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입은 여인은 벽에 기대어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리곤 어느 남자가 나오자 말없이 차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 오래 기다리셨을까요?"
패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안경 쓴 남자는 손바닥을 올려 보이며 차에 탔다.
"...아뇨, 별로."
남자가 차에 타자 여자는 운전석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핸들을 잡았다.
차 안에 서먹한 분위기가 흐르자, 입을 연 것은 남자였다.
"혹시, 외계인 같은 걸 믿으시나요?"
그러나 돌아오는 여인의 대답은 좀 차갑고 딱딱했다.
"싸구려 타블로이드 같은 얘긴가요?"
"글쎄요, 따지자면 좀 더 진지한 쪽의 의미겠죠."
남자는 자신의 별로 단정하지 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되돌아온 질문에 답했다.
"저흰 믿음이 아닌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담 긍정도, 부정도 아니란 얘기겠군요?"
"그런 셈입니다."
"업무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요?"
남자는 차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을 내놨다.
"적어도 우리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주는 넓으니까요."
대답을 들은 남자는 고갤 끄덕이며, 여전히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그럼 외계인은 어떨 것 같나요?"
"아니지, 외계인은 어떻게 생겼을 것 같나요?"
"...모르겠군요, 살면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여인의 말에 남자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그렇군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차를 정지시킨 여인은 뒤돌아보며 남자에게 물었다.
"제노포비아가 아니길 빌어요."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차에서 먼저 내렸다.
엘리베이터에 탄 둘의 대화는 남자의 질문에서 시작되길 반복했다. 그리고 여자의 말에서 끝났다.
"박사님이 그렇게 수다스러운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그간 제가 말을 잘 안 했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혹시 거슬리신 건?"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지난 열 달간 묻지 않았다는 게 궁금합니다."
"그리고 굳이 그런 걸 물어보는 게 궁금할 뿐이고요."
여자는 조금 당혹스러운 듯이 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원래는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숨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자, 남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좀 좋아하시나요?"
"아이...입니까?"
여자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간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만, 무슨 의도인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생각해봐야겠군요."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둘은 어느 방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이 방 안에 있는 게, 박사님 연구의 결과란 겁니까?"
여인이 처음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죠. 동시에 제게 당신 같은 사람을 붙여준 이유죠."
"그럼 아까 그 질문들도 전부 연관이 있다는 거군요."
"네, 그렇죠."
남자는 문을 열었다. 여인은 그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섰다.
방은 그녀의 기대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실험실이었다. 컴퓨터 몇 대, 그리고 커다란 유리벽.
유리벽 너머엔 어린 한 소녀가 있었고, 평범한 어린 아이의 방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 아이가, 박사님의 연구 대상인 건가요?"
여인이 팔짱을 끼고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저 아인 제 연구 결과입니다."
"특별할 건 없어보이는데요. 그냥... 잿빛 머리에 빨간 눈을 가진 아이일 뿐입니다."
"무슨 프로젝트인지 제대로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이건 좀 기대 이하라고 할까요..."
여인은 이마에 손을 가져가 머리를 위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분명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죠."
남자는 조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건 외계인의 유전 정보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고요."
"우리가 지적 외게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찾아 헤맨 지난 50년간의 결실이란 얘기죠."
"흠, 전 워프 게이트의 설계도 같은 걸 보냈으리라 생각했는데."
"보기보다 영화를 좋아하시나보군요."
"어디까지나 적절한 예시가 그렇다는 겁니다, 박사님."
"뭐가 되었던, 그들은 자신의 위치와 유전적 정보를 담아서 보내왔어요."
"천만다행으로, 그 정보는 우리에게 받아 들여질 수 있는 형태였죠."
"그리고 그들이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시험관 아기다...란 겁니까?"
"완벽하게 그들을 구현한 건 아니예요. 하지만 완벽하게 우리의 것도 아니었죠."
"초능력이라도 쓸 수 있습니까?"
"아마도."
"엄청나게 특출난 지능을 가진 건?"
"딱히 그러진 않았어요."
"막 엄청 강하다던가?"
"혹시 경호 업무를 하시며 만화책을 자주 읽으셨는지?"
"적어도 저 애가 반쯤 외계인이면 뭐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인은 남자를 보며 팔을 아이 쪽에 뻗었다. 남자는 여인의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답했다.
"어... 클레어, 우리가 문명을 이뤘다고 해서 우리들 개개인이 아주 특출난 뭔가를 가졌던가요?"
"박사님, 저는 그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국가의 납세자로서 1급 기밀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외계 생물 프로젝트..."
"엄밀히는 유전공학이죠."
"그래요, 유전공학 프로젝트요.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이렇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을 시작했다.
"좀 더 지켜볼 문제예요. 아직 어린 애인 걸요. 잠재력이 있다구요."
"여지는 있겠죠, 여지는..."
여인은 덤덤하게 답하며 아이를 바라보다 아이를 향해 다시 팔을 뻗었다.
그러자 아이도 유리 너머에 있을 여인의 손을 향해 손바닥을 댔다.
"혹시 저 아이도 우릴 볼 수 있나요?"
"아뇨."
"...?"
남자의 말에 여인은 유리에서 손을 뗐다. 그녀가 손을 떼자, 아이는 유리에 입김을 불었다.
그리곤 오른손 검지로 천천히 뭔가를 써내렸다.
"...엄마? 지금 농담하는 건가?"
여인은 아이가 쓴 글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이 정도로 성장하고 나서는 위탁 가정에 보낼 생각이었죠."
"물론 그 위탁 가정은 국가에서 엄선한,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되는 만들어진 가족이고요."
"그런데 아이가 당신이 찍힌 사진을 보더니 그러더군요."
"엄마, 라고. 이상하지 않나요? 엄마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텐데도..."
"..."
그의 말에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띄며 화냈다.
"무슨 미친 소릴!"
그녀의 반응에도 남자는 시큰둥했다. 오히려 이전의 모습보다도 더 점잖게 말을 이었다.
"저 아이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아요."
"보편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가정보다는 평범한 가정에 맡기고 싶고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거군요..."
"사소한 욕심이지만."
"아니, 예상은 했습니다. 이런 결과라고 생각지는 못했어도."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알고 있어요, 클레어. 뭘 걱정하는지."
"근데 적어도 내 눈엔 저 아이는 연구 대상보다는... 그냥 어린 애로 보이네요."
"박사님 의견에 토를 달 의향은 없으나, 뭔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는 아닐 지언정, 제가 할 일은 다 할 거예요. 망각한 적 없어요."
"그냥 저 아이의 제작자... 아니, 아버지로서, 저 아이가 잘 살길 바랄 뿐이죠."
"...저렇게 생겼는데, 이래서야 죄악감밖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집니다."
여인은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복잡한 심경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남자는 그런 여인을 보고 말했다.
"당장의 답을 바라진 않아요. 거절해도 괜찮고... 그때까진 제가 잘-"
"절대로 안 돼요."
여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잘랐다.
"제가 오기 전에 일주일 내내 정크 푸드만 드시지 않았습니까."
"..."
"그래선 애가 불행할 뿐입니다. 차라리 제가 아이를 맡을 테니, 옆에서 연구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건가요?"
"당연한 얘길 하시는 군요."
남자는 조금 서운하다는 투로 혀를 차곤 문을 열 준비를 했다.
여인은 이번엔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곤 유리벽에 손을 대어 아이와 손을 맞대었다.
"근데..."
"귀도 우리랑 다르지만은,"
여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이를 면밀히 살펴보다 말했다.
"꼬리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