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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축복을 보내며

필자는 금전적인 문제로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괴로운 여름을 여태 보내왔지만 내심 환경을 이롭게 했다고, 뭔가 잘하고 있다는 어리석은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세상은 목숨을 위협하는 자연 재해로 답했다. 당장 작년만 해도 내 고향은 침수되어 가족과 이웃들이 한동안 괴로워했으며, 재산도 잃고 소도 잃었다. 올해도 폭우와 홍수로 고생을 할까 했지만 비가 크게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았을 뿐 결국 가까운 시일 내에 그리고 일상적으로 들이닥칠 재해임을 직감했다.


내리쬐는 땡볕이 더욱 더 뜨거워 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장마철에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도 막을 수 없다. 혹한에 영하 20도가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것 역시 어쩔 수 없고 수도관이 꽁꽁 얼어 파열 하는 것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세상은 점점 인간에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적개심이라는 사막은 인간의 행위에 비롯된 것으로, 나의 조그마한 실천은 한줄기 빗방울조차 되지 못한다. 하지만 말이 실천이지 그저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그저 돈 문제로 쓰지 못할 뿐, 75억의 인류가 늘 그러하듯이 가전제품을 이용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며, 모든 일상 모든 행위가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왜 더 실천하지 않았느냐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내가 노력했든 안 했든 이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거니까.


자연에게 미안해봐야 아무 의미 없다. 자연은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느끼는 바가 없다. 파멸 하는 것은 나다.


남들을 비난해봐야 쓸 때 없다. 나 자신은 이런 자연 파괴적인 일상을 누리지 않고 살 자신이 있는가.


그래도 아직... 해가 떨어진 뒤 늦은 밤 부는 선선한 바람을 추억 할 시간이 있다. 동 트기 전 싸늘하게 이슬 내린 새벽에 감사할 여유가 있다. 올 여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자 내 마음 속 깊은 곳 얕은 연못에서 메기가 기어나와 살아 숨쉬는 매순간마다 기후를 바꾸는 네가 그럴 자격이 없다며, 그저 기만을 부리고 파멸 당할 자신의 운명을 위로하기 위해 앙탈을 부리는 꼴이 역겹다며 비난한다.


상관 없다. 지금도 텃밭과 풀숲 사이로 교미의 노래를 부르는 풀벌레들이 내게 이 여름을 추억하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메기는 뭍에서 괴롭게 펄떡이지만 주둥이를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돈 때문이라지만 자기 멋대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쓰지 않은 게 무엇이 실천이느냐 그 보잘 것 없는 일을 가지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게 아니냐고, 하다못해 길가다 쓰레기를 줍는 것조차 아무 의미가 없는 지경인데 무엇을 자기 맘대로 추억하느냐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맘대로다. 지금도 이렇게 내 인생에서 얼마 안남은 선선한 날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 말을 듣더니 펄떡이던 메기의 몸뚱아리가 그대로 멈췄다. 촉촉했던 아가미가 바싹 메마르고, 미끈했던 피부는 사포처럼 까끌하다. 그저 건조하고 메마른 내 마음 탓인지, 아니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홧병으로 죽어버린건지. 나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메기를 위해 관을 짜주었고 마음 속 연못 곁에 그것을 묻었다. 얕은 연못은 완전히 말라버려 진창조차 남지 못해, 메기는 죽어서도 제 고향에 가지 못했다.


내 이름 석자를 새긴 묘비를 마저 세우고 싸늘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으로 돌아와, 올 여름에 축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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