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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외계의 존재와 만난 이야기



안개로 가득찬 한밤 중의 계곡을 향하던 중이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최저 기온과 열대우림 마냥 덕지덕지 들러붙은 이끼류와 고사리 때문에 더더욱 음산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내 손에 게임에서 볼법한 멋지고 커다란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늑대 인간 같은 생물이 떼를 지어 내게 달려오자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고막을 때리는 총성이 연발로 계곡을 가득 채우자 사방에 늑대 인간의 육편이 널부러져 안개에 핏빛을 더했다. 그들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 끝에 계곡의 끝자락에 시커먼 색상의 커다란 삼각형 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은 마치 설탕물을 굳혀 만든 듯한 질감에 강제로 개방해 이곳 저곳 부서진 모습이었다. 문을 지나 마치 자그만 현관 같은 곳에 들어서자 주황색 보호복을 입은 시신 셋이 쓰러져 있었다. 시체가 훼손되어 있지도 않았고, 피가 낭자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제껏 아무렇지 않았지만 난 그제서야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왼쪽에 있는 중앙 여는 문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망설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목숨이 아까운 것 같지 않은 것 처럼 왼쪽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양손으로 중앙으로 열리는 문을 열어제끼자 똑같은 문이 하나 더 나왔다. 나는 그 사이 김이 빠짐과 동시에 헛웃음을 쳤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두 손을 양 문짝에 대고 열어제끼려 했다. 그 순간


내 허리 사이즈보다 커다란 손이 문 사이를 비집고 나와 나를 붙잡아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총을 들고 쏠 수도 몸부림 칠 수도 없었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커먼 심연 속으로 끌려가 극장의 조명이 켜지듯 빛이 켜졌는데 그곳엔 두 존재가 있었다. 몸체는 코끼리만한 삼각김밥이었지만 그 전체에 커다란 눈코입이 달려 있었고 그 살점은 여드름이 나다가 녹아내린 듯한 흉측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입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치 텔레파시로 내 이름을 부르는 듯 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우리와 다시 만나고 싶다면 커다란 원한을 가진 부적을 가지고 와라"


그리고 내 목숨은 끊어졌다. 그리고 나는 꿈 속에서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으로 돌아왔다. 꿈 속에서 깬 것처럼 부스스 일어났지만 늑대 인간을 죽였을 때 사용했던 탄약도 떨어져 있었다. 꿈 속이었지만 진짜였다. 그리고 난 커다란 원한을 가진 부적이란게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한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한을 끌어모아 봉인하기 위해 부적을 모시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걸 가지러 가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빨리감기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자, 난 이전에 그 삼각김밥 같은 두 존재가 기다리던 현관에 도착했고 이미 내 손엔 부적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녹아내린 살점의 삼각김밥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중앙으로 여는 이중문을 힘차게 열어제꼈고, 안에 들어서자 이전처럼 시커먼 심연이 펼쳐졌다. 두 존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알 수 없는 삼각김밥 같은 존재의 위협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한걸음 씩 발을 내딛었고 그러자 왼손에 쥔 부적을 중심으로 진공 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어둠을 빨아 들였다. 심연이 점차 환해지는데 눈이 너무 부셔 오른팔로 시야를 가렸다.


환한 빛에 눈이 익어갈 쯤 오른팔을 천천히 내리자 그곳에 평범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산골 마을인데, 오른편으론 천장이 뚫린 동굴과 거대한 폭포, 왼편으로는 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었고 중앙으로는 푸른 언덕을 따라 지어진 콘크리트 골목과 시골에서 볼법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온대림은 울창하게 번져있었으며 비 온 뒤 화창한 것 처럼 비에 젖은 흙냄새가 솔솔 피어올랐고 시원하면서도 산뜻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그 풍경을 감상하던 중에 오른편의 동굴 폭포로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 형체 같은 것이 둘이 있었고 나는 귀신에 홀린 것 마냥 그 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에게 다가갈 수록 사람 형체는 점점 더 명확해졌는데, 전에 봤던 삼각김밥 같은 것의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훨씬 깔끔해지고 코끼리만큼 커다랗던 몸뚱아리는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조물댄 것처럼 크기가 줄어들어 그나마 사람 형태를 띄고 있었다. 하나는 파란색, 다른 하나는 보라색의 고대 그리스의 전통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 둘에게 정체를 물어보자 보라색 옷을 입은 존재가 답했다. 그가 말하길 온 우주를 여행을 하던 중 인류의 문명이 멸망한 뒤 불시착한 외계의 존재로, 이 장소는 가장 행복한 인류 집단 중 하나의 보금자리를 본따 투영하고 있다고 했다. 파란색 옷을 입은 존재가 이어서 말하는데, 이 거대한 우주선을 수리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행성계에서 이를 충전하려면 수십억년 뒤 태양이 지금보다 훨씬 밝아지고 거대해져 지구를 삼킬 때가 되서야 가능하다고,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내가 현관에서 쓰러진 세 사람에 대해 묻자, 그들은 그것이 실수라고 말했다. 직접 인류와 접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인간은 자신들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끼고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렇다면 적어도 인간 방식의 장례를 치뤄준 뒤 묻어주는 것이 어떻냐고 물었다. 두 존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했고 내게 시신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눈 한번 깜빡했는데 우주선 안의 투영이 저녁 놀이 질 무렵이었으며, 그새 산의 중턱에 있는 한국식 공동묘지에 누군지도 모르는 셋의 장례를 치루고 묻어준 뒤였다. 이 무덤들은 우주선이 투영한 마을의 마을 무덤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어느 소리가 들리는데, 어린 아이들이 골목에서 아이 다운 괴성을 지르며 기쁘게 놀고 있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난 새로 지은 무덤을 향해 큰절을 하던 두 존재를 잠시 기다려준 뒤에,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들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 투영들 중 어떤 장소들은, 그 장소가 가장 기뻤다고 여긴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화장실에서는 가장 묵은 변비를 해결하던 이의 모습이, 침실에서는 서로의 생활에 만족한 신혼 부부가, 골목에는 친구와 함께 뛰노는 어린 아이들이, 거실에서는 같이 일요일날 개그 프로를 보는 가족들이. 그 장소는 그것에 기뻐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파란색 옷을 입은 존재가 내게 부탁했다. 우리는 어차피 태양이 거성이 되어 지구가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그날까지 머무를 것인데, 그대는 이곳에서 생활해도 되며 원한다면 가능한 살아남은 인간들을 데려와 정착해도 된다고. 또 태양의 에너지로 인해 이 거대한 우주선이 수리가 된다면 영원히 우주를 떠돌 것인데, 그 때까지 이 투영 속에 인간이나 다른 생명들이 살고 있다면 자신들이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여행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책임지겠다고.


나는 그 존재가 하는 말에 거짓이 없음을 느꼈으며, 그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우주선을 떠났다. 


꿈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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