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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의 오해(fit 닥터진)

전근대에 미래 문물을 도입시키려면 먼저 그 문물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죠. 어떤 기반기술이 있어야 하나, 해당 지역에서 탄생할 수 있나, 낙후된 환경에서 생산 가능한가, 기존 문화에서 용납 가능한가. 어느 게 안 그렇겠습니까마는 우리가 흔히 쓰는 육각 연필 한 자루 만드는 것도 고대까지 가면 왕쯤은 되어야 도전해볼 만한 상당한 고급 기술입니다.







페니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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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은 드라마 닥터 진 이후 대역물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물건 중 하나인데요, 지금부터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일단 전근대 구대륙에서 만들 수 있는 페니실린이 어떤 물건인지 보겠습니다.



* 반감기 30분 이하.

수액 투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근대에요. 항생제이니까 병균이 완전히 사멸할 때까지 수일~수십 일 동안 바늘 꽂고 있어야 해요. 몸에 24시간 며칠 꼽고 있어도 파상풍으로부터 안전한 수액 투여 방법 만드는 것부터가 일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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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지는 생산성

10명이 1년 먹을 식량 생산력으로 한 명 1일 투여 가능한 분량 생산 가능.

가내수공업 페니실린 생산방법은 생산성이 극히 떨어집니다. 품질도 매우 나쁘죠. 식량 귀한 전근대에 그것도 먹을게 하늘인 유교가 지배하는 동아시아에선 황제도 불가능한 짓거리라 보시면 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냐고요? 대부분의 전근대 국가들의 식량 생산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식량으로 딴짓을 한다는 건 누군가 굶어 죽게 만든다는 것과 동일하다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 민본에 꽤 민감하게 구는 동양의 경우 농사 좀 안되었다고 군주에게 책임을 물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였죠. 그러니까, 페니실린을 개발하려면 먼저 식량을 썩어나서 바다에 내다 버릴 정도로 증산시켜야 합니다. 혹은 백성들 굶겨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절대권력을 구축하십시오. 윗동네처럼요.



* 보관방법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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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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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백신 덕분에 의약품에 따라 보관, 유통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란 거 많이 알려졌죠? 페니실린도 어떤 원료(곰팡이)에서 어떻게 뽑아내냐에 따라 유통 보관 편의성이 크게 다른데, 유라시아에서 발견 가능한 원료로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한 페니실린은 불순물이 많아 보관이 매우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항온항습보관이 불가능한 전근대에는 한 시간 보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설령 냉장고가 있어도 이틀 내에 유효력이 다 떨어질겁니다. 참고로 요즘 나오는 페니실린도 주사 투여 앰풀은 냉장 보관이 필수입니다(냉장 보관 시 7일 보관 가능). 일단 주사 투여 앰풀도 전근대엔 유통보관이 글렀네요. 뭐. 어쩌겠습니까. 그때그때 현장에서 만들어야죠. 만드는데 번거로운 공정과 온도 습도도 따지는 민감한, 그것도 며칠 걸리는 물건을 어떻게 그렇게 쓰냐고요? 그거야 전근대에 사람 먹여 살릴 귀한 식량으로 페니실린 만들어 써먹겠다 마음먹은 놈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참고로 근대에 유라시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페니실린은 이런 극악하고 까다로운 취급방법 때문에 단 한명도 못 살렸습니다.















그럼 실제 사람을 살리는 데 성공한 페니실린은 어떤 물건인가?



* 원료의 발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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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에 기생하고 있었다더군요.

원료 발견하려면 운에 기대지 않는 한 적어도 전 북미대륙에 지배적인 행정망은 갖추어야 할 듯.




* 필요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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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왕조들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이 인간보다 재산 많은 인간 아직 안 나왔습니다(물가 반영 시).




* 필요한 기반기술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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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비로소 상용화되었죠.

그러니까 페니실린 만들 거면 그 전에 적어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여러대 뽑아낼 수 있는 기술력과 국력을 갖추십시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무기로 핵폭탄이 있습니다. 페니실린 상용화에 성공한 그 국가가 개발한 무기이지요.

그러니까 대체 역사에서 페니실린 상용화에 성공한 국가가 등장했다면 그 국가는 핵무기도 개발 중 일 겁니다. 이미 개발했거나요.




* 필요한 인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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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 상용화에 필요한 기술들을 개발하려면 다양한 각계 분야의 인재들이 필요했습니다. 사진은 물리학 쪽 먼치킨이 좀 많지만, 여하튼 화공학, 약학, 재료공학 등의 분야에 이 정도 급의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아무리 여러 분야의 박사급 지식을 갖춘 천재라도 항생제 도입은 전근대에 고작 빙의자 홀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 필요한 원료 생산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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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고의 식량 생산능력을 갖춘 국가가 바로 미국입니다.




* 필요한 생산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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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된 페니실린의 생산공정은 근대 인류 화공학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여기까지 와야 비로소 수액투여를 벗어나 주사투여식 페니실린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 사진이 "최초로 사람을 살리는 데 성공한" 항생제가 대량 생산된 곳이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알약 항생제 같은 편리한 물건은 이때로부터도 한참 뒤에 나왔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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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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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만들어서 사람 살리는 것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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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잔뜩 뽑아서 전 세계에 깽판 치고 다니는 게 훨씬 현실성 있습니다.


















보다시피 항생제는 인류 의학에서도 핵무장 급 테크트리에 닿아야 겨우 나오는 끝판왕급 물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페니실린으로 전근대에 사람 살리는 게 가능할 거란 터무니없는 오해가 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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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대중매체의 힘이죠. 정말 잘 포장했어요. 마치 그럴싸하게 개화기에 아직 진입조차 안 한 조선 시대에도 정말 가능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참고로 실제로는 닥터 진이 이 시대 가장 강대한 유럽 열강의 지도자에 빙의해도 드라마에 묘사된 시기에 페니실린으로 사람 살리는 건 매우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Q: 그럼 어느 정도는 되어야 전근대에 페니실린을 생산해서 사람 살리는 게 현실성 있을까요?

A: 현대국가를 통째로 타임슬립 시키면 어떨까요? 적어도 자급자족은 되어야 하니 기왕이면 미국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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