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소식이 없었죠. 이것저것 바쁜 게 많아서 일에 가까운 취미는 제대로 하질 않았습니다. 집필을 은근히 자기 학대에 가까운, 스트레스 받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요. 구차한 변명은 이만큼 할까 합니다. 다음 원소는 수(水)족 원소입니다.
2장 1정
하소
벚꽃이 내리는 달 21일
마지막으로 항구를 떠난 지 43일, 존엄한 황제 폐하의 임무를 받든 지 193일차이다. 바람이 역풍이 불어 돛을 틀어 해류를 탔다. 근방의 해류는 꽤 빠른 축이지만 역시 바람에 비하면 힘을 받기 힘들다. 오늘의 순찰은 매우 평화로워 경계태세 한 번 올리지 않았다. 해적도, 폭풍도, 위험한 전설 비슷한 그 무엇도 없었다.
온 배가 반쯤 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가 상급병이 오후 네 시 경, 작은 쪽배를 발견했기에 정신교육은 시행하지 않아도 좋다고 판단했다. 그 쪽배는 우리 범선(*황혼을 달리는 기사 호)의 상륙선보다 조금 컸고 지붕이 있었다. 내려가서 조사를 실시한 차헌 삼등사의 보고에 따르면, 배의 목재는 매우 얇고 가벼웠으며, 구조가 약한지 이미 물이 그득했다고 한다. 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으며 탈진해서 반쯤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삼등사는 손에 들고 있던 희한하게 생긴 도구로 물을 퍼내다 지친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마도 비상탈출선으로 설계된 듯 하며, 약간의 보존식과 식수, 그리고 연금술사들이 쓸 법한 약병과 작은 기계등 각종 잡동사니가 잔뜩 담긴 자루가 있었다고 한다. 조난자와 쓸 만한 물자는 병사들을 챙겨 시켰으며, 삼등사는 자루가 “묶여 있었다면 금화가 그득 담긴 줄 알고 죽을 힘을 다해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증언했으며 결국 회수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대신 약병 몇 개와 노트를 품에 넣고 복귀하였다. 삼등사가 밧줄을 붙잡자마자 쪽배의 선미가 큰 소리를 내며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였기에, 그의 판단을 납득하고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였다.
(*배의 도술사이자 의무장교인)구잔 특관은 조난자의 기절은 단순한 탈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어떤 역병이나 저주의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고, 적당한 식수의 섭취와 충분한 숙면이면 다시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관의 말대로, 조난자는 석양이 깔릴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물을 요구했다. 그가 물을 마신 후 심문을 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었다.
-그는 가문의 단체 실험을 위해 가문의 배를 타고 나왔으나, 내부 사정에 의해 무작정 피난선을 타고 탈출하였고, 항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무풍지대까지 흘러들어가는 고생을 했다가 이유모를 사고에 의해 배가 파손되어 연금술로 무모한 시도를 하여 무작정 이동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만큼 그 자루에 든 기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처음으로 한 질문이 바로 그 기계의 행방이었다. 배가 가라앉는 와중에 목숨 걸고 구하기엔 너무 무거웠다는 증언을 전달해주자 그는 굉장히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삼등사가 회수한 노트와 약병을 건네주자 그는 굉장히 안도했으며, 그 이후로 줄곧 편안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목숨을 구해 준 값은 치르기 매우 힘든 것이라며 자신이 도움이 될 만할 일이 있는지 물었다. 이 배의 임무는 매우 단순한 것이기에 그가 특별히 도움이 될 일은 없다고 답해주었다. 존엄한 황제 폐하의 배는 그분의 신민을 보살피기에 그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렇게까지 부담 느끼지 말라고 권했다. 또 다음 보급품 보충 때에 항구에 내리라고 하였다.--------
“연금술사, 라고 하셨죠?”
