했고 목은 거친 사포를 한번 슥 문댄 것 마냥 얼얼했다. 이 가증스러운 것들이 발광을 하려들진 않았지만 까딱하면 또 다시 들고 일어날게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던 순간에 횡경막이 나를 도발하듯이 딸꾹하고 한번 벨을 울렸는데, 어찌나 얄밉던지. 이 일을 반드시 해결 해야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A4용지와 택배용 박스 테이프로 대충 도배해 방한도 방풍도 모기도 막지 못하는 옛 문을 손바닥으로 밀어 열었다. 내 아버지보다 더 오랜 세월을 보낸 문은 더러운 한지와 A4 용지가 박스테이프에 의해 재수없게 얽혀져 있음에도 경쾌하게 바람을 밀어냈고, 전통적인 경첩과 나이든 목재가 춤추듯이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게 방의 주인이 문을 열었음을 마당에 알렸다.


나는 아주 오래, 아주 오랜 세월 방을 지켜온 문에 대한 경의도 표하지 않고 기어가듯이 마루로 내려와 빛 바랜 슬리퍼를 찾는다. 조명도 없이 마루에 엉덩이만 걸터 앉아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는 문어의 촉수처럼 발을 흐느적 대며, 그 탓에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흙먼지가 끼이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쓰레빠를 탐색했다. 그러다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에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물체가 걸리자 집게가 제 집을 찾은 것 마냥 슬리퍼를 헤집어 우겨 넣었다.


마루를 떠나 돌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딸꾹질 두 번. 나는 고개를 숙이고 턱을 괸 채 마당을 맴돌며 횡경막을 머릿 속에 그려넣었다. 놈은, 그래, 그 놈은 늦은 봄 철의 도룡뇽 알이 두르고 있는 막처럼 생겼겠지. 원통형으로 탱탱하면서도 미끌미끌하고 투명하지만 주변의 빛을 산란시키는 듯한 막.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상상 속의 횡경막을 마음 속에 그리고 머릿 속에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딸꾹질 한번.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숨을 참은 지 7초도 안돼서 머리 한 가운데 추를 달아놓은 것 마냥 띵 해지고 발을 헛디디며, 조릿대 생울타리 사이로 비춰지는 마을 가로등의 빛이 흐려지기도 하며 선명해졌다. 숨을 다시 쉬려고 하자 딸꾹질 한번. 하지만 나는 당황하기는 커녕 방금 일어났던 그 현상에 관심이 생겨, 또 다시 심호흡을 한 뒤 숨을 참았다. 머리가 어지러워져 헤롱했으며 주변의 빛들이 번쩍이기도 하며 회색 빛처럼 흐려지기도 했으며 눈 코 입 귀 피부로 느꼈던 다섯 감지 감각과는 다른 감각이 머리에 비단을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해괴한... 증상을 즐기던... 중, 하늘에 흐릿한 빛의 산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을 실제로 포착했는지,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를 느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이 증기를 가득 채운 사우나 마냥 짙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나는 하늘에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바라듯이 두 손을 높이 뻗었다. 고개를 치켜들고 입을 벌려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뭉게구름 사이로 새하얀 빛의 줄기가 꽃이 피는 순간을 그리듯이 천천히 뻗었고, 나무 줄기가 갈라지는 것처럼 여러 갈래로 부드럽게 하지만 쫓기는 짐승처럼 포악하고 날렵하게 하늘을 찢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공중 전기의 춤이 하늘을 향해 뻗은 양팔과 함께 내 눈동자의 상에 새겨졌다.


그 춤사위를 머릿 속에서 기억하고 추억하는 잠시 몇 초 뒤에, 고함 치듯 천둥이 울부짖었다. 거센 소나기가 세상을 뒤덮었다. 내겐 어지러움도 빛의 산란도 알송달쏭한 육감도 사라졌다. 그저 눈을 감고 손을 계속 뻗은 상태로, 피부와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빗방울의 자취를,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명인 빗소리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딸꾹질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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