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역사 교재나 교양 서적에서 동로마를 다루는 파트에서 빠지지 않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황제교황주의다. 이 말은 곧 로마 교황이 서방 교회를 지배하듯이 동로마의 황제가 동방 교회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인식을 확실히 퍼뜨린 서적 중 하나가 바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다.
그런데 정말로 동로마의 황제가 교황이 되어서 동방 교회를 지배했느냐고 이야기한다면 그 대답은 'No'라고 해야 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동로마의 황제가 교황이다'라는 명제는 확실하게 거짓이다. 왜냐하면 정교회에는 총대주교만 있을 뿐 교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가 동방 교회를 지배했다'라는 명제에는 부분적 참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로마 황제와 정교회 간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부터 이야기해보자.
먼저 고대-중세 기독교 세계에는 5명의 총대주교가 있었다. 순서대로 로마 - 콘스탄티노플 - 알렉산드리아 - 안티오키아 - 예루살렘이며 이 5명의 총대주교는 각각 자신의 권역 내의 기독교인들을 관리, 감독하는 수장이다.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기준 각 총대주교가 담당했던 권역
총대주교는 자신들이 담당하는 권역 내의 기독교인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었지만 그 총대주교는 황제가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동로마의 황제 아르카디우스가 자신의 아내 에우독시아의 부정을 비판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를 대주교자리에서 해임한 것이 있다.
이렇듯 로마의 황제는 자신을 지지하는 인물을 총대주교로 임명하거나 자신에게 반항하는 총대주교를 해임하는 방식으로 교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물론 총대주교들 또한 가만히 호구처럼 황제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총대주교들이 황제에게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는 바로 파문이었다. 물론 '파문? 응 ㅈ까고'를 시전하는 황제도 있었지만 파문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 세계 내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정지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라는 로마 황제의 정통성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황제들은 파문을 당했다면 총대주교에게 이를 거두어달라고 청해야 했다.
(파문을 당했음에도 ㅈ까를 시전한 대표적인 황제는 미카일 8세로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아르세니오스가 자신을 파문하자 총대주교를 2번이나 갈아치운 끝에 자신의 파문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이후, 7세기에 이슬람이 등장하면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구가 이슬람에게 점령당했고 로마 역시 751년에 라벤나 총독부를 랑고바르드족에게 점령당해버리며 직접적인 지배력을 영구히 상실해버린 결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만이 황제와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왜곡한 결과가 바로 동로마의 황제교황주의인 것이다.
이와 같이 국내에 널리 퍼져있는 황제교황주의라는 용어는 잘못된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동로마 황제와 교회간의 관계를 대중들에게 왜곡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덧: 덧글 좀 많이 많이 써달라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