구잔 칼라탄 특관은 딱히 교활한 성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무서운 미소 때문에 모든 선원들의 경계를 받았다. 그가 주는 약이 지사제든 해열제든 일관적으로 끔찍하게 쓴 맛인 것이 그 인상을 굳건하게 지켜주었기에, 그와 몇 달 혹은 몇 년씩 본 병사들이나 항해사들조차 그의 웃음에 본능적인 서늘함을 느끼고 거리를 두었다. 미신에 매우 약한 뱃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납득한건지, 특관은 거리를 두면 두는 대로 그저 혼자 살았다. 그는 옛날에 비하면 그래도 밥이라도 같이 먹고 가끔 밧줄이라도 같이 붙드는 지금이 훨씬 사교적이라고,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가 나름 친근한 표정이라고 자부하는 섬뜩한 미소를 보고도 연금술사는 화사할 정도로 활짝 웃었다.
“네! 자류 가(家) 다탑수 라고 합니다! 절 돌봐주신 의사라고 들었는데요.“
“하하, 그게, 돌봐줬다라고 할 것까진 없고, 그냥 물 좀 먹여드렸을 뿐입니다.”“아이고, 목말라 죽어가는데 물을 주셨으면 어떤 의미로는 돌봐주는 거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목말라 죽어간다, 라…”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특관은 다시 입을 연다.
“배를 몰 줄도 모른다고 하셨고, 배를 수리하는데도 실패하신 거 같고, 배를 어디로 몰아야 할 지도 모르시는 거 같더군요.”“하긴 제가 닥치는 대로 무풍지대부터 벗어나고 보자고 좀 터트려대긴 했죠.”
“터트렸…다고요? 뭘ㅇ…아니요, 그건 어, 이따 따로, 다시 얘기합시다. 무풍지대라고 해도 이런 남쪽 말고 북쪽으로 배를 몰았다면 카하대아 군도로 가서 아무 상선이라도 잡아타고 다른 대륙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무풍지대라 어느 항로도 거기를 가로지르진 않지만 동서로 대해(大海)를 가로지르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기서 잠깐 쉬면서 야채같은 신선한 식품이라든가 약품 같은 자체수급이 도저히 안 되는 소모품을 보충해 갈 수 있으니까, 많은 배가 거기를 거치지요.”“오.”
“즉 간단히 별을 보는 법조차 숙지하지 않고 바다로 나오신 거 아닙니까?”“음. 혹시 선생님 마술사신가요?”
“도술사입니다. 그리고 선생보다는 특관이 귀에 익어서, 이왕이면 그렇게 불러주셨으면 하네요.”“얼마든지요. 그보다 도술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뭐 어쨌든 마술이나 연금술 하는 나부랭이들은 그 유명한 진격제 때 참사 이후로 점성술은 웃음거리로 치니 말입니다. 천문학 쪽은 완전 천것 취급이죠.”
“항해사들한테 별 보는 걸 천것 취급한다는 얘기는 안 할 걸 권합니다. 내릴때까진 멀쩡한 밥 얻어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새겨들어야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말입니다, 바다에 대해선 그렇게 일자무식인 양반이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 판자덩어리에 의지해서 뛰쳐나온 겁니까?”연금술사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가, 밤하늘에 대고 길게 내쉰다. 한 줄기 바람이 맞춰주듯 연금술사의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특관의 긴 생머리를 헤집고 간다.
“어차피 저는 가문을 떠나 살 테니까 상관없는 일이겠죠.”특관은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가문의 연금술사가 가문을 떠나 산다니. 떠받들어주고 살던 하인이라든가 빵빵한 설비와 약품 지원 없이 사는 건 둘째치고, 가문의 비밀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추적자가 들러붙어서 평생을 대륙과 대륙 사이를 떠돌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가문이든, 학교든, 기관이든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수백년간 쌓인 가문의 비결이 굴러들어왔으니 좋다고 집어먹었다간 전면전이 터질 수도 있다. 일반적인 마술에 비해, 연금술의 악명은 그 정도로 자자하며, 오히려 기관보다도 피로 이어진 가문이 더 독하다.
