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커피를 두고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음료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스페셜티를 좋아하는 이들이 부정적이고 잘못된 추출이라고 말하는
쓰고 텁텁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커피 참 진하다며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기도 하고...
게다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뜨거운 커피를 선호하는 분들도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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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네요.
다른 기호식품과는 달리 진짜 좋은 커피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설득이 필요한 음료니까요.
그렇다고 진짜 맛이 있는, 비쌀 만한, 높은 가치의 커피가 없는 건 결코 아니지요.
그리고 그 가치를 구현하고 설득하는 건 결국 로스터겠고요.
이와 같이, 커피의 본질을 정의하려 한다...라는 의미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로스터리로
저는 나무사이로를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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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맥락과 정서에 대한 인문학적인 성찰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셜티의 기본이랄 수 있는 생산 / 가공 / 유통 전 단계의 투명성은 물론이고요.
위와 같은 커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추출을 설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커피를 오래 즐기다 보면 커피의 떼루아, 가공, 볶음도, 컵노트만 보아도
로스터스가 어떠한 의도로 이 커피를 가공을 했고 어떠한 추출이
이 커피의 개성을 최대화할 수 있을지 대략 느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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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차적인 정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의 본질은 커피로 말미암은 다양한 맥락들이지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컵노트를 통해 커피의 맛을 계량화하는 것은.... 솔직히 거짓말이라고 느낄 정도입니다.
커피는 그저 커피맛인 거지, 열대과일도 진득한 잼도 자두도 정향도 아니거든요.
커피를 개봉하고 원두를 보자마자 기존의 상식 하나가 편견이 되어버렸습니다.
분명 카투라 품종이라 했는데 제가 아는 카투라는 이렇게 알이 굵고 실하지 않았습니다. ㅎㅎㅎㅎ
로스터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첫 추출은 대개 제 고유의 기본 레시피대로 내립니다.
코만단테 21클릭으로 분쇄한 원두 20g, 린싱하지 않은 하리오 필터, 95도의 물, 40ml의 뜸,
뜸 이후의 가벼운 스월링, 1차 푸어링 140ml, 2차 푸어링 100ml, 터뷸런스를 최소화하는 센터푸어링,
물빠짐이 끝난 이후 드리퍼 제거 및 23ml의 물을 가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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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면 총 250ml 내외의 한 잔의 커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략 2분 15초의 추출시간이 걸렸군요. 이상적입니다.
제공받은 노트 상으로 보면 말린 과일의 단맛을 연상케 하는 진한 커피로 생각되는데,
제가 내린 커피는 정작 산미가 참 곱습니다. 여기에 기분 좋은 쌉쌀함이 후미에 한 가득이로군요.
달콤한 커피라기엔.... 으음 솔직히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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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입니다. 로스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시 추출설계를 해 보아야지요.
원두의 양을 조금 줄이고 분쇄도를 조여서 수율을 높여볼 생각입니다.
한 서너 잔 더 내리다 보면 아, 하고 로스터의 의도가 납득이 가는 순간이 옵니다.
권위있는 로스터의 커피의 장점이라면... 제가 틀렸을 확률이 압도적이라는 점이겠지요?
그렇다면 답을 찾는 건 시간문제라는 겁니다.
암튼 한 동안 재미있겠네요. ㅎㅎㅎ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