“우리 집안은 하소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소라면 공소와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며, 바다 한가운데에 진을 긋고 일대를 ‘정화’시킨 다음, 바깥으로 밀려나도록 해서 중간 부분은 이론상 순수한 하소만 남겨 놓고, 마구잡이로 공소를 각종 상태로 때려박아보자는 기상천외한 계획이었죠. 의외로 반대한 게 저뿐이더라구요.”“미친 소리. 거기 물고기를 몰살해서라도요? 거기다 뭐? 공소를? 결합시켜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가뜩이나 장사꾼 낮잡아보는 풍조 탓에 지적재산 계약도 적어서, 그렇게 재산이 펑펑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그 「다반잔의 산노인」이라는 큼직한 배를, 대여도 아니고 아예 구매를 하더군요! 선장과 선원들까지 한 큐에 계약을 해서 가문의 사용인으로 들이질 않나, 진을 바다 위에 긋겠다고 그 비싼 자색 감람암을 몇 자루씩 사들이지를 않나, 아직 수련중인 조카들을 실험용 전지 취급하는 꼬라지는 계획서에도 없었어요.”특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은 이제 연금술사의 얼굴에 비하면 매우 친근해 보였다. 사람 하나 죽이고 온 얼굴에 비하면 어지간한 얼굴은 순해 보이기 마련이다.
“애들이 최면 상태에 빠져서는 진에 매달려 있는 꼬라지를 보고 어르신의 따귀를 올려붙이러 박차고 나섰습니다. 이건 아니다. 당신 손자, 증손자들 아니냐. 니가 사람이냐. 연금술사 가문들이 미치광이 소리를 듣긴 해도 천륜을 거지발싸개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두 손에 낀 반지들이 순식간에 갑판에 들러붙더군요. 끔찍하게 무거웠습니다. 벗는 건 꿈도 못 꿨죠. 지팡이와 화살들이 겨누고 있을 게 당연했습니다. 내가 아버지라고 여겼던 늙다리가 뭐라 지껄이는지는 바빠서 자세히 듣지 않았습니다. 날 붙들고 가두려고 똑바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반지가 도로 가벼워진 순간, 내 손을 밟고 한 번에 조금이나마 뽑아버리며 영창한 주문으로 입에서 먼지와 재가 그득한 연기를 뿜고 봐뒀던 비상탈출선으로 죽어라 달렸습니다.”연금술사의 손은 부들거리고 있었다. 생전 흉내도 안 해본 항해를 하느라 험하게 긁힌 상처들 전부, 굵게 부은 염증 위에 나 있었다.
‘쇳독인가…’특관은 숙련된 선원도 저 손으로, 조각배에 타서 홀로 바다, 그것도 무풍지대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자기 부친을 척진 가문의 연금술사가 앞으로 할 고생을 떠올리면, 망망대해를 떠돌며 고기를 낚는 여생도 차라리 나쁜 선택지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 그 기계 말인데요,”“아이고. 미안합니다. 갑자기 허기가 확 오는군요. 밥다운 밥을 먹은 게 며칠 전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해군 밥은 맛있나요?”
특관은 맥이 빠진 몸짓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당분간 죽만 드릴 겁니다. 매우 멀건 죽을, 조금씩만 드십시오. 차차 양을 늘리고 소화계가 적응이 되면 그때 뱃놈들 거친 밥을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쌩으로 굶은 건 아닌데요오…”“제국 의무관 명령입니다. 따르십시오.”
--------
연금술사는 갑판에서 함장과 선원들에게 인사한 다음 돌아선다.
"그런데 저건 하역 작업인가요?""아. 상부 지시입니다. 배가 배다 보니 물건 배달은 가끔 하는 일입니다."
"꽤나 무거운 모양이군요.""확실히 저거 떄문에 배에 평소보다 물을 덜 싣고 다녔었죠. 선생이 만들어준 그 바닷물 민물로 바꾸는 기계가 아니었으면 물 아끼느라 다들 입이 쩍쩍 말랐을 겁니다."
"흐흐, 운이 좋았죠. 딱 필요한 재료들을 어떻게 주워모을 수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진짜 한 번 더 당부해드리겠습니다, 함장님. 그 물을 제일 먼저 맛보고 어딘가 냄새가 이상하거나 맛이 이상하거든 곧바로 바닷속으로 던져버리십시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후우, 쏘가리 시절로 돌아가 교육 듣던 게 생각나는군요. 알았습니다.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 배에서 물건을 잘 못 빼는 모양입니다."정말로 거대한 상자는 조금씩 비틀거릴 뿐,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용을 썼지만 그것은 단순히 너무 컸다.
"도대체 저걸 집어넣을 떄는 어떻게 넣은 겁니까?""저놈들이 요령이 없는 겁니다. 저럴 때 쓰라고 굴림막대가 있는건데. 흘수가 너무 낮아서 막대 들어갈 틈이 없나."
연금술사는 잠깐 실례한다는 몸짓을 하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흘수는 틈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항구의 가장 낮은 바닥보다도 더 내려가서 슬슬 해수면이 배 안쪽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거 얼마나 끔찍하게 무겁길래…함장님! 대체 저 안에 뭐가 들은 겁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허." 연금술사는 고개를 우둑 꺾고는 손바닥을 가지런히 펼치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하긴, 군대라는 게 원래 다 비밀스러운 척은 다 하기 마련이죠.”
“방금 무슨 말을 하셨는지 잘 못 들었습니다만?!”“아 아뇨 별 말 아닙니다! 그보다 여러분, 제가 잠시 이걸 들어올릴테니, 배에서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하실 일은 화물이 나오면 그걸 멈춘 다음 막대를 끼워넣는 일입니다.”
몇몇 선원과 항구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그들의 근육 수십 덩어리로도 못하는 일을 웬 샌님이 혼자 어쩌겠다는 거냐는 투의 표정을 짓고 비웃음으로 답한다.“안 나오면 니가 뭐 어쩔 건데!”
그러나 그가 일하는 걸 본 적 있는 선원들은 한 번 끄덕이고는 동료들을 뒤로 물리며 굴림목을 더 가지러 간다.“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어도 미끄러질 겁니다. 위험하니 나와 주십시오.”
그의 진지한 표정에 마지막 사람까지 뭍으로 올라선다. 물론 표정은 대략 ‘잠깐 쉬는 시간 주는 건 고맙게 받겠다’ 와 유사하다.눈을 감고, 오른손 손바닥은 땅을 보고, 왼손 손바닥은 하늘을 보게 하며 연금술사의 입술이 조용히 읊는다.
모든 원소를 아울러 다스리되 모든 원소를 받들어 섬기노라
그 순환을 긍정하고 그 연결을 살필지어다잇고 끊으며, 섞고 거르고, 누르고 풀어내라
온전한 나의 뜻을 여기 아로새기겠다‘날이 맑아서 열소는 어디든지 충만하다. 부두와 배에서 살짝만 긁어도 폭우처럼 쏟아진다.’
왼손이 앞의 배를 쓱 흝는다. 배 위에서 지켜보던 선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오한에 몸서리친다.‘꽤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하기 어렵지 않다.’
오른손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손을 종지처럼 굽힌다. 이윽고 오른손의 안수를 받은 바닷물이 부글거린다.‘어려운 부분이라면 여기다.’
연금술사의 미간이 꿈틀거린다.‘무언가를 옮기는 거 자체는 한없이 어렵다. 아까 마신 공소로는 어림도 없는 분량이다. 그러니 흐름을 조절해야 한다. 역시 정석대로, 회전이다.’
끓어오른 바닷물이 허연 김을 뿜는다. 오른손이 맥을 치듯 어딘가를 후려치자, 김이 하늘로 치솟다 돌연 옆으로 꺾인다. 걸쭉하고 끈적한, 수증기라기엔 너무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김이 배의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화물칸의 바닥에 마치 액체처럼 고여서 찰랑거린다.“저게 대체 뭐야???”
그 물 같지 않은 물이 거대한 화물상자 밑으로 스며들어 둥둥 띄우는 광경에, 인부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다. 굴림목을 가져와놓고는 까는 것도 잊어버리고 거대한 화물상자가 출렁이는 증기에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다.연금술사의 오른손이 천천히 굽혀지며 주먹을 쥐자, 증기에 파도가 일어 천천히 화물상자가 부두로 떠밀려온다. 노련한 인부 몇몇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굴림목을 쥔 사람들을 흔든다. 허겁지겁 깔리는 굴림목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화물상자 아래에서, 받치는 다리가 삐걱거리는 신음을 낸다.
‘버틴다. 버틸 수 있는 놈이다. 못 버틸 놈이면 애초에 준비했을 리가 없다.’증기가 배의 벽을 잃어, 화물을 받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용돌이친다.연금술사의 등은 이미 식은땀에 젖은 지 오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벗어난다. 올라왔다. 증기는 굴림목 사이로 흘러들어가 몇 개의 거대한 바퀴 같은 형상을 갖춘다. 가속이 붙어서 움직이는 화물을 붙들지만 약간씩 굴림목 너머로 넘어가려 한다.
“밀어!”인부들의 십장이 외치자 인부들이 몸을 부딪혀온다. 눈치 빠른 인부들은 꿈틀거리며 화물을 타고 다니는 증기에서 멀리 떨어진 채 밀어붙인다.
“됐어!”
증기가 풀리며 먼 바다로 쏘아져 나간다. 연금술사의 지친 손이 툭 털리자마자 대포 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증기가 터진다.
“감사…합…니…다.” 후우 하며 깊은 숨을 들이키고 내쉰 뒤, 기운 다 빠져 주저앉은 연금술사가 똑바로 고쳐 앉고 고개를 똑바로 들어 다시 말한다.
“열이 거의 다 떨어져가서, 더 오래 걸렸으면 놓쳤을 겁니다.”
“우라질,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이 망할 자슥아. 거 무서운 놈이었구만. 연금술사라는 놈들은 다들 댁 만큼 센 건가?”
“흐흐, 그럴 리가요.”
실없이 웃는 소리를 내던 연금술사는 문득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든다.
“훨씬 센 놈들이 저기 널렸습니다.”
잠깐, 뜨거운 태양 아래에 얼어붙을 듯한 침묵이 돈다.
“물론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라 한심한 놈들입니다. 사기치려는 놈들을 조심하세요. 그 자식들 학위는 따고 개소리하는 건가 모르겠네.”
다시 실실 웃는 연금술사를 따라 몇몇 인부와 선원이 멋쩍게 웃는 소리를 낸다. 이윽고 불호령이 그들 귓바퀴를 후리면서 이거 하나 재깍 못 옮기냐고 들들 볶아대고, 이내 항구는 빠르게 평소대로 돌아온다.
다시 짐을 챙기러 올라온 연금술사가 함장에게 고개를 숙인다.
“자. 그럼 정식으로 작별인사 올리며,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대체 처음에 어떻게 실었으면 이런 미련한 꼴이 나는지 참. 뱃사람 체면이 말이 아니군요.”
“너무 그러지 마십쇼. 저도 가끔씩 제가 섞은 약품에 제 얼굴 얻어맞고 그럽니다.”
“으음. 저 화물 말입니다, 사실 존재 자체에 대해 함구령이 들어올 정도로 비밀이 여럿 걸린 물건이라 자세히 말씀은 못 드렸습니다. 하지만 단서 하나 정도는, 오늘 해주신 일이 있으니…”
연금술사가 고개를 숙이며 가까이 다가선다.
“이 항구에서 창고도 안 거친 다음 해가 지기 전에 여기에 들어올 다음 배에 인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의 이름은 「다반잔의 산노인」 호라는군요.”
연금술사의 눈이 순간 사백안이 될 정도로 번쩍 뜨인다.
“소유주 이름을 보아 하니, 당신이 알 만한 이름이라 생각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뭘 감사합니까? 당신은 저한테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요. 얼마 전 멋대로 제 서류를 훔쳐보지 않으셨습니까? 자. 제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 대해선 가볍게 잊어 주시지요. 그럼. 당신에게 순풍이 불기를 바랍니다.”
+ 늦어져서 면목 없습니다. 집에선 주말이라고 자꾸 딴짓이나 하고 말이죠. 아예 완성을 하고 올리든가 말입니다.
++ 솔직히 고증은 밥말아먹었습니다. 계급 체계는 적당히 알아서 짤 거지만 배, 그것도 범선 굴리는 법은 뭐 나오지를 않는군요. 고증 쪽으로 가면 저는 거의 마조입니다. 더 까 주십시요. 헤으응! 그렇다고 구라치다 걸리면 제 쪽이 사디즘이 됩니다?
+++ 분량을 이렇게까지 늘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글쓰는 솜씨가 얼마나 딸리면 지가 쓰는 글 분량 조절도 못하는지 참.
++++ 글자 크기가 안 커집니다 도와주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